예순일곱

by 이재현

태어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들이 되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자였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누구의 오빠가, 다음엔 누구의 형, 그다음엔 또 다른 누구의 오빠가 되었습니다. 나의 의사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스물여덟 나이에는 남편이 되기로 하였고, 곧이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는 예순여섯 해를 살아 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난 지금도 여전히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나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지금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나?”


어릴 적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자주 화를 내셨습니다. 비난하고 욕도 하고 심지어는 무언가를 집어던지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으며, 커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어쩜 집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서울로 간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막내 동생을 외할머니댁에 남기고 나머지 가족과 함께 강원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6년 후 아버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재회하기까지 나는 서울에서, 어머니는 충청도에서, 그리고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살았습니다.


중학생인 나는 방학이면 강원도 홍천에 있는 집엘 갑니다. 그때는 교통사정상 춘천을 경유하여 홍천을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국도를 경춘가도라고 부르는데, 주말 경춘가도에는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가는 젊은 남녀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허리를 팔로 껴안고 머플러와 함께 긴 머리를 휘날리는 여자를 뒤에 태운 남자의 모습이 중학생인 나에게는 부러워 보였습니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런 남자가 될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그땐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난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습니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미래에 무슨 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고, 나도 나의 진로를 부모와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진학은 나에게 그리 절실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공무원이나 할까 하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공무원 되는 길이 지금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면 5급(지금 9급) 공무원 하면 되지 라고 쉽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이 대학 원서를 낼 때 나도 함께 대학에 지원함으로써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 4학년 초에 한 여대생(지금의 아내)을 만나 사랑에 빠졌던 기억 말고는 별로 이야기할 만한 사건이 없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대생인 우리에게 취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은 한창 성장기에 있었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습니다. 나는 울산에 있는 중공업에 취업을 하였고, 2년 후 고등학교 교사인 한 여인과 결혼을 하면서 가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른으로 들어섰습니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30대 후반에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으로 대학에서 강의도 했기에 교수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마흔의 남자가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이제 바라던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안전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었던 경제적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아내로부터 “여보, 함께 해주어 고마워요”, 아이들로부터 “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내 삶이 잘 되었다고 평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작성한 ‘나의 사명서’입니다. “나는 유일하며 고귀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나는 진실 속에서 항상 성장을 추구하며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어진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아내는 내 삶의 동반자이다. 난 그를 존경과 신뢰로서 대할 것이며, 모든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삶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난 그들을 관심과 배려로서 대할 것이며,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데 함께 할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이 세상으로 보내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난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대할 것이며, 그분들이 자랑스러움을 느끼도록 행동할 것이다. 이웃은 나의 협력자이다. 난 그들을 존중과 이해로서 대할 것이며, 우리가 모두 삶 속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형제다. 우리는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며 서로의 성공을 돕는다.”


아내의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은 ‘내 사랑’입니다. 나의 핸드폰에 저장된 아내의 이름은 ‘반쪽’입니다. 하루에 대여섯 번 반쪽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궁금해서 하고 심심해서 합니다. 아내의 잦은 전화에 항상 정성껏 응대합니다. 아내가 나를 편안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딸은 자기에게 최고 멘토가 아빠랍니다. 어제는 결혼한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 자랑스럽답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이 세상에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나하고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낍니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시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그의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모두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며, 각자의 세상을 존중하고 함께 배우며 함께 성장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며, 이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나의 삶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고, 건너야 할 강이 있었으며 때로는 사막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며 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이 어려워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고 평생 아이로 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으며 이웃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그것을 도울 것입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바른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