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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Oct 27. 2023

와룡면 원주민 되기

아침이면 나는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해 나선다. 이른 아침인데도 동네 입구 정자에는 몇 분의 어르신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평소와 같이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한 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와(왜) 오늘은 혼자 잉교?”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걸어가는 나에게 둘이 어딜 그리 놀러 다니느냐 묻기에 도서관에 간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예, 와이프는 일이 있어 오늘은 집에 있어요.” 다른 한 분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네신다. “돈은 버능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까지는. 아마 그분은 매우 궁금하셨나 보다. 근간에 나타난 멀쩡하게 생긴 젊은 부부(그분들에 비해 젊다는 내 주관적 생각임)가 매일 실실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데, 농사일은 안 하는 것 같고, 도대체 어떻게 먹고사는 사람인지가.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돈은 조금씩 벌고 있습니다.” 동네 어른들로부터 돈은 벌고 있느냐는 당돌한 질문을 받은 나는 속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마을 주민들의 친근한 존재로 긍정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에. 

    

이곳 와룡에 오기 전 애틀랜타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곳의 좋은 문화 하나를 경험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마을 길에서 마주치면 항상 서로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상관없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친밀감을 표현한다. 심지어는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준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인사받는 것이 좀 어색했으나 꾸준히 호응했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와룡에 와서 나는 그 습관을 계속 유지했다. 동네를 거닐면서 마주치는, 아는 이 모르는 이(사실 거의 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먼저 인사를 할 때 나는 기분이 좋다. 모르는 이로부터 인사를 받는 사람도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그 사람도 분명 기분이 좋을 것이다. 

    

우리 집 세 집 건너에는 육십대로 보이는 남성이 살고 있다. 내가 그 집 앞을 지날 때 그분은 종종 텃밭에 물을 주거나 대추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여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그분은 살짝 고개만 끄떡인다. 별로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뭐 반가울 게 있겠냐만 그래도 좀 무뚝뚝한 성격인가 보다. “대추가 빨갛고 예쁘게 익었네요.” 응답이 없다. “수고하세요” 나는 멋쩍게 집으로 향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밝은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계속 인사를 해서 그분의 맘을 열리라. 귀촌해서 원주민이 되는데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분이 먼저 웃으며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영어회화 강의를 들으러 안동시에 있는 평생학습관엘 다닌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르신 두 분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니 한 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미국에 안 가능교?” 나는 순간 흠칫했다. 나는 그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분은 나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넉 달 동안 열심히 인사하고 다닌 덕분에 이젠 나를 아는 동네 분들이 계신 것이다. 그중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분도 많다는 사실이 나를 살짝 긴장시킨다. 이제는 행동거지 조심하고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웃으면서 그분에게 대답했다. “아~ 예, 다음 달에 갑니다.” 

    

저만큼에서 봉팔이와 봉팔 누나가 걸어오고 있다. 아마 둘이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봉팔이 누나가 나를 보자 먼저 인사를 한다. “안녕 봉팔이~” 나는 봉팔이에게 인사를 했다. “봉팔아, 아저씨에게 인사해야지” 봉팔이 누나가 봉팔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봉팔이는 나를 아는 체도 안 한다. 봉팔인 우리 집 건너 건너에 사는 개(犬)의 이름이다. 그리고 봉팔 누나는 그 집 딸이고. 봉팔이는 어제도 집 앞을 지나는 나를 보고 심하게 짖었다. 반가워서 짖는지 외지인이라 짖는지 잘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봉팔이가 나를 보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인사하는 날이 내가 진정 와룡면 원주민이 되는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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