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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Aug 08. 2022

군산 도서문화공간 조용한흥분색 : 문화예술기획 강연

문화예술기획자가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

군산 도서문화공간 조용한흥분색 : 문화예술기획 강연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던 6월의 어느 날, 군산의 독립 책방 '조용한흥분색' 권세나 책방지기님에게 메일이 한 통 왔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조용한흥분색'으로 부터의 강연 청탁서


 3년 전인 2019년 10월, 스페인 여행 에세이인 <마드리드 0km>를 발간하고 전국에 있는 여러 독립서점에 입고 의뢰를 하면서 인연이 되었던 '조용한흥분색'이었다. 특히 '조용한흥분색'에서 <마드리드 0km> 북 토크도 진행했던 터라 늘 마음으로 애정하고 응원하는 책방이었다.


2019. 10. 조용한흥분색에서 진행한 북 토크

 

 약 3년이 지난 8월, '조용한흥분색'은 새로운 곳에서 공간을 오픈했고 강연이 아니더라도 꼭 축하해드리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군산으로의 짧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혼자 군산을 다녀오려고 했으나 짝꿍이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서, 8월 5일 금요일 빈센트와인 영업을 마치고 새벽에 바로 군산으로 향했다. 새벽에 출발하니 차가 전혀 막히지 않아서 2시간 22분 만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절하듯 잠들고 겨우겨우 일어나 재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조용한흥분색 외관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하늘은 맑았다. 무척이나 덥긴 했지만 비 오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냐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높은 건물 없이 시야가 탁 트이는 시골길을 달려 검은색 외형에 분홍색 텍스트가 새겨진 '조용한흥분색'과 마주했다.


 시골 동네에 있는 건물이라 멀리서 봤을 때는 할아버지 댁에서 자주 봤던 쌀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창고형 문화예술공간을 좋아하는 내게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낮은 담벼락에는 곰 두 마리가 월담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곰의 자세(?!)는 책방지기님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매번 바꿔놓는다고 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의 곰인형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조용한흥분색 내부 모습


 내부로 들어가면 왼쪽 편에는 카페의 카운터가, 오른쪽 편에는 책방의 카운터가 위치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카페는 동생이, 책방은 누나가 운영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가족끼리 일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가족이 함께 일 할 때는 최대한 떨어져 있는 게 좋다. 내 일 네 일을 정확히 구분해서 각자 할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진다. 아마도 두 분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3년 전에는 미원동에 있는 '조용한흥분색'에서 북 토크를 진행했었는데, 미원동의 시즌1 '조용한 흥분색'은 작가의 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책방이었다면, 시즌2 '조용한 흥분색'은 층고가 높고 공간 배치도 널찍널찍하게 되어 있어서 시원한 맛을 주는 책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무로 짜여진 선반과 진열대 등이 책과 어우러지면서 방문한 사람들로 하여금 무척이나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일일이 공간을 다 구성한 책방지기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조용한흥분색 2층에 마련된 갤러리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적당히 넓은 공간이 나온다. 한눈에 이곳은 갤러리(전시장)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한창 전시가 개최 중이었다. '색(color)'에 대한 전시였는데 색과 연결된 '향(perfume)'을 맡으며 볼 수 있는 감각체험형 전시였다. '조용한흥분색'이라는 이름에도 다양한 감각이 섞여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책방지기님이 인간의 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정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ㄱ

 

좋아하는 일에 대한 진심 : 문화예술기획자가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


 공간도 돌아보고, 커피도 한 잔 마셨고, 책방지기님과 오랜만에 근황도 나누다 보니, 이제 군산을 찾은 본 목적인 강연을 슬슬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이번 강연은 책방지기님이 기획한 <파인더스, 흥분색 Part 1. 사람책을 읽는 시간, 흥분색>의 일환으로 준비되었다. 책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상상이 글로 표현되면 '소설'이 되고, 사람의 경험이 글로 기록되면 '에세이'가 된다. 사람의 지식과 지혜가 글로 공유되면 '인문학 서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책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는 지점에서 강연은 시작된다.


 강연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조용한흥분색'에서 했었으니, 이번에는 내 본업인 '문화예술기획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지기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설렘'에 대해 청탁서에 이미 제안을 주셨기 때문에 주제를 정하고 난 다음에는 쉽게 강연의 목차를 꾸려갈 수 있었다.

 

강연의 주제


 내가 좋아하는 '문화와 예술을 기획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대상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문화와 예술은 결국 사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공연, 전시, 축제, 교육 등 참여하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 그 목적성은 휘발되고 만다. 이 일을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8개의 작은 주제로 나누어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고 그 가운데 만난 사람들과의 스토리들을 나누었다.


 1. 손자를 위한 10시간의 기다림

 2. 코드 아담 : 돌아가신 아버지

 3. 만취, 상처 그리고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

 4. 날아라 자바라 텐트

 5. 혈투, 사내 체육대회

 6. 경력단절 예술인의 눈물

 7. 베리어 프리, 청각장애인의 눈물

 8. 상상치 못할 민원 받이


 총 8가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내용에 청중들이 관심을 가져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기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함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연이 시작되고 그런 의심을 눈 녹듯 사라졌다.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어주시는 분, 종이에 메모를 하시는 분, 마스크로 인해 입은 보이지 않지만 눈으로 웃고 계신 분. 모두가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고, 함께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연 모습


 약 50분 간의 이야기를 마치고 20분 정도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은 미리 강연을 신청할 때 남겨주셔서 충분히 답변을 생각해보고 강연장에 올 수 있었다. 여러 질문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을 소개하고 싶다.


2014 발롱도르 시상식(FIFA)


https://www.youtube.com/watch?v=ix-h7SEUJIA (영상)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때 그 순수성이 퇴색되지는 않을까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였다. 2014 피파가 주관한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메시의 오랜 우상이었던 아이마르가 메시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던 일화였다. 당시 메시는 부상과 월드컵에서의 부진 등으로 국가대표 은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큰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메시는 이 날 자신의 우상이 보내온 영상편지를 보고 다시 한번 미소를 되찾으며 시상식을 마치게 된다.



<아이마르의 영상편지>

"메시, 안녕. 너는 내가 선수로서 너를 얼마나 존경하고 널 어떤 선수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거야. 나는 네가 이미 이루어낸 커리어에 대해 축하를 보내고 싶고 네가 이루려는 모든 것을 이루기를 원해. 너는 두 명의 환상적인 선수(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마누엘 노이어)들과 경쟁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속엔 네가 항상 최고야. 나는 너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 첫 번째, 너는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축구 게임을 할 때 가장 열심히 하니, 아니면 실제 축구에서 더 열심히 하니?(농담)"


 "두 번째 질문은 진지해. 메시! 넌 네가 어렸을 때 축구에 즐거움을 느꼈던 것처럼, 지금도 축구를 재밌게 하고 있니?"



 메시는 이내 정답을 찾았다는 듯 "물론이지!"라는 대답과 함께 어두웠던 얼굴에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었을지라도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순수했던 마음과 이 일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가장 우선되는 것을 꼭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나의 순수성 다른 표현을 쓰자면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뿌리 깊게 내려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고, 오랜 기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방지기님께서 찍어주신 폴라로이드 사진



 조용한흥분색의 한 켠에는 첫 번째 사람책 강연을 마친 내 사진이 붙어 있다. 처음 시작을 연다는 것은 부담되는 일인 동시에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선발대, 선봉장, 선발 라인업 등 처음에 나서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신뢰라는 감정이 따르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님도 내게 그러한 감정을 가지셨기를 바라고 또 기대감에 부응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뒷풀이 군산로컬맛집 세월촌

 

 무사히 강연을 마치고 저녁에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3년 전에는 바로 다음날 대구에서 또 다른 북 토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 토크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차를 몰아 경상도로 넘어갔던 아쉬운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리 약속을 정하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책방지기님이 추천한 군산 로컬 맛집인 '세월촌'에서 치맥을 하기로 했는데, 양이 어마 무시했다. 수도권 기준 적을 수도 있는 양을 고려하여 닭똥집 튀김과 후라이드를 각각 하나씩 주문했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양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맛은 정말 말해 뭐해.


 사실 권세나 책방지기님과 온라인에서 소통을 한 게 거의 전부였고 짝꿍은 아예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도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한참 수다를 떨었다. 8시 30분에 시작한 자리가 12시 30분쯤 되어서 끝났으니, 이 정도면 우리 나름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우리 세 사람의 결이 무척이나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조용한흥분색의 아이디어에서 따와 우리 세 사람의 색이 무척이나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을 '다음에'를 기약하며 우리는 또 만나기로 했는데, 그리 멀지 않은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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