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탈출기
Ⅰ. 고통 속에 무기력했던 내가, 괴로움 속에 외로울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다. 내 기억에서 송두리째 들어내 파쇄기에 돌려버리고 싶을 만큼 아팠고 괴로웠으며 우울했고 무기력해졌던 지난날을 다시 곱씹는 게 무슨 의민가 싶다가도, 내가 인터넷에서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았던 때를 생각하니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겨 누군가에게 하나의 응원과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내가 2년간 겪었던 지옥 같았던 전셋집 탈출기이자,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부동산 카르텔 아래 개인으로써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분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작게나마 위로를 받고 희망을 품고 보증금 반환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은 분명한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중개인, 임대인, 법원, HUG, 은행 등 모든 이들이 마치 당신이 가해자가 된 것처럼 불친절하고 차갑게 대할 것이다. 분명 당신이 피해자임에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작아지고 위축될 것이고 보증금 반환의 길고 긴 절차 아무도 당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과정에서 강도는 다르지만 일종의 우울증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보다는 내 상황에 맞는 보증금 반환의 절차를 공부하고 서류를 미리미리 준비해서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응원과 지지는 있지만, 절차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오롯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똑똑해져야 하고 내가 단단해져야 이 모든 과정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 그 과정을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보증금 반환 과정을 상세하게 글로 적어두었으니, 충분히 읽어보고 비슷한 발걸음을 걸으면 된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렵고,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신은 이겨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견뎌주기를 버텨주기를.
Ⅱ. 생애 첫 전셋집 입성
2008년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된 자취의 역사는 늘 월셋집을 구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보증금 300에 월세 40, 보증금 500에 월세 30. 보증금을 올려 월세를 내리든, 보증금을 내려 월세를 올리든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의만 있으면 비교적 소액을 보증금으로 두고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집에서 독립하게 되면서도 모아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직장의 시작 = 새로운 월셋집 구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직장 생활로 시작된 첫 타지 생활은 부산이었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는 500에 40으로 회사 바로 근처에 원룸을 얻어서 지냈다.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타지살이의 혹독함을 제대로 경험한 부산에서 유일한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 고마운 집이었다.
두 번째는 이제는 고향인 경주만큼이나 고향처럼 느껴지는 인천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집을 고르는 우선순위는 '회사와 가까운 곳' 이었기 때문에 인천 연수구 청학동으로 거처를 구했다. 수도권이라 집값이 비쌀 거라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30에 30이라는 괜찮은 가격으로 1.5룸을 구해서 들어올 수 있었다. 청학동에서는 꽤 오랜 시간을 지냈다. 2018년 8월부터 2020년 11월까지니까 2년하고도 3개월 정도를 살았다.
월세에 살면서 막연한 전셋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 달에 집세로 나가는 돈은 아끼면서 훨씬 더 좋은 컨디션의 집에 거주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직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회사와 집이 가깝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전셋집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가능하다면 연수구 내에서 전세를 구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컨디션과 보증금 규모가 맞지 않았다. 차로 출퇴근하기에 15~20분을 넘기지 않는 조건으로 알아본 결과, 미추홀구 주안동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그리고 최후의 선택 요소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는 물건을 알아보았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 발로 전세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인천시 미추홀구'를 향해 내 발로 들어가게 되었다.
Ⅲ. 연이은 불행의 서사 그리고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온 후로 이상하리만큼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가장 먼저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이사와 완전 맞물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충격적이고 너무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눈 내리던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옥상에 올라갔는데 도어락이 고장 나면서 꼼짝없이 옥상에 갇혔던 일이 있었는가 하면, 이 집에서 지낸 2년 동안 5차례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났으며, 눈은 이대로 계속 안 좋아지면 실명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을 듣게 되었고, 이는 임플란트를 해야 될 정도로 신경이 손상되어 있었고, 허리 디스크가 찢어져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돈 모을 틈 없이 통장이 줄줄 새는 경험을 2년 동안 했던 것 같다.
Ⅳ. 지옥의 시작 : "임대인(집주인)이 변경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21일 문자를 한 통 받게 된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정효민님00은행 전세금 대출을 받고 계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주대로000번길 00-00, 000호 (주안동,0000)의 소유자가 변동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새로운 임대인에게 전세대출관련 안내문을 보내드리기 위하여 새로운 임대인분의 주소와 연락처 확인 후 수신전용 000-0000-0000 번호로 답신 부탁드립니다.
권리조사업체 (주)000
최초 전세 계약을 체결했던 임대인(집주인)이 이후에 집을 매매할 예정이라 임대인이 바뀔 수 있다고 언질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집이 팔렸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자를 받은 순간 이미 내 일상은 지옥문을 지나 지옥으로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위 문자에 대한 회신을 위해 전 임대인에게 현 임대인의 연락처를 공유 받아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임대인의 개인정보를 요청했다. 문자를 읽었다는 표시는 떴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약간의 새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전세 사기(사실 전세 사기인 건지, 단순 임대인이 파산한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의 피해자가 된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1월, 2월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봤으나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때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 반환받을 수 있는 절차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전세 계약이 1년하고도 9개월 정도 남은 시점부터 본격적인 '일상의 지옥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Ⅴ. 수많은 절차, 어려운 용어, 낯선 공간, 차가운 시선(태도)
사실, 내 전셋집에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터질 거라는 심증이 가득했지만 임차인이 본격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절차는 임대계약이 6개월 미만으로 남았을 때부터 존재한다. 그 이전에는 답답하고 불안해도 임차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 경우는 집주인이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아 더 복잡한 절차를 따르게 되었지만, 만약 임대인과 연락이 되고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통화 녹음, 문자 내용이 있다면 조금은 절차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
① 계약 연장의 이사가 없음을 고지
ⓐ 문자 메시지 발송
HUG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절차는 집주인에게 전세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전화, 문자와 같은 방식인데 전화는 추후에 증빙 자료로 제출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로 변환하여 공증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추가되기 때문에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나처럼 집주인이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집주인으로부터 확인했다는 답신을 받을 수 없는 특수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제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 우체국 우편을 통한 내용증명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여 답변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 '보증보험 이행청구'를 위한 자료 준비가 끝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세사기가 사방에서 빵빵 터지는 시기에는 답변을 받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우체국을 통한 내용증명의 절차를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내용증명이란 개인적인 통신의 방법으로는 상대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지 못할 경우 우체국을 통해 우편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체국 내용증명을 하는 방법으로는 직접 방문하는 방식과 온라인 접수의 방식, 둘 중 편한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방문보다는 온라인으로 쉽게 접수하는 방법이 효율적으로 보인다. 나도 온라인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우편이 잘 배달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조회가 가능함으로 마음고생을 조금 덜 수 있다.
나는 2020년 12월 10일 전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전세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만 집주인에게 계약 종료 의사를 통보하면 됐지만, 최근 계약한 임차인들은 2개월 전까지 전달되어야 하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 기간이 중요한 이유는 우체국을 통한 내용증명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증명이 임대인에게 도착되지 않고 폐문부재 형태도 반송되기가 반복된다면 다음 절차가 또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이야기에 담도록 한다.
내용증명은 2022년 5월 24일에 접수했고 3번의 배달, 3번의 폐문부재를 거쳐 6월 8일에 최종적으로 내게 반송되었다. 이 절차가 보름이나 걸린 셈이다. 나처럼 폐문부재로 반송되지 않고 집주인이 수령한다면 일이 간단하게 풀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끝까지 임차인이 고생하게 되니 부디 한 번에 집주인이 우편물을 수령하기를 바란다.
ⓒ 법원을 통한 공시송달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공시송달은 내용증명이 임대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 법원을 통해 임차인의 계약 종료 의사가 임대인에게 송달되었음을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절차를 이야기한다. 공시송달 역시 방문 접수의 방식과 온라인 접수의 방식이 있었고 나는 이번에도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대한민국 법원 전사 소송' 시스템을 통해 공시송달을 진행했다.
필요한 서류는 '내용증명 서류', '등기부등본', '임대인 주민등록초본', '임대차 계약서'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서' 등이다. 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추가되거나 없어도 되는 서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필요 서류들을 준비하면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이삿날(전입신고일)에 전 임대인과 현 임대인 간의 부동산 매매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내 임대차 계약서는 지금의 임대인과 직접 체결한 서류가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행히 '묵시적 계약'이 성립되어 별도로 다시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는 있었으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나는 임대인의 주민등록초본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런 문제를 겪은 사람이 다수 있었고 나 역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기게 되었다. 임대인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서가 꼭 필요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내게는 전 임대인과 체결한 계약서밖에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에는 전 임대인과 현 인대인이 체결한 '부동산 매매 계약서'가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 임대인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계약서를 제3자에게 제공한다는 게 무척이나 염려가 되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원본이 아닌 사본만 있어도 되는 점, 내가 지금 너무 부당한 일에 빠져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겨우겨우 계약서 사본을 이미지 파일로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전 임대인과 현 임대인 그리고 부동산이 서로 짜고 나를 엿 먹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매매 계약서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남아 있다.
2022년 6월 27일 신청서를 접수해 7월 12일에 한차례 보정 서류를 제출한 뒤, 역시나 수취인 불명 1회를 거쳐 8월 23일에 최종적으로 결정정본/해지통지서가 공시송달되었다. 공시송달 역시 보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HUG를 통한 보증금 반환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가 얼마나 빨리 절차를 숙지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를 하는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 빠르면 빠를수록 내 수명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낼 수 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무조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② 임차권등기명령과 전세금 대출 연장
전세 계약의 종료를 법적으로 임대인에게 전달했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공시 송달이 끝난 시점이 되면 임대계약이 2~3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증금 이행청구는 전세 계약 종료 1달 후부터 신청할 수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임차권등기를 법원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 또 법원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서류가 복잡해 인터넷 접수가 아닌 방문 접수로 진행했다. 내 생에 첫 법원 방문이었다. 물론 회사일을 하면서 법원에 업무를 보기 위해 찾은 적이 있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일로 사건을 접수하러 온 것은 처음이라 왠지 긴장도 되고 마치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임차권등기란 HUG를 통해 보증금 반환을 받기 위해, 임대인이 전세 물건을 함부로 처분하거나 담보로 대출받을 수 없도록 제한을 거는 절차를 말한다. 해당 절차는 전세 계약이 종료된 시점부터 진행이 가능하다. HUG의 보증이행 청구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전세 계약 종료 다음날 바로 접수하는 게 좋다. 나 같은 경우에는 10월 28일에 계약이 종료되었으나 다음날이 주말이라 31일(월)부터 접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차권등기를 해야 하는 사실을 HUG에서 따로 알려주지 않아 몰랐었다. 이후 절차를 공부하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신청 가능한 날부터 4일이 지나고서야 부랴부랴 접수했다. 아무튼 HUG는 진짜... 불친절하고 연락이 안 되고 임차인을 말려 죽인다.
2022년 11월 3일 법원에 공시송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보통은 3~4일이면 공시송달이 결정되고 결정정본이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각각 발송되는데 내 사건은 4일을 넘어 며칠이 지나도 결정이 안 되고 접수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해도 연결이 되지 않고 답답한 건 언제나 피해자인 임차인이다.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전화가 연결 안 되냐고 따져보니... 담당자가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되어서 사건 처리가 안 되고 있단다. 하... 하하하... 대한민국 시스템 아주...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니 업무가 안 돌아간다. 담당자가 코로나에 걸린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이렇게 많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냥 절차 자체가 멈춰지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11월 3일에 접수한 공시송달은 아주 다행히(?) 폐문 부재를 1회만 거쳐 12월 9일 임대인에게 도달되었다. 36일 만이었다. 빠르면 3~4주에도 끝난다는 절차가 나는 한 달 이상 걸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임대인에게 도달한다고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등기부등본상에 임차권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12월 9일 임대인에게 임차권 등기에 대한 결정정본이 도달했고, 12월 12일에 법원에서 등기국으로 등기 촉탁서가 발송되었고, 12월 14일에 최종적으로 등기부등본에 임차권이 설정되었다. 41일 만이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안심 전세 대출을 받으면 보통 만기일이 전세 종료 후 한 달로 설정되어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는 기간과 전세 사고가 발생하면 HUG를 통해 이행청구를 진행해야 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처럼 보증금 이행청구를 위한 기간이 꽤나 소요되기 때문에 대출을 연장해야 한다. 보통 2개월을 연장해 준다. 즉, 나는 1월 28일까지는 무조건 이사를 나가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대출 연장 절차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출 은행 지점을 찾아가 '임대차 계약서', '주민등록초본' 등을 제출하면 대출을 연장해 준다.
만약, 연장된 2개월 내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대출은 6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는데 이렇게 연장된 대출은 환급 수수료가 발생하게 된다. 내 경우 은행에서 대출한 금액으로 수수료를 계산해 보니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무조건 2개월 내에 절차를 끝내리라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③ 보증이행청구
등기부등본에 임차권이 설정되면 그 즉시 HUG에 방문해 보증이행청구를 신청할 수 있다. 내 경우 12월 14일에 신청했다. 여의도에 있는 도시보증보험공사 서부관리센터로 방문했다. 드디어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길고 길었던 싸움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에 약간은 눈물이 날 뻔했다. 보증이행청구에는 서류가 정말 많이 필요했다.
보정해야 할 서류가 없게끔 정말 몇 번이고 서류를 확인하고 확인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작성해야 할 내용들을 채워나가면서도 틀리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읽었다. 접수 담당자가 꼼꼼히 잘 준비해와서 별문제 없이 심사를 통과할 거 같다고 이야기해 줬다.
12월 19일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이행청구가 접수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12월 24일 대출은행에서 보증보험 반환 심사가 완료되었다는 공문을 HUG로부터 받았다며, 이삿날이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전화가 왔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HUG에 연락했다. 당연히 연락이 안 됐다. 한 20통 전화를 하니 겨우 연결되었다. 은행에서는 심사가 완료되었다는데 언제쯤 결과를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런 사실이 없단다. 도대체 HUG는 언제쯤 정확하게 일 처리를 해줄까 의구심이 들면서 이제는 그냥 기대하지 말자는 생각이 커졌다.
1월 31일부터 몸이 너무 안 좋더니 독감에 걸렸다. 보증금 반화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도 고장 나는 건가 싶었다. 새해가 되어도 HUG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1월 3일 참다 참다 다시 한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몸으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여러 번 번호를 눌렀다. 간신히 연결된 담당자는 심사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아니... 심사가 완료되었으면 연락을 해줘야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심사가 완료되면 담당자가 이사 날짜에 대해 같이 조율하고 안내 사항들도 보내준다는데 그런 것도 일절 없었다. 이사 날짜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알려달란다. 이 모든 과정이 유선상으로만 진행되고 별도 서류를 받은 게 없어서 내가 이삿날로 정한 날짜에 이사를 나가도 되는 건지에 대한 확신도 안 생기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절차도 계속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도대체 담당자가 이렇게 불친절하고 불확실하게 일 처리를 해도 되는 건지 짜증이 너무 많이 났다.
④ 이사 및 보증금 반환
드디어 이삿날인 2022년 1월 16일이 되었다. 이사 나가는 날 HUG는 업무 대행업체를 통해 명도 확인을 한다. 명도 확인이란 쉽게 말해 임차인이 전셋집에 대한 공공요금(전기, 수도, 가스, 관리비 등)을 다 수납했는지를 확인하고 이삿짐도 다 빠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말한다.
대행업체도 이삿날을 기준으로 일주일 전에는 안내 사항들을 문자로 보내준다고 하는데 나는 이사 3일 전인 13일(금)에 문자를 받았다. 왜 나한테만 이래....
이삿날 아침에는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다. 우선, 10시 30분까지 모든 명도 절차가 마무리되고 대행업체 담당자가 HUG로 명도 완료 서류들을 발송해야 11시 이후 보증금이 반환되기 때문에 빠르게 모든 일 처리를 끝내고 대행업체 담당자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
도시가스는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전출/전입 신청을 해놔야 가장 빠른 시간인 9시에 방문해서 가스 해지와 요금 정산을 해준다. 전기와 수도는 9시가 되면 바로 전화를 걸어 이사 정산 신청을 해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짐도 10시 30분까지는 빠져야 하기 때문에 이사 업체와 계약을 할 때, 이 부분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모든 절차가 10시 정도에 끝났고, 10시 10분쯤 대행업체 담당자가 방문해 공공요금 납부된 사실과 짐이 다 빠진 것을 확인해서 HUG에 보고 했다. 대행업체는 보통 지역의 시니어들을 채용한 공공 근로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 집에 나온 담당자도 어르신이었는데 요즘 일이 너무 많다고 하신다. 자기들이 바쁘면 안 되는데 걱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겪지 않아도 될 문제로 힘들었겠다며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셨다. 2년이라는 지옥 같았던 기간 동안 보증금 반환과 관련된 기관에서 처음으로 날 위로해 준 사람이 이삿날 만난 어르신이었다는 게 씁쓸했다. 마지막으로 임대인에게 문자로 퇴거 사실을 알리고 전셋집을 떠났다.
⑤ 새 집 입성
이제 보증금 반환을 확인하고 새 집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역.시.나.H.U.G.
11시가 넘어 12시가 되도록 보증금 반환을 안 해준다. 매뉴얼에 분명 10시 30분 이전 명도확인이 되면 오전 중에 반환이 완료된다고 써 놓고서도 자기들은 규정을 안 지킨다. 역시나 스트레스로 죽어버리겠는 건 피해자들이다.
내 경우에는 새 집에도 버팀목 대출로 입주하는 거라 기존의 대출이 상환되어야 새로운 대출을 실행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새 집에 잔금을 치러야 열쇠를 받고 이사를 시작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는 12시부터 3시까지로 예약되어 있는데 보증금 반환이 딜레이 되면서 모든 일정이 꼬일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HUG 담당자에게 전화를 몇 통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서부관리센터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봐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전화는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걸었을 때, 단 한 번도 한 번에 연결된 적이 없고 몇십 통은 걸어야 겨우겨우 연결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날은 아예 전화 연결이 안 되니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봐도 답이 없다. 결국 보증금은 2시가 다 되어 입금되었다.
HUG는 마지막까지 불친절했고, 무책임했으며, 직무유기를 했다. 보증금이 반환된 이후에도 담당자는 연락 한 통 없었다. 혼자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꼈던 나만 바보, 등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 모든 감정을 무사히 보증금을 돌려받았다는 사실로 만족해야 하는 피해자의 상황도 너무 엿 같은 기분이었다.
Ⅵ. 다시 찾은 웃음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를 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새 집에서 생일을 맞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새 집도 너무 잘 구해서 뷰도 좋고 생활하기도 편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옥 같았던 2년을 잘 버텨낸 덕분에 얻게 된 행복이라 생각한다.
전세 사기를 당하고 보증보험 반환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웃음을 잃게 되었다는 것과 인생에 대한 비관적 시선으로 가득 찬 일상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이대로 그냥 죽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모든 것을 그냥 포기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막연히 "잘 해결될 거야"라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해주었지만, 실제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희망의 메시지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희망보다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걸 구분할 수 있는 냉철함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 내 인생에 대한 불신의 시선으로 현 상황을 주시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가 어제도 내게 이야기했다. 드디어 사람이 원래대로 밝아졌고 장난기도 되살아났다고. 내가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기운을 뿜어낸 건 참 미안하고 나 자신도 속상하다. 그럼에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뉴스를 보면 '빌라왕'이라는 이름으로 보도가 나오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얼굴 한 번,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아니 문자 메시지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임대인에게 고마운 게 딱 하나 있다. 내가 HUG를 통해 보증금 반환을 받는 순간까지 죽지 않아 줬다는 점이다. 정말 마음속으로 모든 고통 다 받고 죽기를 바랐지만, 그 시점이 아직은 아니다. 만약 이 00씨에게 나처럼 똑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가 구제받고 일상을 되찾은 후에 죽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서민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일상을 지옥으로 만든 악마 같은 가해자들이 죽음이라는 도피처가 아닌 처벌이라는 정의 구현으로 자신들의 죄를 감당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론 그들에게 세금이 들어가는 것도 너무 짜증 나긴 하지만, 그들도 지옥은 맛봐야 하니까.
아무튼 내게 있어 최악으로 기억될 2020년 11월 ~ 2023년 1월 16일은 이로써 마무리되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품고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내가 새로운 일상을 회복한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이겨내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궁금한 것들은 댓글을 통해서 남겨주시면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알려줄 것을 약속한다. 관련된 모든 기관이 당신을 모른체하고 차갑게 굴지라도 같은 피해를 경험해 본 나는 당신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 내게 누군가 그러했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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