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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un 25. 2023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충돌:포르쉐와 덤프트럭>

충돌에서 발생한 우리의 곁에 관하여

2023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충돌 : 포르쉐와 덤프트럭>, 충돌에서 발생한 우리의 곁에 관하여


여름이 성큼 다가왔지만, 가끔은 봄의 간지러운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이러한 계절에 나들이 삼아 다녀올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연수문화재단 '아트플러그 연수'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나눔미술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22점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연수구 예술인 작품 8점이 하나의 주제로 전시되고 있다.


2023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충돌 : 포르쉐와 덤프트럭>은 연수의 역사, 우리나라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하나의 주제 안에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포르쉐와 덤프트럭이라는 상반된 대상을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입장에서 조금 더 살펴보자면, 누군가의 시선으로는 단순히 '포르쉐=송도 신도시', '덤프트럭=원도심' 이라는 수식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이번 기획전은 그런 이분화된 시선과는 결을 달리한다.


바다였던 곳을 흙과 시멘트로 메워 만든 송도는 필연적으로 덤프트럭과 강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원자재는 덤프트럭을 통해 이동된다. 그렇게 건설된 도시를 더욱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어가는 1등 공신이 바로 덤프트럭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런히 정돈되고 부유해진 도시는 점차 많은 양의 새로운 자동차들에 의해 점령당한다. 그중 도시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가 포르쉐다. 포르쉐가 빌딩숲을 질주하는 도시. 우리는 그런 도시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이번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덤프트럭에 가해지는 혐오의 시선. 포르쉐를 향한 동경의 눈빛이 아니다. 새로운 공구의 건설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덤프트럭이 욕망의 대상이 된다. 신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늦은밤 아파트를 울리는 포르쉐의 거대한 배기음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는 존재가 달라지며 발생하는 충돌과 변화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좇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충돌을 발견하고자 하는 설레는 탐구의 결과를 관람객과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https://youtu.be/ZseojPcP1X4


조습 작가의 「물고문」은 직관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떠오른다. 영화 1987을 통해 요즘 세대들에게도 다시 한번 각인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생이던 박종철 열사는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 등 끔찍한 강압수사를 받던 중 사망하게 되고 이는 6월민주항쟁의 불씨가 되었다.


「물고문」 조습, 2005, 컬러프린트, 100x126cm, ed.2/5


사진 속에는 박종철 열사처럼 물고문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인물과 그 당시의 형사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두 명이 액자의 좌편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오른쪽 상단에 배치되어 있는 두 명의 인물이다. 그들은 바로 뒤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실 우리의 삶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안함 피격, 세월호 참사, 연평도 포격, 이태원 참사 등 우리 주변에 일어났던 상처 가득한 사건의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살아냈어야만 했다. 마음으로는 아파했고, 좌절했으며, 무기력감을 느껴졌지만, 우리는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참상 가운데서도 각자의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등을 지고 싶어서 진 것이 아닌, 외면하고자 외면했던 것이 아니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그러나 그저 그런 하루 일 수도 있는 우리의 일상 중에도 세상에서는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아프고 시린 일들이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 달리 사진을 해석해보자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 벗고 있는 채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권력자, 기득권 세력 혹은 기울어진 언론에 의해 정보가 차단된, 눈이 가리워진 일반 대중을 표현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반대로 유튜브와 sns 등 언론을 어느정도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과 매체들이 생겨나면서 일반 대중들이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는데는 용이해졌지만, 그 정보들이 정확한 출처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제작자에 의해 지나치게 편향되어지고 개인의 주관이 과도하게 표현된 경우도 많아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라는 옷을 어떻게 잘 골라서 내 몸에 훙륭하게 코디해 내는 가는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미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사진에 숨겨진 재미가 하나 있는데, 작가가 직접 작품 속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작가일지 맞춰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정답 : 물고문을 받는 사람 <- 드래그)


「오일 페인팅」 임수진, 2017, 단채널 영상, 디지털잉크젯프린트, 8분 1초, 80x120cm(x3), ed.2/5, 2/5                             


임수진 작가의 「오일 페인팅」 프로젝트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에서 2017년에 진행되었다. 제다의 구시가지 알 발라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번성했던 지역이었으나, 1930년대 석유의 발견으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은채 버려진 곳이다.


임수진 작가는 어떠한 이유로 인해 고유의 색을 잃어버리고 폐허처럼 남아 버린 곳을 미술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직접 그 지역의 무너진 건물을 마주한채, 커다란 아크릴 혹은 유리를 세우고 사라진 부분을 붓으로 채워간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을 다시 지워내는 퍼포먼스를 가져가는데, 용도를 다해 버려지고 폐허가 되어 버린 대상이 예술을 통해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 있지는 몰라도 결국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재밌게도 사우디아라바이아 현지에서 나는 기름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석유의 발견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석유로 다시 복원한다는 게 모순으로 느껴져, 작가의 작업의도가 더욱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박진화, 2020, 캔버스 아크릴릭필러, 아크릴 물감, 130.3x194cm / 「절골(인사동)입구도」배종헌, 2022, 캔버스 유화물감, 112.1x145.5cm


방을 빠져나와 넓은 공간으로 이동하면 더 많은 작품들이 눈 앞에 펼쳐 진다. 그 중에서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작가가 그림을 통해 말 하고자 하는 의도가 같은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두 작품 모두 그림을 통한 치유와 위로의 의미를 담고 있어 상반되는 느낌의 두 작업에서 각 작가들이 어떠한 인사를 관람객에게 보내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박진화 작가의 「우리는...」 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느낀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고독을 캔버스에 옮겨놓는 동시에 함께 느끼는 동시대의 공유 감정을 토대로 관람객에게 위로를 던지고 있다.

여러 얼굴과 형체를 띠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구멍이 나있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아픈 일을 겪으면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라고 표현하는 그대로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구멍을 가지고 살아기도 하지만, 또 어떤 형체는 두 명의 사람이 하나의 구멍을 공유하면 살아간다.

때로는 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과 위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다.

배종현 작가의 「절골(인사동)입구도」로 시선을 옮겨 보니 정규교육 과정에서 배워온 우리나라의 '산수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산수화를 본 적 있었던가? 작가는 캔버스에 우선 금색을 전체적으로 입힌 다음, 그 위에 파란색을 올려,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 산수화를 완성시켰다. 색깔 중 파란색이 인간에게 가장 편안한 감정을 전해준다고 하니, 그림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선물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에서 느껴진 바가 있었는데, 오른쪽 아래를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흡사 어린왕자 같이 생긴 사람 한 명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인사동의 옛 지명인 절골 입구에서 대자연을 마주한 작가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동양의 산수화는 커다란 대자연을 화폭에 옮겨 놓으면서, 인간을 아주 작게 그리고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배치하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이것이 동양적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철학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대자연 앞에서 네가 고민하고 고통 받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지를 알겠니?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그네처럼 살다가 떠나지 않을래?"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예술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처럼 나에게 건네지는 따뜻한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배종현 작가의 「절골(인사동)입구도」를 보다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스치듯 봤던 작품 하나가 떠올랐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퍼 다비트 프리드리히


카스퍼 다비트 프리드리히라는 작가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작품인데, 앞에서 마주했던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가장 높은 곳, 세상의 중심에서 자연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에게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나는 이 그림에 서양적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 문화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스리는 대상으로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그것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받은 인간은 더욱 존귀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생명체가 됨으로써 스스로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위르겐 발러


검색 포털에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패러디'라고 검색해보면,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정말 다양하게 패러디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위르겐 발러의 작품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인간의 모습을 넘어 높은 빌딩과 굴뚝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아닌 부와 명예라는 욕망을 좇는 '물질만능주의'만 있을 뿐이다.


「작동-13개의 검은 구술」 뮌(김민선, 최문선), 2010, 2채널비디오, 65인치 모니터(x2), 메탈 액자(x2), 3분, 반복재생, 84x146x8cm(x2), 30kg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면, 13개의 검은 구술이 이리저리 충돌하는 움직임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동양과 서양의 철학의 관점을 조금 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왼쪽 모니터 화면에 있는 구술은 개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반면 오른쪽 모니터 화면에는 뭉쳐서 아주 빠르게 충돌하는 구슬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서양은 개인주의로 대변된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고 개인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며, 그 움직임이 급진적이지 않다. 왼쪽 모니터의 구슬은 그러한 서양적 철학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반면 동양은 집단주의가 사회전반에 아주 잘 드러난다. 내가 겪은 일이 언제든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아주 급진적으로 표현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속도 또한 굉장히 빠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동양이 맞고, 서양은 틀렸어'의 '옳고 그름'의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양은 이런데, 서양은 저렇네'의 '같고 다름의 인식'으로 우리의 사고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정과 포용의 문화가 정착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예술은 옳다.


「층간소음2」 심래정, 2013, 2채널 영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종이 위에 잉크, 핸드 드로잉, 3분 6초, ed. 2/5                             

가벽 너머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전시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벽면에 뜬금 없이 집이 한 채 그려져 있고, 영상이 상영되며 이내 그 집을 드려다 보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변하게 된다. 

영상은 아랫집의 사람이 담배를 피고 그 연기가 윗집으로 전해지며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의문의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소음이 발생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다세대주택에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로 인해 층간소음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자, 이웃 갈등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층간소음이라고 하면, 윗 집이 아랫집에 가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층간소음은 아랫집이 윗집으로, 옆집에서 옆집으로 전달되는 경우도 많다. 아파트를 건축하는 기법의 변화로 인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일 수록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고 한다.

「층간소음2」의 심래정 작가 역시, 윗집에서 시작된 층간소음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고, 윗 집에 찾아가서 배려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묵살당한 후, 그림을 그려 현재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상을 만들기 위해 스캔 받은 이미지가 약 2,000장 된다고 하니 엄청난 정성이 드러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옆 아파트에 올라가 층간소음의 주범인 윗집을 향해 프로젝터를 작동시켜 '예술적 복수'를 달성했다고 한다.

「Pygmalion」 권능, 2022, 캔버스에 유화 물감, 86x131cm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공간이 보인다. 이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한다. 「Pygmalion」은 권능작가가 붓으로 그려낸 드로잉 작품이다. 나는 처음 이 작품과 마주했을 때, 사진으로 작업을 했거나 프로그램을 활용한 CG작업일 거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유화라는 작품 설명에 감탄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Pygmalion(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이상향에 완전히 부합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해 직접 그런 사람을 흙으로 빚어내겠다고 다짐한다. 애정과 노력을 가해 조각을 완성시켰고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축제날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치며 집에 있는 조각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게된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조각상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있었다는 이야기다. 현대에는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다 보면, 실제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권능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어떠한 것을 이루기를 그토록 바라고 원하고 있는 걸까? 내가 추측하건대, 자기 이상향의 여성을 좇았던 피그말리온처럼, 작가 본인이 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창작물에 대한 동경과 욕망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세상의 각종 아름다운 혹은 모험적인 작품들을 작가의 작업실 곳곳에 가득 채워넣어둔 게 아닐까?

작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접해본 예술작품들로 가득하다. 오른쪽 창문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영희가 보이고, 그 왼쪽편으로는 변기로 알려져 있는 '마르셸 뒤샹'의 「샘」 도 보인다. '프링글스'와 '오뚜기 국수면'도 보이고 진시황릉의 '병마용'이라던지, 저 멀리 벽에는 '뱅크시'의 '하트 풍선이' 날아가고 칠판에는 '바스키야'를 상징하는 왕관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했지만, 나는 작가의 머릿속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창작의 근원이 되는 다른 이들의 창작물을 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 느껴졌다. 어지러이 산재되어 있는 '권능' 작가의 머릿속에서 더욱 놀랍고 감동적인 작업들이 탄생해 보기를 바라본다.


「Abstract Head(AB)」 권오상, 2022, 디지털잉크젯프린트, 복합매체, 78x35x4cm, 3.25kg, 유일본


어딘가 무척이나 불편한 느낌의 조각이다. 미학적 시선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혹은 멋지다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양심적 어려움이 따른다. 어딘가 찌그러져 있고, 어딘가 돌출되어 있으며, 어딘가 함몰되어 있는 남자는 비틀린 외형만큼이나 내 마음을 비튼다.

「Abstract Head(AB)」은 권오상 작가가 만든 조각이다. 우리가 흔히 조각이라 하면, 흙을 빚는다던지, 틀을 잡고 석고를 바른다던지, 철골을 이용해 만드는 것에 익숙해서 이 작품에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면 더욱 특이하게 제작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조각은 픽셀처럼 수많은 사진을 조각 조각 이어 붙여 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하나의 형체로 보이지 않고 무언가 잘리고 분할된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의 외형을 볼 때 전체적인 이미지를 주요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전체적인 비율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람의 신체, 주로 얼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위를 과장되게 나타낸 것처럼 보였다. 이마가 튀어나와 있고, 턱이 돌출되어 있으며 귀는 다른 부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사람뿐 아니라 어떤 대상을 대할 때도 '색안경' 혹은 '선입견'이라 부르는 것들에 지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혹은 그 대상의 매력을 하나 하나 발견해 나가는 재미보다, 뇌리에 박혀 버린 어떤 것으로 섣부르게 판단을 해버리는 것은 그리 좋은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조각의 대상이 되는 남자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업을 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인화루 테크노파크로」 한소연, 2022, 종이에 연필, 53x45cm         「관념도시화」 한소연, 2022, 종이에 연필, 53x45cm                

송도라는 도시는 충돌이라는 단어, 그 자체라고 봐도 될만큼 A와 B가 부딪혀 다양한 C가 생겨나는 도시다. 송도라는 도시의 출발부터가 그렇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와 빌딩이 올라갔다. 아파트 숲, 빌딩 숲 사이로 새와 여러가지 생물들이 살아가는 진짜 숲이 존재한다.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한국인이 생계를 잇기 위해 외국어를 쓴다. 노란 어린이 보호 차량 뒤로 커다란 덤프트럭이 달리고 그 뒤의 차 유리에는 읽을 수 없는 외국어가 적힌 수출용 중고차가 이어 달린다.


그러한 송도의 단면들이 잘 표현된 연필화를 만날 수 있다. 인화루라는 우리 전통 양식의 건물 위로 테크노파크로에 존재하는 다양한 빌딩들이 우거져 있다. 또한 송도를 상징하는 다양한 랜드마크가 소나무(송 松)와 함께 섬(도 島을 만들어 낸다. 물론 송도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이 글은 그러한 것들을 논하는 글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버티컬 아파트」 황문정, 2023, 인쇄된 천, 모터, 140x90x260cm


내가 처음 연수구에 자리를 잡고 송도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 송도의 첫 이미지는 고층 아파트와 반짝이던 유리창이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안정된 삶을 꿈꾸고, 계속해서 나아지는 내 환경을 그려보기도 했다.

황문정 작가의 「버티컬 아파트」는 천에 인쇄된 아파트의 외관이 모터의 움직임을 통해 위 아래로 끊임 없이 움직이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송도라는 지역이 계속해서 간척을 진행하며 신축 아파트를 찍어내는 모습, 즉 아파트가 끊임 없이 올라가는 송도의 전경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사다리에 올라탔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되거나 분양을 받으면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이후, 유일하게 전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되어버린 현 세대들에게 '사다리에 올라탐'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롯이 본인 혹은 부부의 힘으로 사다리에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이들을 위로 향하게 해줄 새로운 '사다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무척 궁금해진다.


「송도 유원지」 나오미, 2020, 캔버스에 분채, 194x130cm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인 송도 유원지. 많은 이들이 연인, 친구, 가족 단위로 피서를 떠났던 장소다. 송도유원지의 '흥'은 인근 지역의 상권과도 직결되었고, 인천 최고의 휴가지로 각광을 받았다. 2011년 송도유원지가 완전히 패장하면서  '망'의 기운 역시도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고 대단지로 형성되어 있던 '꽃게 거리'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등 예전의 위용은 거의 다 사라진 지금이다.

나오미 작가의 「송도 유원지」는 한창 번성했을 때의 유원지 모습을 담고 있다. 오리배와 관람차,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송도유원지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해준다. 이 그림에는 재밌는 사건이 하나 숨어 있다.

왼쪽 상단을 보면 코끼리가 포획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2003년에 송도 유원지에서 사육하던 코끼리 3마리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끼리들이 탈출 했다가 다시 잡히게 된 장소는 인근의 '청량산' 이었다. 코끼리들이 왜 산으로 도망을 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 뉴스에는 지방의 어느 동물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물들의 건강 문제, 위생 문제, 환경 문제 등을 취재한 영상이 방송되기도 했고, 롯데월드 수족관의 벨루가를 바다로 돌려보내라고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시위가 뉴스를 타기도 했다. 동물도 생명을 가진 생명체로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존중 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외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도태되거나 환경 오염 가운데 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케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 한다. 이것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 접근처럼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공론화를 통한 충분한 토론을 거쳐 좋은 방안을 제시하는 건강한 매커니즘으로 연결되어야 맞는 게 아닐까.


「아라베스크」 정정호, 2022, 아라베스크, 싱글채널, 5분 30초                                


2011년  역사의 뒤로 사라진 '송도 유원지'의 현재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물이 가득 차 있던 공간에 대신 들어 차 있는 차를 볼 수 있다. 이곳은 현재 '송도 중고차 매매단지'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출 시장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며, 얼마나 많은 양의 중고차가 이곳을 점유하고 있는지는 영상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정정호 작가는 중고차 매매단지를 르포 형식으로 취재하였고, 취재 과정에서 이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주로 외국인 노동자)이 이루고 있는 그들의 일상과 조우했다고 한다. 안 좋은 시선이 보편적인 이 곳에도 생계를 위해 그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길 떠나온 청년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는 송도 유원지가 그랬듯 언젠가는 이 공간도 다음 시대의 무언가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겠지만, 그 때까지는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더 나은 우리 모두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건강한 소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파이돈」 손광주, 2021, 3채널 영상, 33분 15초, ed. 1/5 ㅣ A.P.2                                

손광주 작가의 「파이돈」은 북극을 누비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책 이름이면서, 그의 제자 이름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데, 작업 「파이돈」은 인간이 오롯이 대자연에 놓여져 있는 아라온호의 선원들의 입을 통해 책의 일부를 낭독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 영상은 30분짜리 영상으로 자리에 앉아 가만히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북극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저절로 경탄이 나오게 된다. 그 가운데 내 삶의 방향성과 내 죽음의 방향성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죽음이 철학적 삶의 완성' 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켜켜이 쌓아올린 삶의 조각들을 죽음으로써 멋지게 완성시키고 싶은 게 내 꿈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잘 살아 내고, 잘 죽고 싶다는 뜻이다.

이 영상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작가의 마지막 인사로도 느껴진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애도의의 작업이자, 끝내지 못한 대화와 관계가 담겨 있다. 영상의 말미에 무덤들이 나오는데, 덤덤하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따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내 죽음 보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죽음을 먼저 만나게 될텐데, 그 커다란 슬픔앞에 소크라테스처럼 처연하게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Attendee-David, Anne, Kevin, Natalie and Aristide」 오민, 2019, 2채널 비디오, 20분 20초


우리가 콘서트장을 가거나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 무대와 예술가를 향해 앉아 음악을 감상하게 된다. 이 때 우리는 우리가 음악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표정, 제스쳐, 흥얼거림 그 밖의 미세한 신체적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 오민 작가의 「Attendee-David, Anne, Kevin, Natalie and Aristide」는 이러한 관점에서 '지휘자', '연주자', '청중'의 표정과 행동의 변화에 집중한다.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음악을 귀로만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청각 외의 다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 지긋이 눈이 감긴다던가, 리듬감 있는 음악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발을 구르게 된다던가, 경쾌한 악기 연주 소리에 콧노래를 조용히 따라부르게 된다던가, 콘서트 장 특유의 향이 음악을 더욱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던가. 우리는 인식하지 않고 있었을뿐 청각을 제외한 다양한 감각으로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어떤 표정과 어떤 행동들을 취하고 있으며, 나도 모르게 어떠한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을지 말이다. 나도 내 모습을 영상으로 한 번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판에 남은 떡볶이 떡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 더 브이오에이, 2022, 3D 애니메이션, 34초, ed.1/100 l A.P2


떡볶이에게 인간과 같은 생명이 있다면, 떡볶이가 태어난 소명은 '사람에게 맛있게 먹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수조에 갇혀 있는 떡볶이는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놓여져 있고 전시되고 있을 뿐이다.

'더 브이오에이'의 「불판에 남은 떡볶이 떡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은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오마주 한 것으로 허스트가 대중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상기시킨다.

"상어의 삶과 죽음도 예술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저 폭력이고 혐오스러운 작품일 뿐인가?"

나는 미술을 감상할 때, 이러한 질문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인류가 가지고 있는 외형과 형질이 다 다른만큼 하나의 예술작품을 볼 때 떠오르는 감상의 디테일은 완벽하게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의 감상법에 틀린 것은 없고 다름만이 존재할 뿐이다.

「불판에 남은 떡볶이 떡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을 보면서 "떡볶이가 너무 귀엽다"라는 감상을 하든, "떡볶이가 수조에 갇혀 있어서 불쌍하다"라는 평을 하든, "떡볶이는 그래도 행복해 보이는데?"라는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저 예술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사람들은 미술을 감상하면서도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떤 그림을 함께 보며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거 같아?"라고 질문하면 혹시나 틀린 대답을 하거나 무식(?!)해 보일까봐 말을 아끼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옆 사람과 끊임 없이 토론하고 공감하고 대척해보면서 발생하는 어떠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미술(전시)의 가장 주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이것을 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충돌은 싸움과 분란에 의해 서로가 적이되는 과정이 아니다. 충돌은 서로가 부딪혀 서로의 날카로운 부분과 모난 부분을 깎아내어 미학적으로 관계적으로 더욱 완성된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나는 미술관이든 공연장이든 축제장이든 예술을 통한 건강한 충돌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 서로를 향해 날선 비난과 혐오를 내 뱉는 시대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애정의 언어로 품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https://neolook.com/archives/2023053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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