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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Nov 02. 2021

창조의 영감, 빛과 그림자 : 요시고 사진전

요시고 사진전 : 따뜻한 휴일의 기록

창조의 영감, 빛과 그림자 : 요시고 사진전


 지난 초여름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인 '요시고(Yosigo)'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때마침 얼리버드 이벤트로 50% 입장료 할인도 하고 있어서 바로 예매를 했다.

 하지만 실제 전시를 관람한 건 지루했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이었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빴던 것도 이유겠지만, 코로나  19 확진자수가 2000명을 넘어서는 대유행 속에서 서울, 게다가 대기 시간만 2시간 이상씩 걸린다는 '그라운드 시소'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고 또 기대했던 전시였던 만큼 요시고의 사진을 만난다는 설렘을 가득히 안고 서촌을 방문했다.

 

그라운드 시소 웨이팅 안내 문자


 예매한 내역을 보여주고 티켓을 수령하면서 전시 웨이팅을 접수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워낙 전시 대기에 대한 높은 악명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는 안도감이 돌 정도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자 친구가 작가 후배 결혼식을 마치고 이태원에서 서촌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기 시간이 너무 짧으면 난감할 수 있었던 상황도 한몫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나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라운드 시소를 빠져나갔다.


전시를 기다리며 여유로운 점심 시간


 서촌에서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알아보고 갔던 식당은 휴업이었고, 어딜 가든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혼밥을 하기에 적당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3~4 곳의 식당을 뒤로 한채 걷다가 적당해 보이는 식당을 한 군데 발견해서 들어갔다. 오랜만에 즐기는 서울에서의 혼밥이 고기국수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점심 식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해졌지만 카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너무 사람이 많지 않은, 그러나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검색해보던 중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내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myc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랜만에 카페에서 독서를 했다. 오래전에 출판사로부터 선물 받은 책 '트래블러 아르헨티나'를 이제야 처음 폈다. 팬데믹 이후에 여행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잃었었는데, 위드 코로나가 곧 시작된다는 뉴스에 조금씩 여행 욕이 올라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세 남자의 아르헨티나 여행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아르헨티나 하면 축구부터 떠오르고 좋아하는 축구선수를 끊임없이 나열할 수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도 분명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로 가려진 아르헨티나의 진면목을 오히려 더 선명히 아로새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요시고 사진전 입장을 준비하며


 활자가 조금 지겨워지던 차에 여자 친구가 카페에 도착했다. 언제나 적재적소에 등장해주는 짝꿍이 나는 참 좋다. 조잘조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그녀와 가을의 서촌을 걷다 보니 갤러리에 금방 닿았다. 1층 정원에서 사진 몇 장을 찍으니 카톡으로 '입장해 주세요'라는 알림이 도착했다. 오늘은 타이밍이 기가 막힌 날인가 보다.


 전시는 2층부터 4층까지 총 3개 층에 350여 점의 사진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 입장 대기를 거쳐 2층으로 올라가면서 마치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느꼈던 오묘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작가 요시고(YOSIGO)에 대한 설명


 요시고(Yosigo)는 사실 본명이 아니다. 스페인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요시고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주변에서는 요시고를 일본 사람으로 추측하는 것을 보고 나름 신선한 충격에 빠지기도 했었다.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Jose Javier Serano)가 그의 본명이다. 요시고라는 이름은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선물한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Yo Sigo(계속 나아가다)"


 아버지와의 스토리도 작가명의 의미도 완벽한 이 작가. 그의 작품이 더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명과 암, 그의 영감의 원천


 요시고 사진전의 첫 시작에서 나는 이 예술가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빛을 뮤즈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호아킨 소로야'는 그중에서도 가장 명암을 잘 다루는 내 최애 예술가로 아직까지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빌딩의 새로운 모습


 요시고는 도시의 빌딩(건물)이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삭막하게 보일 수 있는 일상성에 빛을 통해 특수성을 부여했다. 똑같은 건물이지만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습을 달리하는 변화를 발견한 것이다.


따뜻한 색감


 요시고는 특히 '따뜻한 색감'에 집중했다. 초반에는 회색 계열의 낮은 채도의 색감을 좋아했지만 현재는 오렌지빛 계열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요시고를 '내 예술가'로 확실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지점이 발견된다.

 요시고가 최근에 집중하여 참고하고 있는 화가가 '호아킨 소로야'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소로야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예술가라는 점에서 또 한 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뜻한 색감으로 가득한 요시고의 사진



 3층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제들이 펼쳐진다. 전시 타이틀이 <요시고 사진전 : 따뜻한 휴일의 기록>인 만큼 여러 나라(도시)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 일본, 헝가리, 두바이 등이 이어지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전시가 개최된 만큼 언젠가 한국을 주제로도 사진이 전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휴일의 기록

 

 3층의 마지막은 '리우 아발(Riu Avall)' 프로젝트로 막을 내린다. 리우 아발은 '강하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바르셀로나를 가로질러 지중해에 닿아 사라지는 료브레가트 강의 흐름과 악화를 다루는 프로젝트다.

 료브레가트 강은 바르셀로나의 산업 발전의 상징이지만 그로 인해 죽어가는 강이기도 한 역설을 품고 있는 강이다. 요시고는 사진을 통해 단지 피사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생태, 환경의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통해 어떠한 선언을 선포하는 것보다 때론 예술가의 하나의 작품이 더 큰 사회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우리는 그렇기에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존경하게 된다.

리우 아발 프로젝트


 요시고 사진전의 마지막 층인 4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몰입도 있는 소설책을 읽을 때,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 매 순간 설레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여행을 할 때면 우리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선 두려움까지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시고의 사진을 보다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더 많은 색감을 느끼고 더 많은 도시를 만나고 싶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4층에 올라서 탁 트인 섹션에 들어서면 마치 해변에 도착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천장에 걸려 있는 천에는 바다를 유유히 즐기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고 사방에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해수욕을 좋아하진 않지만, 바다는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바다는 일종의 내려놓음이다. 지치는 순간 바다에 가서 멍하니 '물멍'을 때리다 보면,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순간에는 "그래. 애쓰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자"라는 스스로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얻게 된다. 바다야 말로 휴일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Tourism


 바다를 찬찬히 음미하며 섹션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요시고가 던지는 메시지 하나에 뭔가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을 즐기기보다 놀러 왔다고 주변에 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죠."


 이 문장이 적혀 있는 옆에는 요시고의 사진이 커다란 벽면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한 관람객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기 위해 만들어진 대기줄이 오히려 사진을 보는데 무척이나 방해가 되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의문은 전시를 보는 내내 계속되었다. 사진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작품 앞으로 다가가면 내 뒤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며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머쓱해져서 다음 작품으로 재빠르게 넘어가면 등 뒤에서 셔터 소리가 들려왔다.

 동선에 따라 이동하다가 "왜 이렇게 앞으로 사람들이 안 가는 거지?" 하고 앞을 살펴보면, 누군가가 인증샷을 남긴다고 한참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미술관에 왔으면 흔적을 남기고 싶고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사진을 남기는 일을 좋아하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 불편을 준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이다. 가끔은 이렇게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고 신경 쓰는 행동들이 나의 삶을 갉아먹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순간에서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 자부심을 가진다.

 조금만 서로를 배려하고 조금만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일상을 살아간다면, 평균적인 삶의 행복도가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미술관에도 빛이 스몄다


 4층은 요시고가 찍은 풍경사진이 주를 이뤘다. 자연 그리고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연은 인간을 지구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작아지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하면서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한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이 전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 자체가 자연 앞에서 인간의 작음을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위드 코로나와 함께 세계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 돌아올 텐데, 이제는 조금 반성하는 마음으로 지구의 곳곳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하는 풍경


 요시고 사진전을 보고 난 후, 요시고가 마치 나에게 건넨 것 같은 글이 자꾸만 떠올랐다.


 "미래의 사진작에게. 사진은 예술 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타고난 재능이 필요 없는 분야입니다. 요즘은 카메라를 가진 모두가 사진작가죠. 기술적으로 서툴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요. 다만 중요한 건 정말 사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본인에게 솔직하고, 오직 자기 자신의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또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해야 돈이 들어오는 법이라 항상 마음을 굳건히 먹어야 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며, 멈추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겪어야 배울 수 있고 계속 발전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인내심을 가지세요.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사진의 세계에서 멀리 나아가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문장에서 사진을 좋아하는 한 사람인 나에게 요시고가 전하는 격려를 느끼는 동시에,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인 나에게 요시고라는 사람이 던지는 따뜻한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서툶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오직 나만의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해야 돈이 들어온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며 멈추지 않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열정을 가지고 인내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



 사진은 같은 피사체를 두고 있더라도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피사체의 어떤 곳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이다. 물론 어떤 카메라와 렌즈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진의 질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만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만의, 단렌즈는 단렌즈만의, 광각렌즈는 광각렌즈만의, 망원렌즈는 망원렌즈만의 매력이 제각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은 우리의 인생과 매우 닮아 있다. 저마다 가진 카메라와 렌즈 즉, 저마다의 매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색을 담은 사진(일상)들을 찍어낼 수 있고, 그것들을 모아 각자의 전시(인생)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시고가 사진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요시고의 바람대로 '따뜻한 휴일의 기록'을 나만의 방법으로 남기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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