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출의 필요성
나는 처음 보는 모든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는 경계가 쉽게 걷히지 않는다.
나는 내 생각, 내 말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상대방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걸 내가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어렵다.
또 친밀한 사이더라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다.
항상 솔직한 것은 무례함에 가깝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고, 항상 기분이 곧 태도가 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참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을 미워하게 된다.
책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등장하는 자기기만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예시를 제시한다.
늦은 밤 아이가 잠에서 깨서 울자 남편도 따라 깼다.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얼른 아이를 재우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어쩌면 생각이 들었는지도 못 느낄 수 있다), 귀찮은 마음에 이를 무시하고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남편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와이프는 뭐하는 거지? 평소에는 내가 항상 깨서 아이를 재웠던 것 같은데 말이야. 오늘은 나도 너무 피곤한데 일어나서 아이를 좀 재워주지.'
시간이 지나도 아내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람은 평소에 집안일도 잘 안하면서, 이럴 때 아이를 돌보지도 않네. 똑같이 맞벌이하면서 나만 가정을 신경쓰는 거 같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배려가 없지?'
남편의 생각은 전부 사실인가?
아마 상당 부분 부풀려졌을 것이고, 아내가 가정에 더 많이 기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남편이 처음에 들었던 생각처럼, 일어나 아이를 달래고 잤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들었던 생각을 기만하였고(자기기만), 이를 책에서는 '상자 속에 갇힌다'고 표현한다.
다시 돌아가서, 말을 삼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단순히 물어보면 되는 문제를 입안에 삼킴으로써 상대방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사람이 되고, 우리는 상자 속에 갇히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마냥 삼킬 수도 없다.
말을 계속 삼켜서는 안 되고, 언젠가 분출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한번에 열면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씩 탄산을 빼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혼자 하는 대화와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