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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28. 2023

소원 나무가 된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건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 아빠는 매년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선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편지를 써서 트리에 걸어놔야 한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바라면 엄마 아빠는 알 길이 없으니까 트리라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세 살 때부터 시작된 산타할아버지 가스라이팅에 녀석들은 트리를 꾸며야 한다고 성화였고, 크리스마스 감성이 없는 엄마는 트리가 거추장스럽고 때때로 지저분하게 느껴져 차일피일 미뤘다. 


"엄마 빨리 트리를 해야 한다고요"

1년 만에 다시 꺼낸 트리를 둘이서 야무지게 꾸몄다. 

막상 이렇게 꺼내놓고 보면 나는 할 일이 없는데,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 베란다 창고에 꺼내러 가는 일조차 너무 멀고 또 어렵게 느껴졌다.

트리가 완성되자마자 녀석들은 진작에 써놓은 편지를 걸었다.

온이가 말했다. "엄마는 절대 보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만 봐야 돼"

그런 온이를 힐끔 보더니 유는 엄마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엄마 나는 있잖아. 옵티머스프라임 레고가 갖고 싶어. 그게 어디에서 파냐면 이케아 옆에 있는 레고 매장 있잖아. 거기서 팔거든"

너무도 친절하게 위치며, 갖고 싶은 선물이며 자세히도 설명했다.

"엄마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닌데 엄마한테 말하면 어떡해?"


"엄마는 왠지 알고 있어야 될 거 같아서"

7개월 전쯤인가 레고를 사달라고 했었다. 레고를 사달라는 건 놀랍지 않을 정도로 자주 있는 일이라 '갖고 싶다고 무조건 다 사는 건 아니야'라며 거절했었다.

그때 봐둔 레고를 사달라고 하는 걸 보니 참 오래도 잘 참았단 생각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녀석이 이제 '산타가 엄마 아빠인 걸 알았구나' 싶은 생각에 올해로 이 짓도 끝이구나 싶어서 딴에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엄마가 감성에 젖을 틈도 주지 않고, 좀 전까지 트리도 꾸미고 편지도 걸며 신나던 녀석들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남편은 "너희는 산타할아버지가 보고 계실 텐데, 이렇게 싸우면 선물 못 받아"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티격태격하자, 남편은 도끼눈을 하고는 말했다.

"아빠도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쓸 거야!" 


"아빠는 어른이라 선물도 안주 실 텐데요"하며 히죽대던 녀석들은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

"도대체 왜 그래!" 하며 속으로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생각하며 울음바다의 현장으로 가보니,

트리 정중앙에는 아빠가 산타할아버지께 쓴 편지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아빠는 편지를 써놓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두 아들은 트리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이 웃겨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웃음을 참느냐고 입술을 깨무느라 피가 날 것 같았다.

이 무슨 예상치 못한 이벤트인지..


-산타할아버지 

온이, 유는 2023년 1년 동안

수도 없이 싸우기만 했어요.

선물 받을 자격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잘 생각해 주세요.

내년엔 잘하겠죠?

올해는 격려만 해주세요!-


여간해서 크게 울지 않는 온이도,

좀 전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긴가민가하며 옵티머스 프라임 레고를 외치던 유도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멈추지 않는 울음을 달래려고 엄마는 "이렇게 울지만 말고 남은 시간 동안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라도 써봐"라고 했다.

그러자 너희는 끅 끅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끊어지는 말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며 말했다.

"아빠가. 쓴 편지를. 산타할아버지는. 다. 보셨을 거야."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는 듯 또다시 숨이 넘어가게 울었다.

.

.

.

진정하는 듯하더니 너희는 이미 썼던 편지를 지우고 다시 쓰고,

새로운 종이에 새로 써서 붙여 놓고,

아무래도 올해 크리스마스트리는 편지가 대롱대롱 매달린 소원나무가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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