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맘으로 3년, 나는 어떤 마음으로 완주하였나.
대학원 첫 학기 때 아기를 갖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어렵게 준비한 만큼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대학원 생활을 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였다. 실망스러운 마음이 컸고 또 막막했다. 주변에 도움받을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키우지? 아기를 낳고 언제부터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인턴쉽은 할 수 있을까?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하겠나. 해내야지. 그렇게 나의 학생맘 여정이 시작되었고 아이를 갖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에피소드들이 생겼다.
2018년 12월
출산 3개월 전, 인턴쉽 온사이트 인터뷰 초대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라고 한다. 곧 만삭인데 비행이 위험할 수 있어 아쉽게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하긴, 혹시나 합격하더라도 갓난아기가 있는데 어떻게 캘리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겠나.
2019년 2월
양수가 터져서 예정일보다 3주 일찍 출산을 했다. 문제는 곧 파이널 윅이라는 것이다. 같이 고생했던 팀원들에게 피해가 되고 싶지 않아 프레젠테이션 시 참석하기로 했다. 출산 일주일 후 퉁퉁 불어있는 상태로 발표한 것은 정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2019년 3월
출산 후 휴학 없이 바로 봄학기에 파트타임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한창 배우고 성장할 1년차에 육아만 했다면 우울했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가서 동기들도 만나고 머리를 쓰는 것이 오히려 활력을 주고 있다.
2020년 2월
아이가 1살이 되면 데이케어 보내면서 취업준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이 되고 미국 분위기가 꽤 심각해졌다. 아직 어린 나이라 이런 상황에 기관에 보내기도 집에 시터를 들이기도 영 마땅치가 않다. 올 해도 당분간 내가 키우면서 버텨보아야겠다.
모자란 영어실력과 부족한 디자인 경력으로 학과 공부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것도 버거운데 육아까지 얹어지니 시간도 에너지도 턱없이 부족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나는 3년 후 무사히 졸업을 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프로덕트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세를 고쳐 잡고 새로운 다짐을 한 나날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갖게 된 마음가짐이, 도전과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나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학생맘과 워킹맘의 가장 큰 차이는 수입이다. 싱글인컴으로 미국 대학원 등록비를 내가며 베이비 시터까지 쓰는 사치는 누릴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마음 편하게 맡길 곳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낮에는 육아를 하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육아 교대를 해서 저녁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주육야경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육아라는 것이 그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멘탈을 탈탈 털어주는 노동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원생 스위치를 온 시키고 완벽하게 집중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또한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학기 중이라도 며칠 동안 계속 붙어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아프고 말이다.
아이가 10개월 정도일 때 아마존과 디자인 인턴쉽 인터뷰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첫 포트폴리오와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인터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리더십 프린시플까지 대비해야 하니 일주일 동안 2-3시간씩 자면서 급하게 준비했다. 필요한 양보다 두 배는 준비를 해야 자신감을 갖고 인터뷰를 할 텐데 내가 계획한 것의 반도 못 한 상태로 인터뷰에서 내 백프로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속상했다. 인터뷰에서 떨어진 후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은 결과가 있었겠지?’, ‘아이가 없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진 않았을까?’와 같은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씁쓸함에 며칠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몸을 갈아 넣으며 포폴과 인터뷰를 준비하고 또 떨어지며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고서 이런 사이클은 지속가능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풀타임으로 준비하는 동기들과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더 많이 더 빨리 성취해야겠다는 욕심을 덜어냈다. 200프로의 노력을 들여 하루빨리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퀄리티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양을 대폭 줄였다. 되도록 많이 지원해야 오퍼 받을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많이 지원했었는데, 나와 핏이 잘 맞고 정말 관심 있는 회사 소수만 선별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회사마다 지원 과정이 다 다르고 복잡하여 지원 자체에 시간이 많이 들기도 하고 또 인터뷰라도 받으면 해당 회사에 대해 리서치를 해야 해서 이 선택적 지원 부분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아낀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단 한 번의 기회를 통해 모든 면을 완벽하게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각각의 인터뷰를 내 취업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과정 중 내가 들려가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파이널 인터뷰도 마지막 관문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단계라고 생각하니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져 매번 인터뷰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번 인터뷰에서는 슬라이드를 완성하였다면 이번에는 스크립트를 준비해서 그 구성을 잘 살리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에 집중하였고, 비주얼은 다음 기회에 보강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이렇게 부분을 나누어 전략적으로 준비하니 인터뷰 준비에 할애하는 시간도 줄었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줄어드니 과업의 집중도가 올라갔다. 취업 준비 외에도 육아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양보하거나 좋은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에도 의연해질 수 있었다. 이번이 끝이 아니니까.
그런가 하면 외부적인 요인으로부터 내 멘탈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했다. 수험생 혹은 취준생이라면 주변의 먼저 잘 된 친구들 소식에 불안해졌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경쟁심이나 부러움이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받거나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준비 과정이 비교적 길었다 보니 동기들의 취업 소식들을 늘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나도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의 기회로 여기었다.
내가 뒤쳐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나도 이미 그 길에 있다는 것이다. 애먼 곳에서 삽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혹시나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긴다면 마인드셋을 바꾸어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계속 정진하자. 나를 믿고 묵묵히 오늘의 과업을 하자. 될 때까지 하자.
난 파트타임으로 수업을 들으며 3년 만에 졸업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첫 인턴쉽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첫여름방학 때 인턴쉽을 하고 두 번째 해 졸업과 동시에 풀타임을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늦은 셈이다. 졸업 6개월 후 나는 두 번의 인턴쉽 후 첫 풀타임 잡을 시작 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좋은 기회가 되어 레벨을 높여 이직을 했다. 취업이 늦어지거나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지 못해서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지나고 보면 지금의 차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어떻게 대학원 생활과 육아를 같이 하셨어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멋쩍게 “대충 대충 하면 돼요.” 하고 웃어넘기곤 한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다. 이루고자 하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을 수 없어 괴로운 이가 있다면 자신을 몰아붙이기 전에 마인드셋을 바꿔보기를 권하고 싶다. 내가 꾸준히 노력해서 장기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열정이 아니라 유연함과 여유로움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였지만 비단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각자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출산과 육아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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