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ada 4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든 탓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햇살이 눈을 비추자, 어젯밤 밀롱가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꿈처럼 떠올랐다. 춤을 추던 그 기억이 마치 몽환처럼 눈앞을 스쳤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진 그 순간, 알람 소리가 울리며 정신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는 신호였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다음 달 열릴 행사의 사전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네 명의 성직자들과 함께 토크 콘서트의 흐름을 점검하기로 한 중요한 날이라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몇 차례 성직자들과의 만남이 있었지만, 나는 사적인 대화를 피하려 애썼다. 김수호 신부나 다른 이들이 말을 걸어올 때면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고, 자윤 역시 내가 있을 때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 또한 말을 아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윤에 대한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엘리아나와 춤을 추며 느꼈던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럴수록 '만약'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만약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만약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쓸데없는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의 선택들이 그리 특별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말에 이른 건 아닐까.
힘든 일이더라도 굳은 마음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마음의 힘이라고.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내 사랑이 충분히 특별하지 않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의 마음이 덜 특별했을까. 이별의 원인이 나에게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 사랑을 더 간절히 여겼던 쪽이 나라고 믿었다. 인생을 걸고 모험하자고 말했던 쪽도 나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기 인생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멀어졌다.
한때는 그녀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이 결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왜 그토록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을까. 내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내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던 그 태도에서 그녀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 두었던 판단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만약'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하게 되는 자신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저주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망상 속을 헤매며 약속 장소인 다리소 극장 앞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듯 조용했고, 메시지를 확인해도 도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을 보니 약속보다 30분 정도 빨랐다.
수호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에게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답장이 왔다. 미리 얘기해 두었다며 문이 열려 있을 거라고 했다.
계단을 따라 조심스레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 없는 조용한 공간, 꺼진 무대 조명 사이로 좌석을 비추는 희미한 불빛이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무대 앞쪽 좌석에 앉아 공간을 둘러보며 리허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소통이 중심이 되는 토크 콘서트. 관객의 질문에 답하면서 구성되는 형식이니, 결국 '전달'이 핵심이었다.
그 '전달'이라는 단어에서 자윤이 떠올랐다. 내가 전했던 말들, 사랑한다고 했던 수많은 표현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닿았을까. 때로 인간은 이해를 가장한 오해를 한다. 나는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오해했는가. 아니, 나는 과연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그날의 기억 속, 내가 느꼈던 '배신'이 어쩌면 진짜 배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 생각은 나를 무너뜨릴 듯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다가와 "네가 잘못한 거잖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아온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시선으로 서로를 오해한 채, 그 오해를 사랑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복했어야 했다. 그녀의 행성을 내 색깔로 물들여, 언어와 의미까지 바꿔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약하다는 이유로, 착한 사람인 척, 주저했다. 정작 사과 한 번 먼저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말이다.
"약한 녀석은 지는 거야. 여기도 야생이다. 약육강식."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듯한 말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자윤이 조용히 극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