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에는 실패란 없다

Tango knows no failure

by 양희범

Tango knows no failure - 탱고에는 실패란 없다.

밀롱가에 처음 들어섰던 그날, 나는 까베세오의 실패를 경험했다. 눈빛을 건넸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받아주지 않았다. 괜찮다고 애써 웃었지만, 속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춤 한 곡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은 유독 길고 무거웠다. 그날의 나는 그렇게, 밀롱가의 공기 속에서 조용히 작아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실패’라 이름 붙이기엔 너무도 작은, 하나의 조용한 쉼표. 탱고는 단 한번의 까베세오로 결정되는 무대가 아니다. 수많은 노래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만큼의 새로운 가능성이 매순간 우리 앞에 열려 있다. 까베세오가 거절당한 것도, 스텝이 꼬인 것도, 음악을 놓친 것도 모두 그저 지나가는 순간이다.

탱고에는 수많은 실패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리딩이 닿지 않아 엇갈리는 감각, 리듬을 따라가지 못해 엉키는 발, 침묵이 길어져 어색해지는 순간들. 춤을 추면서 누구나 마주하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그 모든 ‘실패’라 불리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춤추게 만든다는 걸.

탱고는 성공만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흐름이고, 관계의 연습이며, 존재와 존재가 부딪히고 어긋나면서 다시 조율해가는 살아 있는 대화다. 실수는 그 대화의 일부다. 스텝이 어긋났을 때, 나의 리드가 닿지 않았을 때, 그 순간은 나에게 말한다. “조금 더 기다려줘”, “더 조심히 들어봐”, “이건 너 혼자 만드는 춤이 아니야.” 실패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은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알려주었다.

리듬을 놓쳤던 날, 내가 얼마나 서두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됐고, 춤이 맞지 않았던 파트너와의 순간은 리딩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어긋남이 부끄럽고, 실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듯해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불협화음 속에서, 이전에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기 시작했다. 상대의 발의 무게, 호흡의 흐름, 음악이 흘러나오는 숨 같은 리듬.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 안에 감춰져 있던 긴장과 두려움을 인식하게 됐다. 나도 모르게 불편했던 자세, 강하게 쥐고 있던 손끝, 리드를 빨리 끝내고 싶은 조급함. 그런 내 안의 움직임들이, 춤의 어긋남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건 누가 틀렸고, 누가 잘못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아직 다 듣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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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낯선 팔로워와의 첫 아브라소가 무척 어색하게 시작됐다.

그녀는 한참 동안 준비가 안 된 듯, 나에게 몸을 기대지 못했고, 어떻게 리드를 꺼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멈췄다. 음악은 흘러가는데, 우리는 제자리에서 몇 박을 날렸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망쳤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 정적이 싫지 않았다. 그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긴장을 풀고 있었고, 서로를 천천히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춤은 결국 끝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알았다. 춤이 시작되기도 전에 서로를 너무 빨리 판단하려 했다는 것을.

그런 날들이 쌓이며, 조금씩 더 기다릴 수 있게 됐고, 실수에 대해 웃을 수 있게 됐다. 춤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자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조화보다, 함께 애쓰는 몸짓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고, 그 따뜻함이 춤을 춤답게 만든다는 걸 어렴풋이 배워가는 중이다.

물론, 아직 탱고를 잘 안다 말할 수 없다. 여전히 까베세오를 거절당하면 당황하고, 어떤 날은 음악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 멍한 채 춤을 마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조금씩 더 편안해지고 있다. 실패라고 느끼는 찰나들조차 탱고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탱고를 ‘기술의 축적’이라 말하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고 있다. 어쩌면 탱고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속도를 기다리는 태도,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 함께 실패하고도 웃을 수 있는 태도. 그 속에서 조금씩, 나도 사람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춤을 추는 동안 상대방의 오늘이 어떤 날이었을지 상상하고, 내가 건넨 리드가 혹시 상처가 되진 않았는지 조심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 춤을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로 만들어간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실패는 나를 부드럽게 만들고, 나를 더 느리게 걷게 한다. 그 느림은 곧 배려가 되고, 그 배려가 감정을 만든다. 앞으로도 아마 많은 실패를 하겠지만, 그 실패들이 더 좋은 리더로, 더 섬세한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탱고는 그렇다. 완벽한 날보다, 실패한 날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기억들이 쌓여 나를 춤추게 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그저 “과정”일 뿐이다. “실패는 종종 우리가 완성 중이라는 신호다.”는 말을 나는 탱고에서 실감한다. 춤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감각이 되고, 그 감각은 언젠가 누군가와의 춤에서,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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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까베세오가 거절당했다면, 그건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위한 여백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춤이 어색했다면, 그것은 다음 춤을 더 섬세하게 느끼게 해 줄 연습일 것이다.

탱고는 한 번의 춤이 전부가 아니다. 오늘 춘 이 춤이 좋지 않았다고, 당신의 모든 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의 실패가 당신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듯이, 탱고 역시 하나의 순간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것이 탱고와 삶이 맞닿은 이유다. 우린 매 순간 새로운 선물을 마주하고 있다. 어제는 실패했더라도, 오늘의 리듬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잊지 말자. 탱고에는 실패란 없다. 오직, 계속해서 나아가는 심장의 박동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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