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마음

by 양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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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숨을 쉰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이 행위는 사실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증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숨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고, 호흡이 어려워질 때, 우리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었구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도, 인간관계도,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나는 탱고를 추며 그런 감각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처음 탱고를 배울 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긴장하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이 흐르고, 낯선 팔에 안긴 채로 한 걸음을 떼는데 왜 이리 몸이 무거운지, 왜 이리 마음이 조급한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색함을 견디고 나면 조용히 흘러드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회복’이었다.


탱고는 완벽한 춤이 아니다. 실수가 있고, 어긋남이 있고,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끌어안는 여백이 있다. 예측하지 못했던 멈춤이나 뒤섞이는 리듬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맞춰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잃었던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실수를 하더라도 나를 탓하지 않고, 내 리듬을 기다려주는 상대가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것은 탱고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위로였다.

춤을 추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아주 짧고 조용한, 그러나 아주 진실된 순간. 서로의 숨이 맞춰지는 찰나에, 아브라소 안에서 서로의 심장이 느껴지는 그때. 그 짧은 순간은 마치 잃어버렸던 삶의 조각을 다시 주워 담는 것처럼 다가온다. 탱고는 리듬이 아니라 관계로 완성되는 춤이다. 그 관계는 단순히 팔을 맞대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허락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울림이다.


리더와 팔로워. 탱고는 두 사람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그 둘은 결코 위아래가 아니다. 둘 다 없으면 춤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리더가 방향을 제안하면, 팔로워는 그 제안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때로는 정지하고, 때로는 물러서며, 때로는 발끝을 엉키듯 맞대기도 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흐른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들, 그러나 몸으로는 분명히 느껴지는 감정들. 그 감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밀롱가에서 어떤 날은 실패한 기분으로 돌아온다. 까베세오가 통하지 않았던 날, 리딩이 꼬여 팔로워가 중심을 잃었던 순간, 어설픈 음악 해석으로 감정을 망친 탱다. 하지만 그런 밤에도, 탱고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묻는다. “지금 너의 마음은 어떤가?”, “지금 이 음악을 진심으로 듣고 있는가?” 탱고는 실패를 탓하지 않는다. 탱고는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그 기다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더 부드럽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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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너무 많은 것을 잊는다. 관계의 소중함, 일상의 감사함, 나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탱고는 그것을 되찾게 한다. 음악 속에서 함께 걸어가는 일, 그저 그 사람과 리듬을 나누는 일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그 순간만큼은 ‘잘 추는 춤’보다 ‘함께 있는 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춤을 춘다. 실수하더라도, 어긋나더라도, 다시 이어지기 위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탱고는 나에게 삶의 체온을 되돌려주는 춤이다.


탱고는 나에게 ‘지금 여기’의 감각을 회복시켜주는 호흡이다.

그리고 탱고는,

내가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조용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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