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rno
아도르노가 너무 싫었다. 탱고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리드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상대방도 버거워 보였다. 변수가 전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저 리드하는 대로 따라오는 팔로워가 좋았다. 복잡한 꾸밈 동작이나 예상치 못한 움직임 없이 단순하고 명확한 춤만 원했다. 그래서 아도르노가 내게는 혼란과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도르노(Adorno)는 탱고에서 동작과 동작 사이, 박자와 박자 사이에 들어가는 꾸밈 동작이다. 춤을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미세한 표현이며, 춤에 풍부한 질감을 더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탱고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도르노는 탱고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난 그런 아도르노를 좋아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동작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상대와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들어오는 아도르노는 내 호흡을 무너뜨렸다. 왜 굳이 아도르노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리드를 무시한 채 박자와 상관없이 꾸밈 동작만 반복하다 박자가 밀릴 때면 기분이 상했다. ‘못하는 것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춤을 추는 데 같이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자꾸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 같았다. 의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것은 조화를 깨뜨리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일로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 아도르노를 과하게 하는 사람과는 춤추기를 피했다. 같이 춤을 만들어 갈 자신이 없었고, 통제 불가능한 영역처럼 느껴졌다.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춤출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동안 일부러 거리를 두었던 사람과 함께 춤을 추게 됐다. 우연찮게 된 까베세오여서 처음엔 긴장과 두려움이 앞섰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그녀의 춤 사이사이에 아도르노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아도르노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춤에 방해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서로의 숨결을 이어주는 다리 같았고,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만들어지는 춤에서 느껴지는 충족감이 달랐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그녀의 성장이 그녀를 변화시켰나 하는 감상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변화의 원인은 단순히 그녀의 춤이 아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그 때의 그 아도르노가 버거웠던 건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는 걸. 춤을 그리는 내 인식, 박자를 느끼는 순간, 멜로디를 들을 수 있는 여유, 그 모든 게 나로부터 시작됐다. 리더의 역량이 문제였다. 아도르노가 문제가 아니라 춤을 추는 순간 그녀가 건네는 아도르노라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무시한 나의 문제였다.
그 순간, 아도르노가 단순한 꾸밈이나 장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간과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아름다운 언어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아도르노는 나에게 두 사람의 조화와 신뢰를 담은 작은 행복처럼 느껴졌다.
아도르노는 공간을 가르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역할이다. 건축가가 공간을 설계하듯, 적절한 위치에 놓인 아도르노는 춤이라는 건물의 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 소중한 요소다. 그 순간, 발과 발이 만나는 미묘한 감각이 교차하며 서로의 마음과 리듬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가 함께 걸을 준비가 되었을 때 아도르노가 빛난다는 점이다. 서로를 가르지 않고, 함께 연결되어 나아가는 순간에 아도르노는 춤의 숨결이 된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탱고가 단순한 스텝이 아니라 ‘연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Tango is not about the steps. It’s about the connection.” — Gustavo Naveira
“탱고는 스텝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에 관한 것이다.” — 구스타보 나베이라
탱고는 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속에는 서로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깊은 소통이 흐르고, 때로는 말보다 강렬한 감정이 담긴 연결이 존재한다. 우리가 완벽한 스텝을 추지 못해도, 그 진심 어린 마음과 서로를 향한 존중이 있기에 탱고는 언제나 새롭게 빛난다. 그러니 발끝보다 마음으로 춤추는 법을 배우며, 그 연결의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탱고의 아름다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