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과 행성 그리고 당신이란 중심

Planeo

by 양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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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오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자주 우주를 생각한다. 밀롱가의 둥근 론다는 궤도고, 우리는 서로의 중력으로 끌리고 밀어내며 선을 그린다. 그중에서도 플라네오는 유난히 천체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칼레시타가 팔로워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동작이라면 팔로워는 행성이 되고, 나는 그 주위를 도는 위성이 된다. 반대로 플라네오에선 내가 행성이다. 우리는 행성이 되기도 하고 위성이 되기도 한다. 누가 중심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춤은 완성된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서로가 중심이 되어 주려면 나의 축(eje)이 단단해야 한다. 축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상대가 위성처럼 중력권에서 안전하게 미끄러지는 궤도를 그릴 수 있다. 중심이 흔들리면 위성의 길도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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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플라네오는 사실 거창한 비밀이 없다. 내 상체가 만드는 궤도의 제안이 상대의 길이 될 때, 그 순간 하나의 우주가 완성된다. 흉곽의 얕은 회전, 호흡의 길이, 발의 미세한 압력—많은 요소가 우리 우주를 만들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상대의 궤도가 바닥 위에서 조용히 활공(planeo)하도록 돕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끌어 돌리는 힘”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힘”이다. 사실 나는 이 차이를 완벽히 알지 못했다. 때때로 흥분한 음악이 나오면 팔에 힘을 몰아 상체를 크게 돌렸다. 그럴 때마다 상대의 궤도는 흔들리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원형의 그림은 사라졌다. 플라네오는 길을 잃었고, 내 등은 파트너의 균형에 맞춰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수많은 실패 덕에 조금은 몸으로 배웠다. 리드는 힘이 아니라 축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축이 약하면 어떤 궤도도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는다. 모든 관계가 결국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견고한지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어느 토요일 밤, 디 사를리의 긴 프레이즈가 홀을 감쌌다. 나는 왼발에 무게를, 오른발엔 여유를 남겨 두고, 상체로 아주 얕은 원을 열었다. “자, 여기가 네 궤도야.” 속삭이듯 건넨 제안이었다. 상대의 스텝은 흔들리지 않은 채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힘을 들여 보내지 않아도, 내가 굳이 크게 돌지 않아도, 더 세게 제어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흘러갔다. 마치 그 위에 길이 나 있는 것처럼 궤도를 따라갔다. 축이 곧고 고요하면, 상대의 궤도는 스스로 매끈해진다. 우리는 말없이 한 문장을 썼다. 나는 점, 그녀는 선이었다. 컴퍼스의 중심점이 흔들리지 않으니 선도 흔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밤, 마음이 먼저 앞질러 나가 상체를 조금 세게 비틀었다. 그 순간 상대의 발끝이 가볍게 바닥을 떠올랐고, 내 등엔 잔물결처럼 미세한 떨림이 번졌다. 아브라소의 호흡이 반 박 어긋나자, 우리는 동시에 아주 작은 미소로 서로에게 사과를 건넸다. 흔들림의 시작은 나였고, 그녀는 행성에 휩쓸린 위성이었다. 탱고라는 우주에 잠시 별빛이 가려졌을 뿐이다. 그 후로 플라네오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조용히 나를 정돈한다. 지지발을 단단히 세우고, 명치에서 골반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한 줄의 선을 마음속에 그린다. 힘으로 억지로 끌지 않고, 주의로 머무는 법. 그렇게 중심이 고요해지면 그녀의 발끝은 다시 바닥을 사랑하듯 스치고, 우리의 숨은 같은 길이로 포개진다. 작은 등불 하나를 켜듯, 축을 켠 뒤에야 회전은 더 다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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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시타와 플라네오는 그래서 한 쌍이다. 칼레시타에서는 팔로워가 행성, 리더는 그 주위를 도는 위성이다. 행성인 팔로워가 중심에서 빛을 내고, 리더는 그 빛을 존중하며 공전한다. 플라네오에서는 리더가 행성, 팔로워는 안정된 중력권에서 위성의 궤도를 그린다. 두 경우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은 축이다. 이 축은 기술 이전에 태도다. 단단한 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널 끌겠다”가 아니라 “나는 서 있을게. 네가 돌 수 있도록.” 관계도 다르지 않다. 근간과 마음의 축이 확실히 서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함께할 수 있다. 불안한 중심은 상대를 끌어오지 못한다. 다만 서로를 떠밀 뿐이다.


가끔은 실패가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열어 둔 원이 너무 컸거나, 음악과 호흡이 어긋났거나, 론다가 좁아 공간이 없었을 때. 그럴 땐 위성의 궤도를 강제로 이어 붙이지 않는다. 짧게 멈추고, 걷거나, 바리다로 선을 닦아 주고, 다시 대화를 건넨다. 우주는 성급함을 싫어한다. 궤도는 허락으로 열리고, 존중으로 유지되며, 축으로 빛난다.


결국 플라네오든 칼레시타든 답은 하나다. 축이 먼저다. 발의 삼각형, 허리의 수직, 흉곽의 원형, 그리고 마음의 고요. 그 위에서만 궤도가 그려지고, 그 궤도 위에서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다치지 않는다. 오늘 밤도 마음속으로 짧게 읊는다. “나는 여기에 선다. 당신은 주위를 돌아라. 그리고 때가 되면, 나도 당신의 곁을 돌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되어 서로의 밤을 환하게 만든다. 탱고의 한 박자마다, 행성과 위성이 번갈아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의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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