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역사] 지워진 ‘검은 아버지’, 유성기의 왕들

알코르타와 로스 고비

by 양희범

[탱고의 역사] 지워진 ‘검은 아버지’와 유성기의 왕들: 알코르타와 로스 고비

탱고는 흔히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긴 춤”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 책이 오랫동안 침묵해 온 또 다른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흑인(Afro-Argentine) 공동체입니다.

19세기 후반, 리오 데 라 플라타(부에노스아이레스·몬테비데오)는 거대한 용광로였습니다. 당시 인구의 25~50%가 아프리카계였다는 연구가 있을 만큼, 도시의 밤은 검은 리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은 탱고의 ‘진짜’ 기원을 찾아 변두리의 댄스 홀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파리로 향했던 초기 스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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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 리듬이 쫓겨난 곳에서 ‘탱고’가 피어나다

19세기 초, 흑인들의 축제와 모임은 이미 ‘탕고(Tangos)’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고유의 타악기 리듬인 칸돔베가 울려 퍼졌죠. 이 강렬한 리듬은 약 반세기 동안 유럽의 춤(왈츠, 폴카), 쿠바의 하바네라, 그리고 시골 가우초들의 민요와 뒤섞이며 서서히 우리가 아는 탱고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870년대 이후, 정치적 탄압과 폭력 사태로 인해 흑인 카니발 조직들이 해산되기 시작합니다. 갈 곳 잃은 흑인들의 리듬은 도시 변두리의 ‘댄스 센터(Dance Center)’로 스며들었습니다.

이곳은 도시 빈민, 이민자, 그리고 시골에서 일자리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온 가우초들이 모이는 공간이었습니다. 도시로 온 가우초들은 칼을 차고 멋을 부리는 콤파드리토*로 변신했고, 이들은 흑인의 현란한 스텝과 유럽의 껴안는 춤을 결합해 ‘코르테와 케브라다*’ 같은 파격적인 동작을 만들어냈습니다.

탱고는 바로 이 ‘금지된 섞임’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2. 카시미로 알코르타: 역사에서 지워진 ‘초기 탱고의 아버지’

백인 중심의 탱고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혔던, 그러나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흑인 바이올리니스트 카시미로 알코르타(Casimiro Alcorta, 1840–1913 추정)입니다.

그는 노예 신분이었던 어머니와 자유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으로 구성된 소규모 악단을 이끌며 초기 탱고와 밀롱가를 연주했던 그는, 당시 기록들이 “가장 이른 시기의 탱고 작곡가”로 지목하는 거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악보에 남지 못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Cara sucia(더러운 얼굴)」이나 「La yapa」 같은 명곡들은 후대 백인 음악가들의 이름으로 출판되거나 편곡되면서, 그의 저작권과 존재는 역사 속에서 희미해졌습니다. 최근에야 노르베르토 파블로 시리오 같은 연구자들에 의해 “지워진 흑인 탱고의 아버지”로서 그의 위상이 복원되고 있습니다.


대표 곡: 「라 야파(La yapa)」 – “서비스요!”

알코르타가 1890년대 쇼의 마지막에 연주하던 이 곡의 제목 ‘야파(Yapa)’는 룬파르도*‘덤’ 혹은 ‘서비스’라는 뜻입니다.

관객들이 아쉬움에 “한 곡 더!”를 외칠 때, 그가 웃으며 바이올린을 켜던 장면이 상상되시나요? 이 곡은 하바네라의 우아함과 흑인 칸돔베의 뚝뚝 끊어지는 리듬이 절묘하게 섞여 있어, 초기 탱고가 어떤 소리였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귀중한 단서입니다.



3. 로스 고비: 탱고를 싣고 바다를 건넌 ‘유성기의 왕들’

알코르타가 변두리의 전설이었다면, 로스 고비(Los Gobbi) 부부는 탱고를 전 세계로 퍼뜨린 최초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우루과이 출신의 알프레도 고비와 칠레 출신의 플로라 로드리게스는 부부 듀오로 활동하며,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그라모폰(유성기)’ 녹음을 통해 탱고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1900년대 초, 엄청난 양의 실린더와 디스크를 녹음하며 “그라모폰의 왕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활동 반경이었습니다. 로스 고비는 1900년대 중반 프랑스와 미국으로 건너가 7년 넘게 순회공연을 펼쳤습니다. 파리의 상류층들은 이들의 음반과 공연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친 춤, 탱고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표 곡: 「엘 포르테니토(El Porteñito)」 – 변두리 건달의 허세

우리가 잘 아는 앙헬 비요도가 1903년 작곡한 이 곡은 로스 고비의 목소리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들이고, 별명은 ‘엘 포르테니토’지...”

가사 속 주인공은 전형적인 콤파드리토*입니다. 그는 자신이 기타 반주에 맞춰 누구보다 춤을 잘 추고, 여자들을 쉽게 유혹하며, 말발이 끝내준다고 자랑합니다. 이 곡은 매춘굴의 어두운 이야기라기보다는, 가난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뭉친 변두리 청년의 귀여운 허세에 가깝습니다. 로스 고비의 녹음 덕분에, 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건달’의 이야기는 파리의 살롱까지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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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Note] 요약 및 핵심 정리

오늘의 이야기는 탱고가 단순한 춤곡이 아니라, 인종과 계층, 기술이 만나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검은 뿌리: 탱고는 흑인들의 칸돔베* 리듬이 댄스 센터에서 변형되며 탄생했습니다.

카시미로 알코르타: 흑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초기 탱고의 기틀을 닦았으나, 역사적 기록에서 소외되었던 인물입니다.

로스 고비: 초기 녹음 기술(그라모폰)을 통해 탱고를 기록하고, 유럽과 미국에 전파한 ‘탱고 외교관’입니다.

콤파드리토의 등장: 「엘 포르테니토」 같은 곡을 통해, 탱고는 변두리 남성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글은 탱고의 숨겨진 흑인 기원과 초기 레코딩 시대를 다루었습니다. 주요 용어에 대한 해설은 아래 미주를 참고해 주세요.)


[단어] 더 깊이 알기

칸돔베 (Candombe):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우루과이인들이 북을 두드리며 추던 춤과 음악, 혹은 그 종교적 의식. 탱고 리듬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다.


하바네라 (Habanera): 19세기 쿠바에서 유행하여 전 세계로 퍼진 2박자 계열의 춤곡. 탱고의 기본 리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라모폰의 왕들: "그라모폰의 왕들"은 로스 고비 부부가 단순한 가수를 넘어, 녹음 기술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고 탱고를 전 세계로 퍼뜨린 최초의 '레코딩 슈퍼스타'이자 '탱고 외교관'이었음을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별명입니다.


콤파드리토 (Compadrito)*: 부에노스아이레스 변두리의 하류층 건달. 가우초의 기질을 흉내 내며, 하이힐 부츠와 챙이 좁은 모자 등 독특한 패션을 고수했다. 초기 탱고 춤과 문화의 주역.


코르테 (Corte) / 케브라다 (Quebrada): 초기 탱고 춤의 핵심 동작. 춤의 진행을 갑자기 멈추거나(코르테), 허리를 꺾어 밀착하는(케브라다) 파격적인 동작을 뜻한다. 당시 상류층은 이를 외설적이라며 비난했다.


룬파르도 (Lunfardo):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의 하류층에서 쓰이던 속어. 이민자들의 언어(이탈리아어 등)와 현지어가 섞여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탱고 가사가 이 언어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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