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골든 에이지의 확장)
1930년 쿠데타로 시작된 ‘악명 높은 10년’의 암울한 그림자 속에서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중문화는 라디오와 음반, 영화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1935년 이후 후안 다리엔소가 강력한 2/4 박자로 댄서들을 무도장으로 다시 불러모으고, 카를로스 디 사를리가 우아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살롱을 장악하던 바로 그 시기. 탱고의 무대 뒤편에서는 또 다른 음악적 혁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싹트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다리엔소의 심장 역할을 하다 독립한 피아니스트, 명가수들을 발굴해낸 당대 최고의 기획자, 그리고 무도회의 열기 속에서도 꿋꿋이 ‘예술로서의 탱고’를 지켜낸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우리가 앞서 ‘리듬의 왕’이라 불렀던 후안 다리엔소의 1935년 혁명은, 사실 한 명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가 바로 로돌포 비아지(Rodolfo Biagi, 1906–1969)입니다.
다리엔소 악단의 피아니스트였던 비아지는 특유의 끊어 치는 스타카토와 2/4 박자를 주도하며 다리엔소 사운드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1938년 악단을 떠나 자신의 독립적인 오케스트라를 결성합니다.
비아지의 음악은 다리엔소와 비슷한 리듬감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질감을 뿜어냈습니다.
건반 위를 뛰노는 오른손: 그의 피아노 연주는 유독 오른손의 화려함이 돋보였습니다. 마치 타자기를 치거나 경쾌한 빗방울이 떨어지듯 높은음자리표 위에서 건반을 통통 튕기는(Jumping) 음형은 댄서들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마노스 마히카스(마술의 손)*: 왼손이 명확하고 무거운 박자를 유지하는 동안, 오른손은 장난기 넘치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대중은 그에게 ‘마술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의 대표곡 <캄포 아푸에라(Campo afuera)> 나 <인디페렌시아(Indiferencia)>를 들어보면, 다리엔소의 음악이 군대의 행진곡처럼 심장을 때릴 때, 비아지의 음악은 샴페인 기포처럼 발끝을 간지럽히며 미소 짓게 만드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로돌포 비아지가 피아노 건반으로 승부를 보았다면,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의 지휘자 미겔 칼로(Miguel Caló, 1907–1972)는 ‘사람의 목소리’와 ‘매끄러운 편곡’으로 골든 에이지의 또 다른 정점을 찍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이끈 미겔 칼로의 진정한 천재성은 안목에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연주자와 신인 가수를 발굴해내는 당대 최고의 기획자(프로듀서)였습니다.
칸시온 탱고의 완성: 그는 오케스트라의 거친 연주를 둥글게 다듬어 가수의 목소리가 돋보이도록 하는 ‘서정적인 매끄러움’을 추구했습니다.
전설의 보컬들: 라울 베론(Raúl Berón), 알베르토 포데스타(Alberto Podestá) 등 훗날 탱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명가수들이 모두 그의 악단을 거쳐 갔습니다.
미겔 칼로 악단이 연주하고 라울 베론이 부른 <알 콤파스 델 코라손(Al compás del corazón, 심장의 박자에 맞춰)>이나 <후라메(Júrame, 내게 맹세해 줘)> 같은 곡들은 댄스 플로어의 열기를 로맨틱한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악단은 단순한 밴드를 넘어,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별들의 인큐베이터였습니다.
1930년대 후반의 주류가 다리엔소나 비아지처럼 춤추기 좋은 ‘명확한 리듬’이었다면,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 ‘가르디아 누에바(Julio De Caro 세대)’의 예술적이고 복잡한 실험 정신을 이어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피아니스트 루시오 데마레(Lucio Demare)와 반도네온의 거장 페드로 라우렌스(Pedro Laurenz)입니다.
화성과 편곡의 실험: 이들은 무조건 발을 움직이게 만드는 직관적인 리듬 대신, 복잡한 화성 전개와 정교한 편곡을 택했습니다.
내면을 파고드는 감정선: 루시오 데마레가 남긴 역사적인 명곡 <말레나(Malena)>*는 탱고 가수의 슬픈 목소리 그 자체를 찬양하는 깊은 서정성을 보여줍니다. 페드로 라우렌스의 <아라발(Arrabal)> 역시 뛰어난 반도네온 기교와 입체적인 구조로 댄서뿐만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청취자’들의 귀를 완벽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은 춤의 열기에 취해 자칫 가벼워질 수 있었던 1930년대의 탱고 생태계에 진중한 예술적 무게를 더해주며, 탱고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음악으로 남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회차는 1930년대 골든 에이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세 가지 다른 색깔의 음악가들을 조명했습니다.
로돌포 비아지: 다리엔소 리듬의 핵심 창시자. 독립 후 오른손의 경쾌한 건반 터치와 밝은 분위기를 내세워 자신만의 독자적인 댄스 탱고를 구축했습니다.
미겔 칼로: 서정적이고 매끄러운 편곡으로 ‘칸시온 탱고(보컬 탱고)’를 융성하게 만들었으며, 라울 베론 등 당대 최고의 스타 가수들을 발굴한 기획자입니다.
데마레 & 라우렌스: 무도회의 댄스 열풍 속에서도 복잡한 화성과 고도의 편곡 기술을 유지하며, 탱고가 감상용 예술 음악(듣는 탱고)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지켜냈습니다.
마노스 마히카스(Manos Mágicas): 스페인어로 '마술의 손'이라는 뜻. 스타카토 기법을 활용해 건반을 톡톡 튀어 오르듯 연주하던 로돌포 비아지의 전매특허 같은 피아노 테크닉과 그의 별명을 뜻한다.
오르케스타 데 라스 에스트레야스(Orquesta de las Estrellas): 미겔 칼로의 오케스트라에 붙여진 별명으로 '별들의 오케스트라'라는 뜻. 수많은 전설적인 가수와 연주자들이 그의 악단을 거쳐 대스타로 성장했기에 붙은 영광스러운 칭호다.
말레나 (Malena): 루시오 데마레가 작곡하고 오메로 만시가 작사한 탱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 슬픔을 머금고 탱고를 부르는 가상의 여가수 '말레나'를 통해 탱고 음악 자체가 가진 애절한 본질을 시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