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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Apr 26. 2020

월스트리트와 국제연합

자본의 끝과 끝

직항으로 가도 14시간.

인천-뉴욕 구간은 한국에서 연결되는 직항 중 손가락 안에 꼽는 장거리 노선이다. 

동시에 항공사가 취항과 증편을 반복하는 인기 노선이기도 하다.


한국인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 심지어 동물까지도 비즈니스, 이민, 친교 기타 등등의 이유로 뉴욕을 찾는다.

워낙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린다.

뉴욕 여행자들은 각자의 두서없는 취향대로 다리 밑부터 할렘까지, ‘저긴 왜 가는 거야?’ 싶은 곳까지 침투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엄마일 등등 길 하나까지 이름을 붙여 악착같이 관광지로 만들었다.

뉴욕은 관광지와 시민들의 생활권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 뉴욕의 끝과 끝에 두 개의 관광지 아닌 관광지가 있다.

하나는 남쪽의 월스트리트, 하나는 동쪽의 유엔빌딩이다.

길과 빌딩, 참으로 도시다운 관광지다.     

고층빌딩 속 펩시콜라 사인. 콜라와 빌딩은 뉴욕답고 미국답다.

사실 월스트리트는 관광지라 칭하기엔 조금 이상하다.

세계에서 돈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자본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따위를 고민하는 곳이니, 뉴욕과 천생연분이기는 하다.

돈을 딸 생각만 한다는 점에선 카지노와 본질이 같은데, 카지노 또한 관광자원이니 그런 맥락에서라면 엄연히 관광지가 맞는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겉에서 보면 스트리트일 뿐인 월스트리트는 하는 일이 엄해서 일반인이 들어갈 이유도, 필요도, 방법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유명하다기에 왔는데 갈 곳은 없으니, 관광객은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황소동상에 모인다. 

그리고는 이걸 만져야 돈이 들어온다는 믿음 소망 용기를 가지고, 애먼 황소를 둘러싸고 수백 명이 동상의 거시기를 만지며 사진 찍는 다소 의아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유일한 신, 돈을 신격화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영험하신 월스트리트 황소도사님 (Charging Bull:돌진하는 황소). 좌우양옆에 사진 찍는 사람이 가득하다. 라스베가스에서 돈 잃은 걸 보면 신빨이 그리 좋지 못한 것 같다.

남쪽 끝에서 황소가 누드모델활동을 하는 그때에, 직선으로 곧은길을 몇 개 따라 동쪽으로 가면 반짝거리는 건물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유엔본부가 나온다.

뉴욕 안에 있지만 뉴욕 땅도 미국 땅도 아닌 그곳에서 돈을 받고 일하려면 각국 최고의 엘리트가 되어야 하지만, 땅은 미국과 달라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공기는 월스트리트의 자본주의자들이 마시고 뱉은 산소와 같은 대기를 쓴다. 

덕분에 나와 같은 평범한 관광객도 돈을 내고 입장권을 사면 방문이 가능하다.

만국기가 만국 대신 사이좋게 펄럭이는 건물 안에는 세계평화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결정도 한다.

국민을 책임지기에 힘이 조금 부족한 국가들은 이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당연하고 역설적으로 평화를 위한 빌딩 안에는 지구 곳곳의 폭력의 흔적과 비평화의 증거가 전시되어 있다.

견학 후에는 지구를 평화롭다 말하기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과 과거에 벌어진 전쟁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평화를 위한 단체가 있다는 자체가 평화롭지 못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왼쪽 가려진 큰 원이 군사비용, 제일 오른쪽 점이 평화유지를 위해 쓰는 돈

부정할 수 없는 증거도 있다.

월스트리트의 황소와 사진을 찍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소리가 들린다.

9.11 메모리얼에서 흐르는 물소리다.

십수 년 전에 뉴욕에 처음 왔을 때는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 :핵폭탄이 터지는 지점, 9.11 테러 지점이라는 뜻으로도 쓰임)였던 곳에서 이제는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물이 흐른다.

중학생 때가 첫 방문이었던지라 뉴욕에 처음 오는 것이나 다름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복구되지 않은 철조망 너머가 매우 넓어서 황량했던 것은 기억한다.

9.11 테러에 대해서는 애도의 뜻과 인과응보라는 자조적 비판까지 많은 해석이 난무한다.

그러나 건물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주변을 모두 황량한 전쟁터로 보이게 만들던 그라운드 제로의 모습과, 수만 톤의 물을 흘려 죽은 이를 기억하는 현장을 모두 본 나는 우선은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뜻을 전할 수밖에 없다.

그 테러는 미국만을 향한 것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한 것이었다.

구글지도에서 9.11메모리얼에서 UN본부까지 거리를 검색하면 걸어서 1시간 26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월스트리트의 자본과 국제평화는 아프리카에 우물은 만들어 줄 수 있어도 테러는 막지 못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 회의가 없으면 내부 견학 가능.

자본의 섬 맨해튼의 끝과 끝에는 돈 그 자체와 평화가 우뚝 서 있다.

영화 속에선 무슨 맨으로 끝나는 영웅들이 뉴욕을 날아다니며 정의를 외치기도 한다.

영웅에겐 혼돈과 무질서에서 나오는 공포가 필요하다.

악당이 없으면 영웅도 필요없다.

슈퍼맨은 한적한 초원을 날아다니지 않고, 스파이더맨은 올라갈 높은 건물이 필요하다.

UN본부가 뉴욕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부유한 도시는 안전한가?

유엔이 과연 돈 없이 유지될까?

평화를 유지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이다.

깨는 방법 또한 돈이라는 점이 문제다.

전 세계에서 월스트리트로 모인 돈은 이스트강을 따라 유엔본부로 들어가고 다시 전 세계로 흘러갈 것이다.

혼돈을 만드는 것도 없애는 것도 뉴욕에선 돈으로 한다.

비행기가 추락한 자리에는 또 다른 건물과 쇼핑센터가 서있다.

지구의 모든 인종과 문화가 모이는 곳인 뉴욕엔 없는 게 없다.

혼란과 평화가 모두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월스트리트와 유엔.

자본의 섬 맨해튼의 끝과 끝에 있는 상징적 장소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작은 섬에 공존하고 있다.

조금 쓸쓸하게도 돈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지구 평화가 무너짐과 동시에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재난 때문에 학교가 없는 곳에 보내지는 스쿨박스는 40명의 학생이 사용하는 학습도구이자 교실이 된다. 이 박스교실에서 배운 아이가 평화를 만들 힘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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