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충전은 오히려 수명을 닳게 한다
나는 INFP다.
INFP는 집순이다.
고로 나는 집순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나는 INFP지만 밖순이다. INFP를 떠올리면 으레 따라오는 '집순이' 이미지와는 반대로, 나는 주 5일 출근에도 주말 2일을 알차게 쏘다니던 밖순이다. 회사 동기, 대학 동기, 대외활동 친구, 남자친구와 돌아가며 만나다 보면 어느새 한 달 스케줄이 꽉꽉 차있었다. 여행도 좋아해서 매년 한두 번씩 친구들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났고 코시국에도 한 달에 한 번은 국내여행을 갔다. SNS 스토리에 여행 사진을 올리면 '이번엔 또 어딜 간 거냐'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보통 E(외향형)와 I(내향형)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느냐, 내부에서 얻느냐'의 차이라고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는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도 여느 I(내향형) 인간들과 다르지 않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혼자 있을 때 회복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많은 궁금증이 생겨난다.
'내향형인데 왜 나가는 걸 좋아해?'
'나가서 뭐 하는데?'
'그럼 어떻게 쉬어?'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전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는 것을 상상해보자. 빨간불이 깜빡이던 배터리가 서서히, 10%에서 50%, 100%까지 충전된다. 그러면 100%가 된 핸드폰을 계속 충전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 이상 과충전을 하게 되면 핸드폰의 수명이 짧아질 뿐이다. 충전이 모두 되었다면 얼른 핸드폰을 들고나가 사진도 찍고, 전화도 하면서 배터리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집에 들어와 충전을 할 수 있다.
나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맥락 같다. 집에서 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물론 너무 행복하고 꼭 필요한이지만, 이게 과하게 길어지면 점점 마음이 불안함에 좀먹혀 간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 나도 빨리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 쉴 때의 행복감은 점점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차오르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충전을 멈추고 나를 바깥에 꺼내 둔다. 친구를 만나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도 먹어보고, 직접 운전해 노을 지는 서해를 보고 오기도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에너지는 소진되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행복한 마음으로 충전을 시작할 수 있다.
INFP인 내가 밖순이로 살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타고난 '집순이 성향'을 건강하게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역설적으로 밖순이의 삶을 살며 행복한 집순이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바깥에 나가 순수한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집콕하며 온전한 행복을 느끼겠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나름의 모순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밖순이 INFP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