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규네 홈스쿨 May 11. 2022

사춘기의 침묵과 무반응에 대하여

영재학교 입시 Story- 사춘기 자녀교육



무반응의 사춘기 자녀

얼마 전 등굣길에 나서는 아들이 사복 Day라고 청바지를 입고 나섭니다. 그 모습이 예뻐, 뒷모습이라도 몰래 사진으로 남기려 대문 앞으로 따라 나갔습니다. 옆집 엄마가 그때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시다 마주쳤습니다. 대문을 나서기도 전, 귀에는 에어 팟이 꼽혀있는 아들 녀석이 '안녕하세요' 하고 먼발치에서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합니다.


'어머~ 지금 가니? 사복 Day구나~ 시험 잘 보고 와~' 하는 온갖 말에도 무 표정 무 대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폰만 바라보며 옆집 대문 앞을 지나갑니다. 그녀는 평소 저와 이런저런 일상을 나누고, 준규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규야~ 시험 잘 보고 와~' 하며 뒤통수에다 함성으로 마무리합니다.


두해 전만 해도, 골목에서 그녀와 마주치면 꽁알 꽁알 수다를 떨던 준규. 그 변화무쌍한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자칫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규의 침묵과 무 대꾸를 너그럽게 받아줍니다. 그  마음을 알리 없는 아들 녀석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한 번 그녀에게 감사해집니다. 


상황을 놓고 보면, 예의 없고 버릇없는 아들 녀석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춘기 자녀를 키웠거나 연배가 지긋하신 분들은 그냥 씩 웃습니다. 세월에서 나오는 경험이겠지요.


아들은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만 해도 집에 온 Airbnb손님, 옆집 엄마, 내 친구, 가리지 않고 누구든 만나면 입에 거품을 물며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포켓몬이 어떻다, 로봇이 어떻다, 다락방을 구경하겠냐 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상대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첫 만남에서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면 포옹에 기습 뽀뽀까지 하던 아이였습니다. 





지적해야 할까?, 가르쳐야 할까? 고민하는 부모


사춘기 어둠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아이를 회색으로 집어삼켜버려 '그럴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아침 같은 풍경이 펼쳐질 때면 씁쓸합니다.  '저렇게 둬도 되나' '저런 예의 없는 녀석을~' '다 저런가~' 오만 생각이 듭니다. 어른을 만나면 좀 더 밝게 인사하고, 흥미가 없더라도 어른들과 예의상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 옆에 사람이 있을 때는 이어폰을 꽂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때그때 지적하고 고치고 싶은 아이의 행동들이 초파리떼처럼 윙윙 거립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런 말들이 아이에게 가서 닿았다면, 사춘기의 아이는 어떤 말도 다 튕기는 것 같습니다. 아예 말 자체를 거부하는 느낌이랄까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키고 좀 더 고민하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겠다고 때를 기다립니다. 그 자리에서 사춘기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아이의 반발심만 키운다는 것을 경험상 너무도 잘 알기에. 


열여섯 살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면 인사해야 하고, 예의상 이야기들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쯤,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또래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하고, 마주하는 그 시간 자체를 힘들어합니다.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본인도 그 마음의 정체를 다 모르는 때.

어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가르쳐줘야 하지만, 알지만 아이의 상태? 가 그러하니 적당한 시기에 이야기할 기회, 가르쳐줄 기회를 기다립니다. 지적과 비난이 되기 쉬운 말들을, 좋은 경험을 통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아이가 배워나가길 바라니까요.




잔소리의 재탄생


얼마 전 남편이 지인들과 집 근처에서 술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선선해서 동네, 재동 치킨 야외테이블에서. 동네 사람들도 아닌데, 온 김에 마당에서 2차를 하라고 미리 집 청소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주고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한참 하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재동 치킨에서 간단히 1차를 마시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준규랑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있을 계획이니 출발할 때 전화를 달라는 남편. 술 약속뿐 아니라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라 반가웠습니다. 


앗, 예상치 않게 전화 끊은 지 10분도 안되어 준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따라 수업이 일찍 끝났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다 잠시 고민을 합니다. '지금 전화하면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겠는데?'


준규를 차에 태우고 물었습니다. "집에 가서 스케줄이 어떻게 돼? 바로 중간고사 공부할 거야?"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조금 전까지 3~4시간 초집중해서 공부하고 나온 거라 집에 가서 30~40분 게임하며 조금 쉴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 후 중간고사 공부 마무리 한 시간 정도 하고 잘 거라고 하는 아들. 


상황 조정 완료.

집에 계신 아빠 상황을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정말 괜찮냐고 물으니 상관없다고 합니다. (우리 집은 엄청 작고, 한옥이라서 공부와 마당에서의 모임은 동시에 불가능합니다. ㅋㅋㅋ) 

"그럼 아빠한테 우리 출발한다고 연락 안 하는 게 좋겠다. 아빠 성격에 미리 이야기하면 친구분들하고 테이블 정리 바로 들어가시겠지, 그렇지?" 우리가 차로 가는 시간과 준규 게임시간 정도면 마당에서 친구들과 간단히 2차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고 운전하다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평소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낙원 상가를 지나 신호대기 중 "준규야, 웹툰 보는 것 잠깐만 멈추고 엄마 얘기 좀 들어줄래?" 

아이가 살짝 긴장하며 "왜요?"라고 묻습니다.

"준규야, 잘 들어. 잠시 후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줄게."

"너의 행동으로 아빠도 기분 좋아지시겠다. 친구분들도 마음 편해지시고."


아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합니다. 

"자~ 1번,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배꼽 인사를 90도로 한다."

"삼촌들 안녕하세요" "공손하되 표정은 반드시 밝게 웃어야 해"


"엄마, 거기서 웃는다는 좀 빼면 안 될까요? 그건 중3한테 가혹해요. "

"엄마 안 되겠어요, 그냥 집 밖에서 우리 30분 정도만 있다 들어갈까요?" 


"괜찮아 아들, 별로 길지 않아, 2단계를 들어봐"

네가 갑자기 들어가면 놀라실 거야. 내일이 시험인 것도 아빠가 이야기해서 아실 테고...

미안한 맘에 자리를 마무리하시려고 할지도 몰라.


"2번, 제가 내일 시험이기는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는 편히들 이야기 나누셔도 아무 상관없으니, 즐거운 시간 되세요~ "


"준규야 이렇게만 하면 돼. 끝이야, 그리고 네 방으로 들어가면 돼"

"어때 간단하지?"


사춘기 소년이 어색해 인사도 어영부영, 무안한 마음에 미소도 없이 휙 들어갈 수도 있을 상황을 미리 이렇게 가이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네 방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방에는 안 들어오실 테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계시다 가실 거라고, 괜찮다고...

 

그제야 살짝 안심이 되는 눈치입니다. 미션을 주고 아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주차를 하고 와보니 아이가 방에 있습니다. 남편과 지인들도 마당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잇따라 저도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챙겨주고는 곰곰이 산책을 핑계 삼아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침묵은 때론 사람을 오해하게도 만듭니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의 침묵은 예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영 탐탁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배려가 빠진 침묵일 때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사춘기의 침묵을,

반항의 침묵이라기보다는 침묵을 향유하는 중이라고 받아들여 준다면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그럴 때지~' 라며 한발 물러나 있다가, 기분 좋게 배울 수 있는 상황들에서 한 번쯤 메시지를 주면 되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