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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Nov 23. 2021

에어비앤비가 준 선물― 친구, 영어, 경험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34

에어비앤비로 친구를 사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촌은 외국인 관광객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곳이다. 한류를 타고 전해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졌고, 한국의 전통 문화와 한옥을 체험하기 위해 해외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을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는 호기심만 가지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우리 집 사랑방을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공유 플랫폼에 호스팅하게 되었고, 그렇게 2012년부터 작은 사랑방에는 세계 각국의 외국인 손님들이 방문하고 있다.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에도 좁은 집의 한 칸을, 손님을 위해 비워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첫째, 숙박 공유로 얻어지는 수입을 통해 1년에 한 번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을 위한 돈을 벌 수 있다.

둘째, 늘 어학연수나 유학을 꿈꾸던 나에겐 영어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다. 손님을 통해 내 영어 실력을 올릴 수 있다.

셋째,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넷째, 아이의 영어 공부에 적잖은 시간, 비용,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준규에게도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다섯째,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숙박 공유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얻는 것이 더 많았다.



우리 집을 다녀간 많은 친구들

첫 손님으로 독일에서 온 스벤은 그 후에도 매년 한국을 여행할 때마다 우리 집에서 묵으며 우리 가족과 친구가 되었다. 준규와 다락방에서 레고 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며 준규의 삼촌이 되어주었다.

생후 3개월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을 갔다는 한 젊은 청년은, 오래된 한국 여권을 보여주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저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나와 점심 한 끼를 하러 나가자는 청년에게 따뜻한 엄마의 마음과 모국의 온기를 전하고 싶어서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고 선물로 준규가 뱃속에 있을 때 만들었던 담요를 준 적이 있다. 잊지 못할 한국의 정을 느끼고 돌아간다며 그렇게 프랑스로 돌아갔다.

생후 7개월 아기를 데리고 한국 여행을 왔던 노르웨이 부부는 일주일을 부산에서 보내고 우리 집에 묵게 되었다. 일주일째 우유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아이 엄마의 말에, 이유식을 끓여주었더니 긴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간 적도 있다.

북한을 여행하고 왔다는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는 준규에게 북한 사진을 보여주며 경험을 나눠주기도 했다. 북한에서 맥주병에 담아 판다는 잣 막걸리를 사왔다며 함께 먹자고 하기도 했다. 준규는 마르코 옆에 딱 붙어 앉아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북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집 최연소 손님과 함께^^


한국 여행 출발 직전, 이혼한 남편이 하교하는 아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자취를 감췄다며 죽고 싶다는 아줌마는 일주일째 집 밖을 나가지도 않고 방에만 있어, 생각지 못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나면 이상한 생각은 안 들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한 번씩 밥을 차려서 방에 넣어주었더니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들려주기도 했다.


에어비앤비로 영어를 배우다

사랑방 손님들에게 준규는 늘 인기 만점이었다. 어린 준규는 마루에서 손님들에게 점프해서 안기고, 다락방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손님 손을 잡고 들어가기도 하고, 본인이 만든 종이접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체스를 함께 하기도 하며 손님들을 반겼다. 케이팝을 좋아하느냐고 손님들에게 물으며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귤 쟁반을 들고 손님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씩 놀다가 나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손짓, 발짓,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더니 나중에는 대화 중간중간 “엄마”를 부르며 단어를 묻기도 했다.


영어 문장의 반이 ‘and’인데도 굴하지 않고, 엄마가 불법 주정차 딱지 떼일 뻔한 이야기를 손님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한 적도 있다. 좀비에 빠져 있을 때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맥스 브룩스의 좀비 백과사전 《세계대전Z》(황금가지, 2008)에서 읽은 좀비 대처법을 미국 청년에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준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스스럼없이 영어를 접하고 익혔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여전히 준규나 내가 집에 없을 때 손님이 오면 불을 끄고 없는 척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마쳤는데도, 말만 하려고 하면 문장 생각하다가 말문이 막혀버린다고 한다. 손님들에게 새해 첫날이라고 떡국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는 날이면 어느새 연기처럼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숨어 있는다.


언어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조적인 남편과 아들이다. 준규는 손님이 오면 달려 나가 용돈을 벌기 위해 체크인을 도와준다. 대문 열쇠 사용법, 방 안내, 웰컴 티나 간식 가져다 드리기 등 뭐든 서슴지 않고 한다. 돈을 늘 벌고 싶어 하는 준규는, 내가 부득이하게 손님 체크인 때 외출을 해야 하면 매우 좋아한다. 큰 용돈을 벌 기회이기 때문이다.


매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준규는 일상에서 타인의 삶 일부를 체험한다. 또한 우리 가족의 반복되는 일상 속 낯선 이들의 발걸음이 더해져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에어비앤비로 세상을 경험하다 ― 오스트리아 여행기


한옥 사랑방에 외국인 여행객을 받으며 꿈꿨던 것은 ‘우리 가족 배낭여행 가기’였다. 하지만 외벌이 공무원 남편의 매달 비슷한 월급으로 생활을 하며 여행 비용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번 돈으로 우리 가족도 1년에 한 번씩 배낭여행을 가자고 계획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오스트리아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남편도 휴가를 내어 일주일 정도 합류할 수 있었는데, 아이와 나 둘이서 여행할 때는 시간 여유도 있고 둘 다 조금 게으른 탓에 큰 부딪힘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놀이터에 나가서 일단 동네 아이들하고 한참을 놀고, 박물관이며 명소들을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합류하고 나서는 조금씩 불협화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는 남편은 놀이터에서 계속 놀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아이 아빠가 가고 싶다고 정해놓은 와인 저장고를 겸한 어느 식당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식당으로 가던 중 베토벤 놀이터로 불리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이는 놀이터에 마음을 빼앗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리로 들어갔다. 나는 남편을 설득해서, 비도 피할 겸 지붕 아래 벤치에서 조금 놀게 하자고 했다. 한 시간쯤 놀게 하고는 다시 길을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레스토랑은 보이지 않고 끝없는 언덕길만 계속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막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남편을 보며 아이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도 물러설 기세가 안 보였고, 자기주장만 하는 준규 때문에 결국 남편은 폭발하고 말았다.


폭발한 남편 때문에 고집스럽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보고 싶다는 준규의 마음을 겨우 돌리고 뒤를 돌았는데 우리 셋 모두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우리 뒤로 어느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포도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예상치 못했던 풍경에 화가 났던 마음조차 누그러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어디로 향할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인적 드문 그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들이 저 언덕 꼭대기까지 가고 싶어 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웃으며 답했다. 두 시간가량 걸리는데, 자기가 지름길로 매일 운동을 다니기 때문에 함께 가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남편도 아이 때문에 투덜대며 따라온 곳에서 마주한 경치에 마음이 누그러져서 할아버지와 동행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준규는 어느새 할아버지 손을 잡고는 앞장서서 기분 좋게 숲속 길로 들어섰다.

길을 오르는 내내 할아버지 손자 이야기며, 마을 이야기들을 들으며 산을 올랐다. 그리고 꼭대기에 오르자 더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음료수 한잔을 마시고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그날 밤, 남편이 내게 말했다. 가끔씩 앞뒤 상황을 보지 않고 너무 무모해 보이는 준규의 행동들 때문에 화가 나고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생각을 되돌아보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려 했던 자신의 계획보다 더 값진 여행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멀리까지 귀한 시간을 내서 왔으니 등산 같은 걸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공감했다. 가끔 아이랑 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의 경험을 한다. 너무 본능에 충실한 아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보니 맞춰주기 힘들 때도 있고 내 예상과는 다른 상황 전개에 당혹스러울 때도 많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미리 계획한 어떤 여행보다도 즉흥적이지만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장소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던 적이 많다. 자유롭게 하는 여행이 훨씬 더 즐거워서 숙박 따로, 교통편 따로 알아보며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나도 여전히 내 틀을 다 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한 번씩 느끼게 될 때가 많다.


언젠가 2박 3일 일정의 여수 여행에서 한적한 바닷가 근처 숙소에 묵은 적이 있었다. 깜깜한 밤, 동네 탐방을 나가보자는 준규의 제안으로 나선 산책길에, 혼자가 아니라 셋이 함께 걷는데도 스마트폰 라이트에 의지하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여행지라는 낯선 공간이 주는 자극만으로도 신체의 모든 감각이 새로움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해외를 굳이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도 좋은 곳들이 너무 많아 짧게는 주말을 이용해, 길게는 방학을 이용해 여행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당일치기로도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이 장점을 이용해 아이와 어디로든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낯섦이 주는 가벼운 긴장감 속에서 나도 모르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하는 준규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부모는 자식을 통해 배우는 것이 참 많다. 특히 나 자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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