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규네 홈스쿨 Sep 01. 2021

아이에게도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33


아이들은 벽장 속 나니아로 가는 문을 알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타임비즈, 2014)의 저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와 미켈 B. 라스무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릭 장난감 회사 레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레고는 1990년대 중반 판매 저조로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 놀이의 본질에 관한 연구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에 관해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즉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현대의 아이들은 시간이 없어 옛날처럼 길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없으니까  짧은 시간 잠깐씩 할 수 있는 자극적인 전자오락이나 컴퓨터 오락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회사는 대책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저조한 판매율을 보이자, 회사는 근본적으로 놀이 속에 감춰진 아이들의 욕망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네 개의 범주로 놀이의 패턴을 분류했다.

레고가 발견한 놀이의 네 가지 특징
1. 감시(Under the radar):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벗어난 자기만의 세계(공간)를 갖고 싶어 한다.
 2. 위계(Hierarchy): 아이들은 등급과 서열을 좋아한다.
 3. 기술 습득(Mastery): 아이들은 무언가를 완벽히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는 반복도 마다하지 않는다. 4. 사회적 놀이(Social Play): 아이들은 사회적 놀이를 좋아한다


레고의 이야기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놀이의 첫 번째 특징인 아이들의 독립적인 공간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벽장 속 코트 뒤에 숨어서 나니아★ 로 가는 문을 상상한다. 커다란 상자 속에 들어가 몸을 숨기며 미지의 세계로 연결된 것 같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이들은 먼지가 가득한 좁은 공간, 구석진 공간, 침대 아래, 의자 아래, 심지어 개집처럼 좁고 은밀한 공간에 몸을 구겨 넣으며 놀기를 좋아한다

★ 나니아(Narnia)는 C. S. 루이스가 그의 소설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에서 창조한 가상의 나라이다. 소설 속 아이들은 옷장 속에서 나니아로 가는 숨겨진 문을 발견한다.


감시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비밀 공간, 다락방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아이가 가장 좋아한 공간은 다락방과 마당이었다. 


구조상으로도 다락방은 아지트로 사용하기에 완벽한 공간이었다. 어른들의 손길이 덜 닿을 수밖에 없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우며, 아이들 키에 맞춤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부모들의 감시에서 해방되어 본인만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인 것이다.


아이는 다락방을 실험실이라 부르며 그곳에서 비밀스럽고 자유롭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뭔가 다른 세계로 통할 것 같은 다락 계단을 올라가 자기만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그 작은 공간에서 준규만의 역사가 생겼다. 가끔 올라가 보면 어른 눈에는 난장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는 그 안을 헤집고 들어가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다락방은 점점 준규의 레고 작품, 종이접기, 책 등으로 가득해졌다. 어른이 허리를 펴고 앉기에 낮은 높이이고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다 보니, 내가 청소를 해주는 일도 거의 없었다. 자기만의 비밀 공간으로는 더없이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사람의, 특히 아이들의 사고는 어떤 공간에 머무느냐에 따라 상상력이 발산되기도 하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한 군데쯤은 나니아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떨까?


아이가 만드는 방의 역사 


준규가 나니아로 가는 비밀의 문이 다락방에 있다면 준규 방은 준규의 우주이다. 준규의 우주는 자신만의 규칙으로 돌아가며,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 한옥으로 이사하기 전, 망치질을 갈망하던 꼬마를 위해 외할아버지가 작은 나무 도마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아파트에 살던 때라 소음이 걱정되어 매트 위에 도마를 놓고 망치질을 하며 놀았었다. 도마 위로 못을 수없이 박고 뽑기를 반복하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에 한옥으로 이사한 후, 망치질 한번 실컷 해보라는 마음에 준규 방에 한해서는 어디든 못을 박아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했지만, 나무로 지어진 한옥이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콘크리트 벽과는 달리 나무 기둥에는 못도 잘 들어가니 망치질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보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사 후 아이는 틈만 나면 방에다 못을 박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며 놀았다. 못만 박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해먹을  달아매고 커튼을 다는 등 그야말로 다양한 아이템들로 방을 꾸며나갔다. 물론 준규 방에 들어서면, 엄마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애써 꾹꾹 눌러야 했다. 


벽은 종이접기 공룡들로 장식되어 있고, 그걸로 부족해 천장에 매달기까지 한 아이 방은 마치 뭔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무당집처럼 보여 깨끗이 치워버리고 싶었던 날이 수 없이 많았다. 조용해서 가보면 어느 날은 책을 모두 꺼내 방을 미로처럼 해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책을 읽고 있기도 하고, 독서 의자를 만들어야겠다며 창 문 아래 공간에 의자를 집어넣고 가림막을 치기도 했다. 의자 아래 공간에 카프라로 구조체를 만들어 온갖 인형들의 집을 만들듯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망치질 하나 허락했을 뿐인데, 끈을 달고 천을 씌우며 한 단계 한 단계 확장의 단계를 거쳤다.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다시 오지  않을 준규만의 ‘방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망치질은 또다른 세계로의 확장을 열어주었다


《준규네 홈스쿨》본문  p. 241~  (진서원, 2019 )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이를 위해 선택한 집, 한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