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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Aug 23. 2021

내 아이를 위해 선택한 집, 한옥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32


엄마 엘리베이터 없는 집에 살고 싶어요


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유명하고 잘나가는 건축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는 배웠다. 어린 시절 아이가 자라난 집은 아이의 평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을 담는 장소이다. 그렇게 준규가 다섯 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아담한 계동 한옥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내 아이를 위해 선택한 집, 한옥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아파트에 살았다. 현관문 닫으면 도둑 걱정 없고, 깨끗하고, 주차장에, 택배도 대신 받아주는 경비실도 있으니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오히려 결혼 전 원룸 생활로 여러 번 힘들게 이사 다닌 것을 생각하면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준규가 태어나고 달라졌다. 평소 조심스럽고 남에게 작은 피해도 주지 않으려는 남편은 아이가 거실에서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주의를 주었다. 나는 두세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그건 불가능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혹여 층간 소음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이 스스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하던 나로서는  남편이 주의를 줄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그즈음 시골 친척집에 간 적이 있다. 집 앞으로는 과수원, 집 한 켠에 는 닭장과 개집이 있고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허름한 시골 농가였다. 외가, 친가 모두 아파트라 이런 시골집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준규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 

“엄마, 저는 이렇게 엘리베이터 안 타도 되는  집에 살고 싶어요.” 


아이는 당시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층 사람들이 탈 때마다 항상 어쩔 줄 몰라 벽을  보고 서 있거나 내 다리 밑 으로 들어가 숨곤 했다.  아이로 인해, 그동안 별  고민을 하지 않았던 집에  관한 생각들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유년 시절을 우리처럼 주택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랐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도심 속 작은 한옥으로 결국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넓은 한옥 마당에서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서울 도심 한복판 12평의 아주 작은 한옥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른에겐 작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집이지만 어린 준규에게는  하늘을 마주하고 바람을 느끼며 마음껏 뛰어도 되는 놀이터나 다름없었 다. 우리 부부는 2평 남짓한 마당과 툇마루, 포근한 골목 그리고 다락방을 품은 이 한옥이 준규에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선물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옥에서 사계절을 느끼고 배우다


주위에는 아이 초·중·고 공부를 고려해서 학군 좋은 지역으로 미리  이사를 간 친구도 있던 터라, 한옥이 과연 교육을 고려한 집테크로 괜찮은지 우려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만의 놀이터가 생겼다며 마당에서 막 뛰어놀 준규의 모습과, 툇마루에 앉아 부부가 커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한옥으로 이사 온 후, 일부러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일상이 휴식 같아졌다. 햇살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마당이 좋았고, 마루의 감촉도 참 좋았다. 집이 주는, 말로 설명 하기 힘든 따뜻한 정서를  아이도 느끼며 하루하루 를 보내고 있었다. 조금은  불편하고, 번거로울지라도  토요일 오후 처마 밑 툇마루에 누워 낮잠 한잠 잘 수 있는 그런 한옥이 좋았다. 


봄에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고, 마당의 모기장 속에서 여름밤을 느낄 수도 있으며, 가을이면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함께 책을 한껏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울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엎드려 온종일 뒹굴거릴 수 있는 한옥. 

이렇게 아이는 계절마다 다른 집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서도 사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일상을 보내는 집에서부터 사계절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지만,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늘 존재한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큼 한옥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상이 되고,  그 일상들을 경험하며 자라난 아이의 정서에도 따뜻함이 스밀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집을 통해 아이가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아이의 손길로 집을 꾸미다 ― 그림 벽 


한옥으로 이사를 준비하며 간단한 집수리를 하던 중이었다. 하루는  준규가 이사 가는 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즈음 아이가 즐겨보던 《Oxford Reading Tree》 책에서 주인공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 온 가족이 새집을 페인트칠하고 단장하는 것을 읽은  터라 본인도 거들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집에 본인이  보탬이 될 만한 역할을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아 일부러 아이가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한옥으로 이사 가기 전 살던 아파트에서는 현관 앞 긴 벽에 커다란 종이를 붙여서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  벽 밑에는 항상 색연필과 사인펜, 크레파스 등 그림 도구들이 있었고, 아이는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파트에 있던 그림 벽의 발전된 형태로 새집 마당에 아이만을 위한 그림 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집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마음도 실현시켜 주면서 아이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 는 그림 벽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들이 예상되기는 했다. 하지만 하루의 수고로움으로 준규에게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렜다. 아무 의미 없던 공간이 준규만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평생 기억될  유년 시절 추억 속 한 장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 


아이와 색을 골라 페인트를 주문하고, 아침부터 남편과 나는 그림 벽이 사고 현장이 되지 않도록 미리 비닐 테이프를 붙여 단단히 준비를 했다. 아이는 본인의 손이 닿는 곳까지 자신만의 벽을 조심조심 정성스레  칠했다. 그리고 페인트가 다 마르고 아이만의 특별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는 종이가 아닌, 집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꾸밀 수 있다며 행복해했다. 준규 친구들이나 집에 방문한 손님들과도 그 벽을 함께 채워나갔다. 그 이후에도 남편과 나는 그림 벽이 다 찰 때마 다 몇 번의 거사를 더 치러야 했지만 아이에게는 더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예전처럼 벽에 그림을 그리고 다시 페인트칠을 하자고 조르는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그림 벽은 다락방 다음으로 아끼는 장소이다.  그림은 아이들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어른의 눈으로 그림에 대한 한계를 긋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놀이처럼 마음껏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 현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집 마당 한켠 아이의 그림벽



진서원 < 준규네 홈스쿨> 본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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