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식당의 이름

볶음밥의 냄새는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by 현상이지



불은 작게 붙었다. 파란 불꽃이 가스 화구 아래에서 일렁이며, 철판 바닥을 데우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도 없이 시작된 불. 그 작은 열기가 부스 안 공기를 아주 천천히 바꾸기 시작했다.


이리안은 두 손으로 재료를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하루는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일정한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썰어내기 시작했다.


칼끝이 고기를 가를 때마다, 고기 사이에 남아 있던 육즙이 아주 미세하게 번졌다. 잘게 썰린 고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볶기도 전인데도, 벌써 살짝 공기 위로 배어 나왔다. 하루는 조심스럽게 기름을 철판에 부었다.


기름은 철판 위에서 얇은 막처럼 퍼졌고, 그 위에 고기가 얹히자 지이이익— 짧지만 묵직한 소리가 번졌다.


그 순간, 주변 공기의 온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철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는 그 소리는, 말보다 먼저 사람들의 귀를 흔들었다.


이리안은 준비해둔 찬밥을 철판 옆에 놓았다. 밥알이 굳지 않도록 실온에 꺼내 둔 지 오래지 않아, 밥알은 퍼지지 않고 탱글탱글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는 썰어 둔 고기를 밥 위에 부었고, 그 위에 아주 소량의 간장과 다진 마늘, 그리고 볶은 채소 약간을 더했다.

“지금이야.”


하루가 짧게 말했다.


철판 위에서 밥과 고기가 섞이며 바닥에 닿는 순간, 그 조합은 순식간에 온도와 기름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짧고 빠르게 뒤집는 주걱의 움직임. 밥알이 하나씩 튀며 고기와 뒤섞이고, 채소에서 나온 수분이 증기로 변하며 모서리부터 살짝 노릇하게 익어갔다.


지글, 지글, 지이잉— 기름이 고기의 표면을 스치며 튀는 소리. 철판에 닿은 밥알이 익으며 내는 고소한 탄 냄새. 그 향은 분명히 달랐다.


처음엔 짭짤하고, 뒤이어 마늘향이 풍기고, 그다음은 기름에 볶은 고기의 깊고 진한 냄새. 그것들이 한꺼번에 공기 속에서 섞이면서 가슴속을 툭 건드리는 냄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금씩 발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응? 무슨 냄새지?”


누군가가 말하자, 또 다른 누군가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치던 사람들도, 흘끗흘끗 고개를 돌리며 ‘그쪽 부스’ 쪽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부스들에서는 한결같이 푸른빛 액체가 튀김기 위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희미한 냄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저기 뭐 팔아?”

“글쎄… 볶음밥 같은데?”


이리안은 살짝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하루는 아무 말 없이 철판을 뒤집고 있었다. 익숙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고기와 밥이 철판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순간, 그는 주걱을 잠시 멈추고 말없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됐어. 이제 냄새가, 맛보다 먼저야.”


이리안은 하루의 말이 끝나자, 눈매를 살짝 가늘게 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맛보다 냄새가 먼저라… 그럼 내가 먼저 맡아도 되겠네?”


그녀는 말끝을 장난스럽게 늘이더니, 살짝 몸을 기울여 철판 위로 코를 가까이 했다. 더 예민해진 그녀의 코끝에, 지글거리는 고기와 밥, 간장과 기름이 만나 뿜어내는 뜨거운 숨결이 스쳤다.


마치 고양이처럼 철판 주변을 빙 돌며 하루의 시야를 가리고 향기를 훔쳐 가려는 도둑처럼, 살짝, 그러나 확실하게 주방 한구석의 공기를 차지했다.

“이렇게 좋은 냄새를 혼자 맡을 생각이야..?”


말투는 장난이었지만, 그 눈빛은 이미 첫 입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반짝였다. 하루는 피식 웃으며 주걱을 돌렸지만, 그 웃음 속엔 방심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넓은 접시에 담긴 밥은 윤기가 흐르되 과하지 않았고, 군데군데 눌린 자국이 바삭하게 붙어 있었다. 고기 조각은 작고 일정했고, 밥알은 들러붙지 않고 하나하나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푸른빛도 없고 단지 볶아진 마늘과 간장의 향이 그 어떤 색보다도 더 깊은 ‘냄새의 색’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먹어볼래?” 하루가 조용히 물었다.


이리안은 대답 대신 작은 나무숟가락을 들어 볶음밥을 한 점 집어 올렸다. 철판에서 막 내려온 열기가 혀끝에 닿자, 고소한 밥알과 고기의 향이 부드럽게 퍼졌다.

“…멋있—”


그녀가 말하다가, 스스로 놀란 듯 입술을 다물었다.

“아, 아니… 맛있어.”


볼끝이 천천히 붉어졌다. 하루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작게 웃었다.

“뭐야, 지금 칭찬이 두 번이나 나온 거 같은데?”


이리안은 괜히 시선을 돌리더니, 불쑥 하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하루의 앞치마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혹시… 이 안에 비밀 재료 숨겨놓은 거 아니야?”


그녀의 눈동자가 장난기 어린 반짝임으로 가득 찼다. 하루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 순간 앞치마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볶음밥 위로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이리안의 숨이 하루의 어깨를 스쳤다.

“음… 냄새는 분명히 뭔가 특별한데?”


그녀는 고양이가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짧은 순간,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코끝을 찡긋하며 냄새를 맡았고 푸른빛 ‘루나’ 없이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힘.


하루는 철판 위의 볶음밥을 뒤집으며 이리안을 흘끗 바라봤다. 앞치마를 여전히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끝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치 냄새보다 먼저, 마음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볶음밥 냄새는 어느덧 시장의 한쪽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뭐죠?”


하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볶음밥을 조심스럽게 한 접시에 담아 건넸다. 접시는 투명한 생분해 그릇이었고, 나무 숟가락도 낯설지 않은 식물성 소재였다. 음식은 작았지만 정갈했고,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온도가 담겨 있었다.


손님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 손끝은 조금은 메말라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어 볶음밥 한 입을 떴다. 입에 넣자마자,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씹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지만 두세 번 씹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 냄세…”


그녀가 아주 조용히 중얼였다. 하루와 이리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포크를 입에서 천천히 뺀 그녀는, 마치 스스로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어렸을 때… 그 냄새 같아요.”


여성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움, 놀람, 아련함 그 모든 감정이 고작 한 입의 볶음밥 안에서 파도처럼 일었다.


이리안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말없이 고개를 돌렸지만, 그 손끝엔 분명 작게 떨림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는 사람처럼. 갑자기 눈가를 훔쳤다.

“…이런 거,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중년 여성은 멋쩍은 듯 웃었지만, 그 웃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이 맛을 잊고 있었다는 ‘죄책감’과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하루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무엇도 더 묻지 않았다. 하루의 요리는 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말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한참을 머물다 조용히 돌아섰고, 그 뒷모습은 오래된 책장을 덮듯 조용히 사라졌다.


조금씩 볶음밥을 받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맛있다, 고소하다, 향이 진하다는 말들이 속삭이듯 오갔다.


누구는 사진을 찍었고, 누구는 한 입 먹고 웃었다. 그런 소리들이 스며드는 와중, 이리안은 잠시 볶음밥을 담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불빛 아래 사람들은 크고 화려하게 웃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런 변화가 너무나 조용해서 처음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이리안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처음이야. 사람들이 웃는 게.”


하루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응?”


이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철판 위의 볶음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웃은 적… 없었거든. ‘루나’를 먹고 나면, 표정이 사라지잖아. 맛있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없어지고. 감정 없이, 그냥 ‘섭취’하는 거니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지금은… 다르네.”


불 앞에 선 이리안의 눈동자는 불빛보다 더 따뜻했다. 그건 요리의 맛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맛에 '대답해 준다는 것' 자체가 주는 감정이었다. 하루는 이리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불은 다시 타올랐고, 볶음밥 냄새는 골목의 끝에서부터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었다.


볶음밥 부스 앞엔 여전히 사람들이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한 입 먹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이게 뭐지?” 하고 중얼이며 두 번째 숟가락을 들었다. 그 변화는 아주 작았고, 시장 전체에서 보면 지극히 사소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다른’ 기운이 시장 끝자락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을 가장 먼저 감지한 건 바로 시장 중심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부스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그저 흘깃 눈길만 줬다. 새로 들어온 작은 부스 하나, ‘시제품’이라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아낸 특별한 이름표, 그리고 루나를 쓰지 않고 음식을 내놓는 조리 방식.


몇몇은 말없이 눈썹을 한 번 치켜 올렸고, 또 몇몇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본래 하던 일로 돌아갔다.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수군거리지도 않았다.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표정 없이 그 부스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표정은 매끄러웠고, 무표정했으며, 기계적이었다. 그들은 해산물을 굽고, 소스를 뿌리고, 루나를 떨어뜨렸다. 맛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고, ‘정량’과 ‘속도’가 유일한 지표였다.


그들에겐 지금 이 시장에서 벌어지는 볶음밥 한 접시의 변화가 아무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무반응’이, 오히려 이리안과 하루에겐 묘한 긴장으로 다가왔다.


하루는 고개를 들고, 시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 시선에는 감정이 없었다.

“……저 사람들, 뭔가 말하는 것도 아닌데… 좀 이상해.”


이리안은 장난치는 행동을 그만두고 천천히 대답했다.

“반응이 없을 때가, 가장 무서운 거야.”

“왜?”

“적어도 누군가가 화를 내면,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거든. 근데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다는 건…”


그녀는 숨을 깊게 내 쉬며 말했다.

“진짜 무감각해졌다는 거지. 감정도, 기분도, 기대도 없는 상태. 그게 가장, 오래된 중독이거든.”


그 말에 하루는 말없이 주걱을 잡으며 손끝은 조금 더 힘을 가졌다. 작은 부스, 작은 화구 위에서 볶음밥은 다시 기름에 눌리며 고소한 소리를 냈다. 한쪽에선 무표정한 시선이 스쳐갔고, 다른 한쪽에선 볶음밥을 먹은 손님이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짜 싸움은 ‘맛의 우열’이 아니라, 느낌을 잃어버린 세상에 다시 감각을 되돌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걸. 이리안은 가볍게 웃었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웃음 하나면 충분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부스를 향해 모이기 시작한 건, 기름 냄새 때문이었다. 어떤 특별한 호객도, 광고도 없었다. 그저 철판 위에서 밥알이 눌리며 내는 고소한 탄내, 구워지는 고기와 섞이는 향 ‘냄새’가 조용히 바람을 타고 골목 끝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모는 우연히 그 냄새에 이끌려 가장 구석에 있는 작은 부스 앞에 섰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이는 어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볶음밥을 조심스레 퍼 담았다.

“직접 볶은 고기로 만들었어요. 향이 조금 진할 수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그 말에 아이의 엄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루는 아이에게 맞는 작은 그릇을 건넸다. 금속 숟가락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나무숟가락이 함께였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입에 넣어준 한 숟가락을 무표정하게 받아먹었다.


한 입. 그리고 잠시 정적. 아이의 눈꺼풀이 아주 천천히 떨렸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살짝 든다. 입 안을 굴리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


그런데 그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하고 떨어졌다. 엄마가 놀라 “왜, 매워?” 하고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두 번째 숟가락을 들었다. 입에 넣고, 또 씹고, 삼켰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다. 크게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울부짖지도 않았다. 그저 눈에서, 뺨을 타고, 고요하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왜… 왜 그러니?”

엄마가 허둥지둥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 대신, 숟가락을 입으로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또 울었다. 그 눈물은 아픔도, 분노도, 억울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을 되찾은 존재가 처음으로 느끼는 혼란이자, 안도였다. 하루는 그 장면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저 철판 위의 불을 잠시 줄인 채, 한 아이가 맛이라는 감각을 처음 받아들이는 순간을 입을 다물고 지켜봤다. 불 위에 남은 볶음밥은 아주 천천히 식고 있었지만, 담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다시 느끼는 맛.’ 그건 식욕보다 더 깊은 감각이었다. 세상 누구보다 조용한 울음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 크게, 누군가의 마음속을 울리고 있었다.


푸른빛 없이도 피어난, 자극적이지 않은, 그러나 오래 머무는 순한 형태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리안은 말없이 하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중의 소리와 철판 위 지직이는 소음이 뒤로 멀어지는 듯, 그녀의 발걸음만이 조용히 다가왔다.


하루 앞에 선 이리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앞치마 끄트머리를 살짝 쥐었다. 마치 그 작은 천 조각이, 세상 모든 비밀을 풀어낼 열쇠라도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 이거 계속 만들 거지?”


그 목소리는 낮았고, 바람 속에 섞이면 금방 사라질 듯 부드러웠다. 하지만 하루는 그 속삭임 속에서, 확신과 애정이 섞인 온기를 느꼈다. 이리안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앞치마를 타고, 가슴께까지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온기엔 막걸리 향 같은, 은근히 취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하루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리안은 살짝 웃었다.

“그럼… 나도 계속 옆에 있을게.”


그 말은 장난처럼 가볍게 던져졌지만, 그 안엔 푸른빛 없이도 오래 남을 약속 같은 힘이 있었다.



“한 그릇에 1실버입니다.”

이리안의 목소리는 부스 안의 연기와 불빛을 뚫고, 길게 늘어선 줄의 앞뒤까지 또렷하게 퍼졌다.


그녀는 부스 한켠에서 주문을 받고, 손님들에게 볶음밥을 담은 용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작은 손 계산함은 쉴 틈이 없었고,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철판 앞을 향했다. 하루는 불 앞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넓적한 주걱. 기름을 두른 철판에 밥을 붓고, 고기 육즙과 밥알이 하나처럼 어우러질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집중해서 볶아냈다.


그 모습엔 과장도, 요란한 쇼맨십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진지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손님들이 뜸해진 부스 안. 철판 위에 남은 밥알들이 느릿하게 지직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리안이 하루를 힐끔 보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주걱을 집어 들었다.

“많이 힘들지? 이번엔 내가 해볼게.”


그녀의 손끝에서 주걱이 철판 위를 미끄러졌다. 밥알이 고기와 함께 불빛을 받아 반짝였지만, 몇 번 뒤집지 않아도 손목이 금세 풀렸다.


그 순간, 하루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왔다. 뒤에서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덮었다.

“이렇게, 손목 힘을 빼고…”


목소리는 낮게, 그러나 온기가 묻어 있었다. 주걱이 두 사람의 손끝에서 한 몸처럼 움직였다. 철판 위에 부딪히는 금속 소리와, 볶아지는 향이 부스 안 가득 번졌다. 그 향 속에는 은근한 달콤함과, 불 위에서만 피어나는 생생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이리안은 잠시 숨을 멈춘 듯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흠… 이제 좀 제대로 되는 것 같은데?”


그녀의 목소리는 장난기와 설렘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고, 하루의 웃음도 피식 따라 흘러나왔다. 불빛이 철판 위에서 번쩍이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 겹 더 가까워졌다. 볶아지는 밥 사이로 피어오르는 향은 마치 세상 밖 시간과는 다른, 이 부스만의 작은 계절을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하루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숨결이 스치듯, 눈이 마주쳤다.


단 1초. 그러나 그 1초는 시장을 채운 어떤 소리보다 길고, 깊었다.


이리안은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그 움직임 속에 숨길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이 스쳤다.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의 손끝이 하루 앞치마 끄트머리를 살짝 집어 당겼다. 그건 부르려는 것도, 방해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머물고 싶은 마음이 손끝으로 흘러나온 듯한 동작이었다.


하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주걱을 들어 밥을 뒤집었으나 불빛 사이 공기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앞치마 끄트머리를 놓지 않은 채, 이리안은 마치 그 거리가 깨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처럼 조용히 곁에 서 있었다. 익숙한 야시장 속, 이질적인 한 부스. 그 안에서 불빛과 향기에 살짝 취한 설렘이 주걱 끝에서 조용히 뒤집히고 있었다.



야시장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온기마저 조금씩 식어가는 밤이었다. 포장마차의 전구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꺼졌고, 어디선가 망치질 소리와 함께 천막을 걷는 기척이 들려왔다. 기름 냄새가 묻은 철제 팬과 식어가는 냄비들, 잔반을 비닐에 모으는 소리, 그리고 묵은 바람이 철제 지붕을 지나가며 내는 바스락거림까지 야시장은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한켠, 하루와 이리안의 작은 부스만은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철판 위에는 마지막 볶음밥 한 판이 남아 있었고, 그마저도 고기 몇 점과 밥 한 숟갈 정도가 전부였다.


눌어붙은 밥알이 내는 지글지글 소리가 공기 속에서 작게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하루의 심장박동처럼 느리지만 또렷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스 앞에 조용히 한 사람이 다가왔다. 낡은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신발 끈은 느슨히 풀려 있었으며, 깊게 눌러쓴 모자는 오래돼 축 늘어져 있었다. 걸음은 더뎠고, 어깨는 무겁게 처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가 노인이라는 것이 보였다.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몸짓, 낮게 깔린 눈빛, 그리고 먼지처럼 희미한 존재감. 이리안은 순간 몸을 굳히며 그를 바라봤다. 어쩐지 말없이 다가오는 기척에, 조금은 낯설고 조심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하루는 묵묵히 그를 마주보았다. 피하거나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거칠고 마른 듯했지만, 그 안엔 오래된 단단함 같은 것이 있었다.

“혹시… 밥 하나 남았나.”


까칠한 말투였지만, 그 속엔 어딘가 떨리는 피로함이 섞여 있었다. 하루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걱을 들고 마지막 볶음밥을 철판 위로 옮겼다. 남은 고기와 밥을 조심스럽게 모아 불 위에 다시 지글거리게 올렸다. 마지막 불맛이 철판에서 피어오르며 밤공기를 살짝 흔들었다.


이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드실 건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며 작은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 손짓이 어쩐지 미안해 보이기도 했다.

“근데 돈이 없는데… 어쩌지.”


노인의 말은 짧고 뻣뻣했지만, 그 말끝엔 스스로를 지키려는 작은 자존심이 묻어 있었다. 이리안은 당황한 듯 잠시 망설였고, 그 눈길이 하루를 향했다.


하지만 하루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주걱을 든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표정엔 그 어떤 꾸밈도 없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마지막 재료라서요.”


말은 차분하고 따뜻했다. 하루는 철판 위에서 볶음밥을 마지막까지 정성스레 뒤집었다. 불맛이 살짝 스민 밥 위로, 루나 한 방울 없이도 고기의 향이 은은히 피어올랐다. 그 접시를 두 손으로 들어 조용히 노인 앞으로 내밀었다.


노인은 말없이 그것을 받았다. 손끝에 힘을 주어, 마치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듯 꼭 쥐었다. 그리고 아무 인사도 없이 돌아서서 부스 옆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숟가락을 꺼낼 겨를도 없이, 그는 밥을 그대로 집어 입에 넣었다. 입속에서 밥알이 부드럽게 풀리며, 고기 향이 숨처럼 스며들었다.

“…우걱, 우걱…”


그 소리는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이 오랜만에 세상과 대화를 시작하는 듯한 소리였다. 하루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따뜻할 때 드세요. 불맛이 제일 잘 느껴질 거예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속엔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노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숟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밥을 계속 먹었다. 그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부스 안의 공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뒷모습이,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고, 아주 천천히. 이리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하루의 옆으로 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진짜 이상한 요리사야.”


하루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밥 주는 게 이상해?”


이리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웃었다.

“그게… 이상할 만큼 따뜻해서.”


그리고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따뜻함 보기 어려우니까.”


하루도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엔 오늘 하루를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작은 위로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철판의 불이 꺼졌다. “칙—” 하는 짧은 소리를 남기고 오늘의 마지막 열기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볶음밥을 먹고 있는 한 노인의 뒷모습. 그저 진짜 불맛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만들어낸 조용한 이야기였다.


노인은 마지막 한 톨까지 볶음밥을 남기지 않고 천천히 입에 넣었다. 작은 접시를 조심스레 들어 기울이고, 남아 있던 밥알 한 점까지 숟가락으로 꾹 눌러 긁어냈다. 입 안에 들어간 마지막 숟갈을 몇 번 꼭꼭 씹은 후, 그는 오래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접시를 비우고 나서, 노인은 접시를 들고 다시 부스 앞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느렸지만, 이전보다 어딘가 단단했고 눈빛 또한 훨씬 또렷했다. 낡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손수건 하나를 꺼내더니, 입가를 조심스레 닦았다.


그 손짓 하나에도 이상하게 예의가 묻어 있었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조용한 품위가 느껴졌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루를 똑바로 바라봤다.

“밥…”


짧게 부른 뒤, 숨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

“혹시… 우리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나?”


그 말은 마치 오래 들고 있던 무거운 돌을 살그머니 내려놓는 것 같았다. 크게 울리지 않았지만, 그 울림은 묘하게 오래 남았다. 하루는 약간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네..? 어디에 있어요?”


진지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였다. 단순히 위치를 묻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노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기 전에,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의 어느 풍경 속을 걷고 있는 듯했다. 다시 하루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빈자리 식당’이라는 곳이야.”


그 말에 이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 온천장 근처에 있다는 그곳...?”


이리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예전엔 사람들이 온천을 찾던 자리였지. 지금은... 물도 덜 데워지고, 사람도 덜 오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물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말을 멈추었다가, 마지막으로 천천히 덧붙였다.

“몸이 약한 이들에겐... 그 물이 필요하지. 근육이 굳은 노인들, 관절이 아픈 이들, 길에서 몸을 식히고 잠자기 힘든 사람들한텐 그 온기가, 꼭 필요해. 하지만... 그 온기만으로는 안 돼. 밥도 있어야지. 진짜 따뜻한 밥이.”


그 말은 마치 오래전부터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던 듯, 천천히 꺼내어 내보이는 느낌이었다. 사정이나 간청은 없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책임감 같은 것, 한 끼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지닌 고요한 단단함이 있었다.


하루는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어떤 이유도, 변명도, 설명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이 사람이 음식을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기진 않는구나’ 하는 확신이 스며들었다.


하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천천히 시선을 허공으로 돌려 올렸다. 불 꺼진 다른 부스들 사이, 희미하게 남은 전구빛과 어디선가 부는 바람의 잔향. 그 안에서 하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만드는 볶음밥이, 정말로 다른 이들의 ‘빈자리’에 작은 온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날 밤, 하루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건 한 그릇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하는 감정이 조용히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원래 살던 곳에 ‘온양온천’도 있었는데 할머니랑 어렸을 때 간 기찻길 여행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은 아직 실험실의 깊은 안쪽까지 닿지 않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공기는 차분했다. 에스반 교수는 실험실 한편에 서서 기록 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얀 실험복 아래로 구겨진 노트와 분석 데이터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그는 조심스레 펜 끝으로 수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똑.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실험실 안으로 부드러운 발소리가 들어왔다. 그것은 어쩌면 ‘레시피 순례자’의 작은 세계였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교수님.”


에스반은 고개를 들었다. 의아하거나 놀란 눈빛은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의 기류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맞췄다. 하루는 짧게 말했다.

“저, 다녀오겠습니다.”


에스반의 눈썹이 약간 움직였다.

“어디로?”

“온천수가 나오는 ‘빈자리 식당’이라는 곳이요.”


하루는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조금... 필요한 손이 있다고 해서요. 혼자선 어려운 사람들이 있대요. 밥 짓는 일도, 같이 먹는 일도요.”


말은 짧았지만, 망설임 없이 나왔다. 그가 내민 말 한 줄에는 전날의 결심이 담겨 있었다. 에스반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펜을 손에서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루는 조금 긴장한 듯, 어깨를 조심스레 낮췄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차피 저는... 레시피 순례자니까요.”


그 말이 실험실 안에 퍼졌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 하지만 그 말은 공기 속에서 쉽게 흩어지지 않고, 작은 입자처럼 오래 머물렀다. 레시피 순례자 맛을 따라 떠돌며,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여정. 하루의 그 말엔 단순한 ‘요리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에스반은 그 조용한 결심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반은 책상 위 메모지 한 장을 찢어내고, 무심하게 하루에게 내밀었다.

“그 온천수. 성분 분석해서 보내라. 자료는 필요하니까.”


하루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건 분명히, 에스반 교수 특유의 ‘배웅’이었다. 걱정한다는 말도, 잘 다녀오라는 말도 없지만 대신 실험 지시를 내림으로써, 떠나는 제자의 어깨를 조용히 밀어주는 방식. 그건 말보다 확실한 응원이었다.


하루는 메모지를 소중히 가방 속에 넣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에스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책상 위의 펜을 다시 집으며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공기. 문틈을 통해 바깥의 햇살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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