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을 수 없는 밥

빈자리 식당이 있는 마을

by 현상이지



이 마을엔 대부분의 주민이 노인이었다. 한때는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오던 풍경도 사라졌고, 마을엔 이제 천천히 걷는 발걸음과 낮게 트는 라디오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이 아직 존재하는 데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운행 중인 지하철’이었다. 외지인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지만, 이 마을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는 열차.


하지만 그 열차는 지금도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각에 맞춰 조용히 마을에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열차는 자동으로 운행되었고,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쉬었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었다.


요금을 묻지도 않았고,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탑승을 독촉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기계’, 혹은 이 마을과 함께 늙어가는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누가 처음에 그렇게 만들었는지, 왜 아직까지 운행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지금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만이 이 열차를 탈 수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났고, 남겨진 노인들은 그 열차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에게 열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하루 세 번 마을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그 움직임은 시간을 감각하는 방식이자, 스스로의 감정을 측정하는 리듬이 되었고, 흐릿한 하루를 선명하게 구획하는 하나의 생활의 축이었다.


그 날, 하루가 도착한 시간은 둘째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흙먼지가 살짝 날리는 끝자락, 오래 닳아 반들해진 지팡이를 짚은 노아르 어르신이 서 있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그는 물었다.

“하루라고 했나? …옆에는 누구지?”


노아르 어르신의 시선이 이리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 눈빛에는 분명 어딘가에서 스친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야시장에서… 잠깐 봤던 얼굴인데.”


낮게 흘러나온 말이 바람보다 조용하게 두 사람 사이를 스쳤다.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 깊은 주름 사이엔 분명 반가움이 스며 있었다.


이 마을에 처음 보는 낯선 이가 나타나는 일은 이제 거의 기적처럼 드문 일이었으니까. 하루가 대답을 망설이는 순간, 옆에 있던 이리안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친구예요.”


그 말이 공기 속에 스며드는 동안, 노아르 어르신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떨림은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 한 마디 속에 담긴 ‘아직’이라는 단어가, 노아르 어르신의 귓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그건 단순한 시제나 시간의 표현이 아니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 다 닳지 않은 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눈빛이 잠시 먼 과거를 향했다. 그곳엔 언젠가 자신이 놓쳤던 인연과, 다시 이어질 수도 있는 기적이 겹쳐 있었다.


그는 말없이 그들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말했다.

“그래. 그럼 따라오게. 이 마을에 남은 사람이라면, 다 누구든 빈자리가 있지.”


지하철이 덜컹, 부드럽게 멈추는 소리가 뒷배경처럼 깔렸다.



온천수 위로 가느다란 김이 피어올랐다. 마을엔 아직 점심이었지만, 어딘가 조용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족욕탕의 물은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고, 노아르 어르신이 먼저 와서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옆에 하루와 이리안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렇게 한가로워도 되는 거야?”

이리안이 발끝으로 물장구를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루는 말없이 웃으며, 옆에 튄 물방울을 손등으로 조용히 닦아냈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웃음엔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이봐, 순서 지켜야지! 먼저 앉은 사람이 있는데 왜 끼어드는 거야!”


고함을 지른 건 젊은 노인 무리였다. 이곳 마을에는 '나이가 많은 노인'보다 ‘젊은 노인’이 더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그들은 조용히 족욕을 하려던 또 다른 노인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참 약해 빠졌어.”


한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발을 다시 조심스레 온천수에 담갔다. 얕은 물결이 일었지만, 아무도 사과하거나 양보하지 않았다.


그 말에 노아르 어르신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선 복잡한 감정이 흘러갔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 불쑥 튀어나온 말투 뒤에 숨은 속마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잠시 후 노아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하루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게 됐구만. 괜히 기분 망치게 해서. 자, 슬슬 일어나지. 빈자리 식당으로”


이리안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하루도 말없이 일어섰다. 그리고 셋은 함께, 조용히 족욕탕을 등지고 무료급식소 '빈자리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 이곳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빈자리 식당 무료급식소.’ 누구든 올 수 있고, 누구든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 소득도, 신분도, 나이도, 국적도 어떤 것도 조건이 되지 않았다. 입구에 적힌 문구는 단출했다.

‘배고프면 오세요.’


그게 단 하나의 기준이었고, 유일한 규칙이었다.


소외된 어르신들, 거리에서 지친 노숙인들 누군가의 하루가 끊어지지 않도록 ‘빈자리 식당’은 그저 식탁 하나, 밥 한 그릇의 여유만 있다면 어떤 사연이든 받아주는 식당이었다. 이름처럼,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주는 곳. 누군가의 텅 빈 하루에 아주 작게라도 따뜻함을 채워주는 곳.

“다 차지 않았다면, 앉으세요. 배식은 줄만 서시면 됩니다.”


이 단순한 말들이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지친 삶에도 ‘내가 받아도 되는 한 끼’라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상을 시험했다. 노후된 조리기구, 전기가 끊기는 날이면 돌아가지 않는 온열기, 겨울이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손끝이 얼어붙는 조리실. 비좁은 식탁 사이를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서서 먹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음식의 기본이 되어버린 푸른빛 액체 ‘루나’


처음에는 ‘균등한 영양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이 되었다. 식탁마다 놓인 ‘루나’. 그 앞에서 말없이 액체를 붓는 어르신들의 손길은 점점 무표정해졌다. 모두가 익숙해진 듯 행동했지만, 사실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이건 밥이 아니라, 연명이다. 맛이 아니라, 기능이다.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그릇이 나가지만, 그 안엔 사람의 온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식당의 이름은 ‘빈자리’였지만, 어쩌면 그 이름은 음식보다 사람의 자리를 의미했는지도 몰랐다.


오래도록 이곳을 찾아온 이들은 자신을 ‘단골’이라 불렀다. 그 단어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배급이라는 이름의 질서와 권위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음식은 우리 권리야. 우리가 먼저 겪었고, 우릴 위한 거야.”

“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나보다 먼저 받아?”

“배고프다고 다 받아 먹는 줄 알아? 여긴 질서가 있어.”


식당엔 암묵적 서열이 생겼다. 이름도, 나이도 필요 없었다. ‘얼마나 오래 이 식탁에 앉았는가.’ 그것이 유일한 계급이었다. 배식대를 점령한 이들은 주로 노숙자 출신의 젊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빈자리 식당 운영자들한테 폭언을 퍼붓기도 했고, 배식 순서를 두고 다투었으며, 심지어는 식재료를 몰래 챙기거나 다른 사람의 접시를 엎으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 분노는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켜야 할 자기 자리’에 대한 집착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모든 질서의 중심엔 ‘루나’가 있었다. 식재료 위에 내려앉는 푸른 액체. 냄새도, 맛도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단 하나의 재료.


그 어떤 철학도, 배려도, 온기도 없었다. 그저 루나가 정해준 기준만이 남았다. 루나는 평등했다. 그러나 동시에 차가웠다. 입맛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배합만 충족되면, 모든 음식은 ‘문제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사람을 보지 않게 되었다. 누가 나눠주는지 보다, 루나가 들어갔는지만 확인했다. 그날 이후, 빈자리 식당엔 밥보다 무거운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밥을 나누는 자와, 밥을 차지하려는 자. 그 둘 사이에서, 진짜 배고픈 이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배고픔은 잠시다. 그러나 한 번 부여된 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배급된 것’이라 해도 사람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단지 한 끼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 식탁 위에서 누가 먼저인지, 누가 더 많이 받아야 하는지를 다투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선의는 누군가에겐 착각이 된다.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믿게 되는 착각. 그 착각은 누군가의 입장을 가로막고, 식탁에서 밀어내며, 결국 누군가는 밥 한 숟갈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구조를 만든다.


그 결과, 이곳엔 분명 자리가 있다. 앉을 수 있는 자리, 음식을 놓을 수 있는 자리. 하지만 정작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은 자리를 얻지 못한 채 돌아간다. 그것이 오늘의 ‘빈자리 식당’이다. 그리고 하루는 그 ‘빈자리’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잊는다. 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밥을 둘러싼 마음은 모두 같지 않다. 누군가는 감사로 받고, 누군가는 그 위에 권리를 얹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삼킨다. 늙은 노인들은 식판 위의 마지막 반찬을 바라보았다. 기름기 하나 없는 삶은 채소 몇 조각, 삶아 흐물해진 고기 한 덩이, 그리고 루나 한 방울.


모든 것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씹었다. 정확히 한 번. 그 순간, 잇몸이 시큰거렸다. 무른 듯 말랑한 식감은 씹히기보단 흩어졌고, 입안에 도는 이물감은 오래 씹을수록 불쾌함으로 바뀌었다.


하나, 둘.


노인들은 이를 꽉 물었다가, 곧 포기한 듯 고개를 살짝 돌린 채 그냥 삼켜버렸다.

“씹을 수가 있어야지… 그냥 삼키는 거지.”


말은 조용했지만, 식당 안의 공기는 그 순간 유난히 무거워졌다. 식탁마다 놓인 같은 색의 식판. 같은 온도의 음식. 같은 속도로 비워지는 입.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존엄이다.


그러나 우리는 ‘루나’ 하나로 그 모든 걸 대체하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씹는 기쁨, 입에 남는 감촉, 식사 후의 여운까지도 모두 삭제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 그릇의 포만과, 길게 이어진 정적이었다.


하루는 일을 도와주며 말했다.

“몸은 유지되겠지. 근데 마음은? 입안에서 아무 느낌도 없는 이걸... 왜 아직도 밥이라고 부르지?”


말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엔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담겨 있었다. 말은 존재했지만, 정작 목으로 넘기지 못한 무언가가 그들의 사이에 맴돌았다.


잠시의 침묵.


그러다 노아르 어르신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전엔 말이지… 밥 한 숟갈에 계절이 느껴졌었네.”


그 말에 하루는 고개를 들었다.


노아르의 눈빛은 먼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했던 봄날의 나물무침, 여름의 시원한 오이지, 가을의 구수한 된장국,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그 모든 시간이, 한 숟갈 속에 들어 있었던 시절.


그들은 잠시 말없이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기계처럼 배급되는 식판 위의 음식들. 색도, 온도도, 질감도 모두 같았다. 입안에선 흘러내릴 뿐, 씹히는 감각도, 냄새도 없었다. 아무런 계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식당 뒤편 벽면.


오래된 타일 위에 누군가 조심스럽게 남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삐뚤빼뚤한 손글씨였지만, 그 안엔 분명하고 단단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이 든 자조차, 제공된 식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그것은 더 이상 배려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권력이 살아 숨 쉬는 자리다.”


하루는 천천히 그 문장을 되뇌었다.


이곳은 더 이상 ‘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같은 식판을 받아들고, 같은 속도로 삼키는 일상.


노아르는 천천히 식탁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밥은 말이야, 마음이 먼저 가는 거야. 그게 없으면, 그냥 배급이지.”


하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식은 끝났지만, 그날의 공기는 아직 식지 않은 채로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배식이 끝난 뒤에도 식당 안은 조용히 분주했다.


숟가락이 멈춘 자리엔, 이젠 저울과 온도계가 들어섰다. 남은 음식은 어떻게 처리할지 모두 기록의 대상이 되었다.

“배식 후 두 시간 지난 음식은 반드시 폐기하세요.”

“오염 검사용 샘플은 별도로 보관하셨죠?”


그 목소리들은 책임의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배를 채우려는 손길이 아니라, 차갑게 규정된 율법을 읊조리는 듯한 기계음 같았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위험 요소’로 분류된 공간. 마치 사람들의 웃음과 식사의 향기가, 기록지 위에서 붉은 잉크로 금지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처럼



‘빈자리 식당’의 무료급식은 잠정 중단되었다.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단순했다. ‘위생 관리 미흡, 식품 안전성 미보장.’ 하지만 그건 단지 껍데기에 불과했다. 누가 고발했는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항상 같은 날, 같은 징조가 반복된다는 것. 배식을 받은 이들 중 누군가가, 낡은 종이에 검은 잉크로 쓴 고발장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 민원이라 불렸지만, 그것은 마치 저주처럼 작동했다. 진짜 이유는 어둡고 은밀했다.


종이에 적힌 글귀가 관청에 도착하면, 빈자리 식당의 문은 반드시 닫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식탁을 뒤엎듯 모든 걸 무너뜨렸다.


“음식이 상했어.”

“배탈이 났어.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이런 데선 그냥 안 하는 게 나아.”


젊은 어르신들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마치 진실의 껍데기를 쓴 주문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온기보다 차가운 계산이 있었다. 자신이 먹은 음식이 조금 더 남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보다 먼저 더 많이 움켜쥐기 위해, ‘식중독 위험’이라는 이름을 빌렸다.


그 말은, 진짜 위험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자기 몫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노화는 감정에 따라 둔화된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그 둔화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감정이 옅어졌다고 믿으며 무감각해진 식탁을 ‘편안함’이라 불렀다. 불평이 없고, 반응이 없고, 요구도 없는 그 상태를 마치 이상적인 노년의 모습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똑같이 배급받는 걸 ‘안정’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쩌면, 사회가 가장 바라는 이상형이었다. 말 잘 듣는 노인. 맛에 예민하지 않은 혀. 매뉴얼대로 조용히 앉고, 조용히 일어서는 사람.


하지만 그 속엔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행복한가?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은 지금 ‘진짜 먹고 있는’ 걸까?


하루의 가슴속엔 의문이 피어올랐다. 정말, 우리는 이 식탁을 ‘함께’하고 있었던 걸까? 함께 먹는다는 것이 ‘한 그릇이라도 더’라는 전쟁의 서막이 되고, 유통기한이라는 차가운 숫자 앞에서 사람들의 눈빛이 하나둘 식어갈 때. 하루는 묵묵히 식판을 닦으며 생각했다.


식사는 권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무기가 될까? 그 식당은 ‘무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감정과 욕망은 결코 무상이 아니었다.


냄비 속의 밥보다 더 빨리 식는 건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였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배식대를 천천히 닦다 말고 손을 멈췄다.


주방 한 켠에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불빛이 식판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걸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그 식탁은 더 이상 나눔의 자리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 척, 감사를 말하는 척. 하지만 눈빛은 경쟁과 의심으로 날을 세웠다. 그 모든 현실 앞에서, 하루는 ‘무력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진짜로 느꼈다.


그런 하루를 보며, 한숨을 내쉰 노아르 어르신이 말했다.

“괜찮아, 이런 일들 종종 있어.”


식당 안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하루는 여전히 벽면에 적힌 문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권력이 살아 숨 쉬는 자리."


그 말이 자꾸 마음속을 맴돌았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먹는 식탁’이 아니라, ‘먼저 먹는 식탁.’ 그곳엔 나눔이 아니라 우선권만이 존재했다.


그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리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 뼈 아프다.”


하루는 고개를 돌렸다. 이리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람이 뭘 먹느냐가 중요한 거라며? 그럼... 네 볶음밥 먹으면서 살아야겠다~”


그 말은 장난처럼 가벼웠지만, 눈빛만큼은 어딘가 진지했다. 하루는 고개를 숙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풀리자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너… 또 장난이지?”


하루가 투덜거리듯 말했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노아르가 잠시 멈추더니,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아주 작은 미소가 스며들었다. 눈가가 부드럽게 접히며, 오래 굳어 있던 돌 같은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 미소는 말이 없었지만, 마치 오래된 등불처럼 따뜻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루는 알았다.

“아, 지금 이 공기엔… 진짜 맛이 담겨 있구나.”


텅 빈 식탁 위에도, 아직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자리를 남겨둘 수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거창한 약속도, 화려한 기적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지켜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닌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빈자리 식당은 결국 문을 닫았다.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철문은 내려갔고, 불빛은 꺼졌지만, 식탁에 앉아 밥을 기다리던 노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허기와 습관이 그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거나 홀로 사는 어르신, 치아가 약해져 죽만 찾는 어르신.

“어쩔 수 없지. 각자 알아서 해야지.”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하루의 마음은 무거웠다. ‘함께 먹는 자리가 사라진다면, 혼자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질문은 불빛이 사라진 식당 안보다 더 어두웠다.


식당은 문을 닫았지만, 노인들은 여전히 저녁 무렵이면 습관처럼 그 자리에 모였다. 닫힌 철문 앞, 꺼진 등불 아래. 그러나 발걸음은 남아 있었고, 공기 속엔 아직 희미한 기대가 맴돌았다.


그 순간 하루는 깨달았다.

“루나 없이도… 어르신들이 과연 맛있게 먹어줄까?”


그 생각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꺼져버린 화로 속에 여전히 숨은 불씨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빈자리 식당이 끝난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순간을 기다리는 잠든 거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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