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재활,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한 기록
대학교 2월 14일, 졸업식 날이었다.
모두가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는 시간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팀 최종 면접을 보러 갔다.
창업동아리를 운영하며 품어왔던 마지막 도전
나는 땅끝마을로 떠났다.
끝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오히려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흙을 밟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다시 걷겠다는 결심뿐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최종 선정 소식이 전해졌다.
누구나 맛있고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씹기 어려운 어르신들, 삼키기 힘든 분들, 당뇨와 고혈압으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분들…
음식은 분명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편하게 먹을 권리는 여전히 고르지 않다.
충청권역 발대식과 워크숍
처음 세웠던 미션은 이랬다.
“빈부격차 없이, 누구나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하지만 곧 한계를 느꼈다. ‘누구나’라는 말은 너무 넓었고,
팀 이름인 ‘별이 뜨는 주막’은 국밥집이나 술집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브랜드 이름을 ‘온기’로 바꾸기로 했다.
저녁노을처럼, 주황과 붉은빛을 담아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체온을 전하는 기업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소셜 미션도 다시 정리했다.
“소외된 어르신들께 따뜻한 밥 한 끼.”
대학교에서 ‘어르신들이 고기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음료’를 연구하는 교수님을 만나면서,
노인 식품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먹기 쉽지만 포기하지 않은 맛”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한 끼일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주는 밥.
NS홈쇼핑 요리 대회 2019 'COOK FEST' 장려상 수상
천안 광덕산에서 자란 호두로 만든 식물성 고기.
가정간편식 분야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의외로 담담했다. 그냥 “경험 삼아 다녀오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회장에 도착한 순간, 분위기는 달랐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묵묵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공기에는 진지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자 대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1학년 때, 동기들한테 말했다.
“요리 대회 한번 나가 보자.”
그때 동기들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무슨 요리 대회야.”
나는 결국 도전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볶음밥이니 복잡할 건 없었다.
견과류로 만든 식물성 고기만 챙기면 되는 메뉴였다.
광덕산 호두를 다져 양념해 볶기 시작하자
씹을 때마다 불고기처럼 깊은 맛이 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부드러움이 있었다.
이 경험 자체가 이미 큰 보상이었고,
내가 선택한 길에 계속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청년키움식당
‘청년키움식당’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멋진 꿈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다.
시작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외식조리학과가 아닌 식품영양학과로 진학했다.
친구들이 하얀 조리복을 입고 실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러다 청년키움식당을 알게 됐다.
공유 주방에서 일정 기간 직접 식당을 운영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외식조리학과 학생들이 많이 도전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괜히 더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전공이 달라도,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용기를 냈다. 학교 후배 혜정이, 친동생, 동생 친구까지
어쩌다 보니 가족 같은 팀이 만들어졌다.
신청서를 쓰면서도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떨어지겠지.’
그런데, 합격이었다.
메일을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심장이 뛰었다.
오픈 준비를 하면서 여러 번 우왕좌왕했다.
메뉴를 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서툰 손으로 간판을 붙였다.
손님이 처음 들어오던 날,
주방에서 몰래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있구나.
돌이켜 보면, 그 이전에도 나는 계속해서 요리를 붙잡고 있었다.
후배와 요리대회에도 나가고, 공유식당에서 경험을 쌓고,
힘들다면서도 늘 다시 돌고 돌아 음식 앞에 서 있었다.
1학년 때, 장난처럼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식품 회사 만들면 들어올래?”
친구들은 웃고 말았지만,
그때의 열등감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지구 사랑 천안시민 나눔 한마당’에 참가하던 날,
대학교 제빵실에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건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부스의 샌드위치도 금방 동이 났다.
잠깐, 엘덜리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온양온천역 근처를 지날 때마다
늘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 만들 수 없을까?”
그 질문에서 ‘엘덜리 아이템’이 시작됐다.
온천수의 특징을 살려
육류를 더 부드럽게 만드는 조리법을 연구했고,
결국 온천수를 활용한 육류 조리 방법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엘덜리(Elderly)’라는 이름은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이라는 뜻을 담아 자연스럽게 붙여졌다.
어르신들은 언제나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천안 중앙시장, 온양온천 시장을 가보면
저렴한 칼국수 집에 어르신들이 늘 많았다.
그렇다면,
칼국수처럼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면을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생선살로 만든 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자미 순살, 감자 전분, 타피오카 전분을 사용했지만
처음엔 실패.
생선 순살만 따로 모아주는 곳을 수소문해 연락했고,
타피오카 전분이 글루텐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면이기 때문에,
볶음우동, 짬뽕, 짜장면처럼 활용도도 높다고 생각했다.
마침 후배의 어머니께서 밥솥으로 생선을 조리해
가시까지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작은 팁이 큰 힌트가 되었다.
식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식품을 만들고 싶었다.
고령친화 식품과 겹치는 지점이 많았다.
방향을 조금 틀어,
어르신 맞춤형 식품으로 하고 있다.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알약 하나로 모든 영양소를 해결하는 식품을 만들겠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은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싶을까?
음식을 먹는 즐거움, 향, 식감, 추억
그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는 건 아닐까?
씹기 힘들고 삼키기 어려워도,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싶다”고 말한다.
기존 음식의 모습과 식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알약는 고민 끝에,
《세상을 구할 행복 레시피》 속
‘루나’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상을 구할 행복 레시피》中
‘루나’라는 이름의 물질이 등장한다.
루나란, 단지 영양을 채우는 물질이 아니었다.
달빛처럼 차갑고, 바다처럼 깊지만, 맛은 사라진다.
그것은 포만감이 아니라, 끝없는 무중력의 정적의 마법이었다.
손으로 직접 레고를 조립하다 보면
뇌세포의 70~80%를 사용하게 되어
문제 해결 교육에 자주 활용된다고 한다.
강사님은 레고를 쌓는 데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조립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방법도,
전혀 다른 다양한 방법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브랜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집에서 생활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저작(씹기)과 연하(삼키기)가 힘들고
영양 불균형이 걱정되는 분들에게,
편하게 식사하고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고령 식품’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즐거움과 안심, 그리고 가족의 화목으로 연결됐으면 좋겠다.
식단 브랜드 이름은 ‘옹기종기’로 정했다.
사람들이 모여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처럼,
따뜻함과 정겨움을 담고 싶었다.
주황색 계열을 사용해 포근함을 살리고,
종갓집 느낌과 살짝 미소 짓는 표정을 넣어,
“같이 먹는 밥상”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온기’
정말로 허름한 하나의 창고였다.
대학교에서 창업동아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늘 같은 고민이었다.
동아리방이 있다고 해도
취사는 금지였고,
우리에게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실험실과 제빵실은 더 까다로웠다.
안전 문제, 사용 시간, 규정…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제약이 더 많았다.
하지만 막상 뛰어들어 보니
문제는 또 있었다.
프로젝트는 대부분 짧게 끝났고,
한 번 썼던 공간은 바로 문이 닫혔다.
팀을 다시 꾸려야 할 때도 있었고,
사람이 바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요리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곳,
냄새가 나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은 곳
현실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게 바로 창고였다.
우리에겐 처음으로 마음껏 써도 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발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의 ‘온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창고에서
우리는 테스트를 하고, 실패를 기록하고,
다시 시도하며 성장했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진행하던 때
아산시 노인종합복지관을 연결해 주셨고,
설레는 마음으로 먼저 메일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영양사님과 인터뷰 진행
고혈압, 당뇨…
그렇다고 환자식만 만들 수도 없어서
중간 지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워요.
작은 크기에 고열량·고영양을 담는 방식이 많아요.
생선도 가시 때문에 순살만 사용하죠.
고기도 부드러운 부위를 다져 쓰고요.
(유치원 급식과 비슷한 면도 있어요.)
전체적으로 싱겁게 조리하는데
어르신들은 짠맛에 익숙하셔서
싱겁게 하면 맛이 없다고 느끼세요.
생소한 음식은 잘 드시지 않고
찌개보다는 속이 편한 국물이 특히 사랑받아요
이후,
아산시 노인종합복지관과 업무협약을 맺게 되었다.
매주 어르신들께 밑반찬을 제공하며
피드백을 받고, 레시피를 하나씩 보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식단을 만드는 일이 단순히 “요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걸
오래된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저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미소 짓는
그 평범함이 이상하게 마음 깊숙이 남았다.
세월이 흘러도 편히 돌아와 웃을 수 있는 자리.
처음엔 단순히 ‘사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사람과 음식을 배우는 과정이었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묻는 시간이 되었다.
마무리하면서
긴 여정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나의 창업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밤에 갑자기 식은땀이 나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천안충무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
그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병명은 뇌출혈.
중환자실에서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온 순간이 있었지만
곧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지기까지, 그리고 그 후 2주 동안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산 충무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침대에 실려 가던 날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음 엄마를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이며 말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기저귀를 차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편마비와 언어장애
후유증은 끝이 없는 터널 같았다.
답답함 끝에 결국 퇴원했다.
퇴원 후,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특허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기술이전을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지금의 나는 오른쪽 편마비 환자다.
하지만 휠체어를 반납했고,
천천히라도 걷고 있다.
엄마한테 정리한 레시피를 적어 주었는데,
요즘은 그걸 보며 요리에 푹 빠지셨다.
이제, 서른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