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2025년 2월의 어느 일요일 낮.
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진 소식.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그 순간, 내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핸드폰 화면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곧장 차를 몰아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운전대 위에 얹힌 손은 덜덜 떨렸고, 심장은 귀 옆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요동쳤다. ‘아직 아닐 거야, 어쩌면 잘못 들은 걸지도 몰라.’ 스스로를 속이며 가던 길,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어머니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긴 투병 끝에 고통에서 벗어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무너져 내리듯 울부짖었다.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곁에 매달려 오열했다. 수십 년을 살며 단 한 번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그렇게 내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부터 아프셨다. 병은 서서히 몸을 무겁게 만들었고, 결국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불편해졌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주한 어머니는 늘 웃고 계셨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얼마나 큰 고통이 숨어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머니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남들이라면 불평하거나 절망했을 상황에서도, 늘 담담하게 우리를 바라보셨다.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나. 어머니는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셨다. 그런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을 단단하게 붙들어주었고, 동시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였던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우리 어머니는 늘 곁에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도, 병이 깊어져도, 당연히 늘 옆에 계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이제 와서 가장 크게 남는 건 미안함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 더 자주 웃어드리지 못한 것,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것. 그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
아버지는 장례 내내 담담하셨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절차를 챙기시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버지의 마음속 슬픔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수십 년간 함께했던 아내의 빈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아버지는 혼자 사시며, 말없이 그 슬픔을 견디고 계신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종종 가슴이 먹먹해진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 모습이 오히려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여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이다. 우리 둘은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말끝이 쉽게 흩어진다. 동생도 남편과 아이들 곁에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고, 나 역시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살며 그 부재를 절실히 느낀다. 손주들을 더 자주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큰딸이 장난을 치며 웃을 때, 작은 딸이 노래를 부를 때, 막내 아들이 내 품에 안겨 잠들 때, 나는 자꾸만 상상한다. 어머니가 곁에 계셨다면 어떤 미소를 지으셨을까. 그 상상은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뼈저린 그리움이 된다.
어머니는 수목장에 모셔졌다. 숲길에 들어서면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잔잔한 햇빛이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 동생과 나는 종종 그곳을 찾는다. 아버지 또한 홀로 그 길을 걸어가신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전히 어머니와 대화한다. 말은 없지만, 마음으로 전하는 인사와 속삭임이 있다. “어머니, 잘 계시죠?”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눈빛으로 미소 지으실 것만 같다.
나는 이제 어머니가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 우리 가족은 오히려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게 되었다. 슬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고, 공허함 속에서 함께 웃으려 애썼다. 어머니는 부재 속에서도 우리를 이어주고 계신다.
이 책은 그리움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며 겪은 슬픔과 공허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가족의 사랑과 위로의 기록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서조차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 속에서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어머니의 부재는 여전히 내 안에서 크다. 그러나 이제 그 부재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움은 결국 사랑으로 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은 어머니께 드리는 나의 고백이자, 동시에 남겨진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