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엄마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갔다(1)

1장 〈전화 한 통, 무너진 일상〉

일요일 낮이었다. 집안엔 따뜻한 국물 냄새가 천천히 번졌고, 아이들은 거실 바닥에 흩어진 블록을 성처럼 쌓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반복된 예능 재방송이 어제의 웃음을 다시 틀어주고 있었고,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장바구니에서 대파를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평범한 낮, 별 기척 없는 겨울의 숨결. 그때 전화가 울렸다. 진동이 아닌, 조금 크게 울리는 벨소리. 액정 위로 떠오른 낯익은 이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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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한숨과 말 사이에 긴 공백이 흘렀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지만, 어디선가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눈앞의 대파가 갑자기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괴이한 물체처럼 보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희미해졌다. 아내가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물었지만, 내 목구멍은 단 하나의 단어만을 허락했다.

“엄마.....”

그 단어 하나로 집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손에 쥔 행주를 내려놓았다. 큰딸이 나를 올려다보았고, 작은딸은 손에 든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막내아들은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소란을 감지한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나는 코트를 집어 들고 지갑과 차 키를 쓸어쥐었고, 아내는 말없이 현관으로 따라와 내 어깨를 한번 감싸 쥐었다. “조심히 운전해야 해.”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내 등을 떠미는 힘이 됐다.

계단을 내려오며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 두 번 만에 연결되었다. 아버지는 장례식장에 연락을 했다고 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침착함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놓여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집에서.” 아버지는 말꼬리를 조금 떨구었다. ‘부모님 집’. 그 익숙한 두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어머니가 더 이상 거기 계시지 않는 집이라면, 그곳은 어머니의 집일까, 아니면 갑자기 텅 빈 공간일까.


차 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울렸다. 시동을 걸었지만, 한동안 기어를 넣지 못하고 핸들만 붙잡고 있었다. 배터리 잔량처럼 남아 있는 침착함이 서서히 내려가고, 마치 공중에 정지해 있던 눈덩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 나는 라디오를 껐다. 겨울 햇빛이 도로를 납작하게 눌렀고, 신호등의 초록이 이상하게도 눈부셨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것’ 목록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장례식장, 빈소, 부고, 사진, 상복, 조문객, 향, 국화. 그러나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로 ‘할 수 없는 것’ 하나가 기어 나왔다. 부모님 집으로 전화해 어머니와 통화하기. 그건 이제 영영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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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올라타자 풍경이 반듯하게 뒤로 흘렀다. 표지판의 글자가 한 줄씩 지워지는 것 같았다. ‘의정부’, ‘분기점’, ‘가속차로’… 문장 속 공백이 커지듯, 내 안에서도 말들이 빠져나갔다. 어머니가 아프셨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그 시절 6학년 겨울, 병실의 흰 벽, 금속 기둥에 매달린 주사액, 간헐적으로 울리는 기계음. 그때 나는 병실 창문을 통해 밖을 오래 내다보곤 했다. 창틀에 앉은 까치 한 마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던 날, 간호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 곁에 있는 게 제일 잘하는 거야.” 그 말이 내 첫 번째 성인이 되는 의식 같았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는 ‘괜찮다’는 말의 무게를 몰랐다. 그건 때로는 앞으로 오랫동안 괜찮지 않을 거라는 예고편이기도 하다는 걸, 아주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급정거.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았고, 나도 반사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심장이 크고 느리게 두 번 뛰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어떤 스위치가 ‘현재’로 강제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과거를 회상할 때가 아니었다.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아버지를 만나야 했다. 그리고 아들로서 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몸보다 더 느렸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앙상한 가로수 가지들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괜찮아.’ 누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잠깐 숨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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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겨울 공기가 마스크 틈으로 거칠게 밀려들었다.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안내 데스크 앞에 놓인 명부, 익숙한 듯 낯선 향 냄새. 종이컵에 따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이상하리만치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바닥의 타일이 너무 하얗고 매끈해서 발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번호가 적힌 작은 표지판들이 양옆에 이어졌고, 검은 양복과 검은 코트의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모두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곳에서는 슬퍼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빈소 앞 의자에 앉아 계셨다. 처음엔 나를 못 본 듯했다. 내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버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은 평소의 그것과 같았지만, 중심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인사 대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손등의 피부는 얇아져 있었고, 핏줄은 더 또렷해져 있었다. 우리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아버지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수고했다.” 그 말은 도착 신고이자, 앞으로의 일을 함께 하자는 조용한 다짐처럼 들렸다.

영정 사진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휴대전화 앨범 속 어머니 사진들을 넘기는데, 어느 사진을 고르든 ‘그때의 눈빛’이 달랐다. 환하게 웃는 사진은 너무 생생해서 눈물샘을 곧장 열어젖혔다. 심각한 표정의 사진은 어머니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지만, 마지막 인사로는 어딘가 딱딱하게 느껴졌다. 결국 아내와 아버지께서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사진 하나를 골랐다. 밝은 색 남방을 입은 채, 흐린 햇빛 아래서 옆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모습. 사진관 직원이 프레임을 씌워주며 물었다. “이 정도 밝기면 괜찮으시겠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사진은 금방 ‘영정’이 되었고, 그 단어가 내 마음의 어딘가를 찢어놓았다.


문상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인사를 반복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술은 그 말을 해냈지만, 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누군가가 우리의 슬픔을 나누어 가져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단어는 정확했다. 한 분, 두 분, 세 분… 사람들의 손이 내 손을 감싸고 지나갔다. 그 손들 사이로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와 비슷한 것이 전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빈소에 향을 피우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가늘게 오르는 연기가 그려졌다. 향 윗부분이 붉게 타들어가며 하얀 연무를 만들고, 그 연무가 천장으로 올라가며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의 경계에서 나는 자꾸만 한 점을 응시했다. 연기가 사라지는 동안, 어머니의 숨결 같은 것이 잠시 빛나고, 그러다 아무도 모르게 공기 속으로 섞여버리는 장면. 그게 삶의 모양인지도 몰랐다. 남은 사람들은 그 공기를 들이마시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나는 때때로 허공에서 어머니 냄새를 맡는다. 약간의 비누 향, 겨울 햇살, 오래된 옷장 속 나무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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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맞잡는 동작이 한결같았다. 울지 않는다는 건, 울지 않는 게 아니라 울음을 다른 형태로 흘려보낸다는 뜻일 것이다. 아버지의 침묵은 틈틈이 흔들렸고, 그때마다 나는 어깨로 아버지의 무게를 조금 옮겨 싣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말 안에는 ‘괜찮지 않다’가 진하게 녹아 있다는 것을.

빈소 한켠에서 장례지도사와 실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차는 정확했고, 설명은 친절했다. 하지만 숫자와 시간, 금액과 목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종이에 적히는 글자들은 현실을 더 현실로 만들었다. 서명을 하면서도 내 손은 아주 조금 떨렸다. 서명한 줄 사이로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서명의 마지막 획을 세게 눌렀다. 어머니의 이름을 대신 못 쓰는 것이 이렇게도 아프구나, 그제야 실감했다.


저녁 무렵, 첫날부터 정신없는 나에게 쉽사리 다 가지 오지 못하고 이제야 손님들이 어느 정도 나간 후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나에게 왔다. 아내의 눈가는 벌써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아내와 큰딸 그리고 작은딸은 두 손을 모으고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막내아들은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서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한 덩어리처럼 서 있었다. 어머니의 사진은 여전히 옆을 보고 있었고, 그 시선 끝에 우리가 있는 것 같았다. ‘괜찮다. 너희는 잘하고 있어.’ 그 말이 사진 틈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아, 나는 그만 다시 목이 메었다.

밤이 깊어가자 조문객의 발길도 잦아들었다. 복도는 더 조용해졌고, 빈소 안의 불빛은 노랗게 낮아졌다. 사람들은 돌아갔지만, 슬픔은 남았다. 그리고 그 슬픔은 이상하게도, 아주 조금 덜 외로웠다. 함께 나눈 슬픔은 질감이 달랐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던 감정이, 물에 적셔 단단한 모래성으로 변하는 느낌. 무너지기도 쉽고, 다시 쌓기도 쉬운 모양새.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엔 물맛이 났다. 무미無味라는 것도, 결국은 입안의 다른 맛들이 사라졌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밤에는 할아버지 집에서 자자.”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버지 집은 장례식장과 가까웠다. 밤이 깊어지자, 아버지와 나의 아내, 세 아이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나는 빈소에 남았다. 밤의 장례식장은 낮보다 더 조용했지만, 더 촘촘했다. 복도에서는 청소 카트 바퀴가 줄눈을 지날 때마다 ‘톡’ 소리가 났고, 멀리서 엘리베이터 벨이 한 번 울렸다. 제단의 물컵을 갈고, 과일 접시를 앞으로 조금 당기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모았다. 향이 없으니 공기는 더 맑고 차분했다. 사진틀의 가장자리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그 한 단어 안에 낮의 모든 풍경이 밀려 들어왔다.


새벽 무렵,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들 재웠어. 당신은?’ 나는 짧게 답했다. ‘여기. 엄마랑.’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여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른 아침 비행기라 했지? 조심해서 와.’ 여동생은 제주에 산다. 그 메시지 끝에 점 하나를 찍고 나서야, 하루가 아주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오래된 장면들이 스쳤다. 국민학교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던 날, 아버지 손을 잡고 서 있던 여동생의 얼굴, 중환자실의 기계음, 퇴원 날 구급차가 집 앞에 서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침대로 옮기던 풍경. 그리고 지금, 지하의 얕은 공기와 사진의 미소.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첫날밤은 그렇게 흘렀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잠이 사랑을 덜어내는 것처럼 느껴져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이 약속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곧 둘째 날 새벽, 여동생이 제주에서 첫 비행기로 올라온다는 걸 생각하며, 나는 사진 앞에 다시 섰다. “엄마, 내일도 제가 있을게요.”


그 새벽에, 나는 알았다. 한 통의 전화가 한 사람의 일상을 얼마나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 무엇을 다시 세워야 하는지. 아마도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가르쳐오신 것일 것이다. 아픈 몸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사람. 불편한 걸음으로도 우리 밥상을 먼저 걱정하던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비로소, 나는 그 가르침의 구조를 이해한다. 무너진 자리에는 사랑을 쌓아야 한다는 것. 그것도 서둘러 허겁지겁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벽돌을 얹듯 천천히. 그래야 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집이 된다는 것을.


아침이 열리자 접수대의 불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제단을 다시 정갈하게 정리했다. 물을 갈고, 방명록과 펜을 확인하고, 부의금함 비닐을 새로 씌웠다. 금속 벽에 비친 내 얼굴은 눈이 조금 부어 있었지만 단정했다. 밤새 누군가가 내 어깨를 다정하게 정리해 준 것 같았다.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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