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엄마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갔다(10)

10장. 에필로그

by 슬기로운 겨미생활

1부. 동작, 삶이 되다

1.사랑의-기계장치.jpg 사랑의 기계장치를 표현한 이미지

아침마다 창을 반쯤 연다. 그것은 나의 하루가, 그리고 어머니가 떠난 후 우리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는 첫 번째 동작이다. 9월의 공기가 가장 먼저 거실로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아침의 빛이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는다. 그 빛은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는 미묘하게 다른 각도로 먼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김을 펼칠 때는 모서리를 먼저 잡고, 화분에는 일요일 오전에 물을 준다. ‘일요일—물’. 어머니의 그 둥근 글씨는 이제 하나의 율법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하루와 주는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동작들로 이어진다. 거창한 의식은 없다. 대신 작은 동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동작이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라는, 여전히 쓰여지고 있는 책의 다음 페이지가 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배웠다.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체 일부가 되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그것은 아주 교묘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모양을 바꾸어 우리 곁에 남는다.

어느 날의 슬픔은 젖은 흙을 적시며 ‘스르르’ 소리를 내는 물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아버지가 끓이시는 보리차의 따뜻한 김이 된다. 또 어떤 날은,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손가락을 파고드는 비닐봉지의 묵직한 손잡이가 된다. 그 무게가, 내가 지금 누군가를 위해 살아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감각이 된다.


아버지의 “응”과 “괜찮다” 속에 담긴 수천 개의 문장. 제주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여동생의 음성 메시지. 아이들이 서툰 손으로 접는 종이학과, 아내가 김의 모서리를 잡아 주는 그 무심한 손길.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사랑의 기계장치들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거대한 유산이 아니라, 매일매일 작동시킬 수 있는 이 작은 기계장치들을 남겨주고 떠났다.


2부. 질서, 슬픔을 이기다


우리는 향을 피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의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 향 연기가 자욱한 대신 빈소의 공기는 맑았고, 우리는 그 맑은 공기 속에서 더 오래, 더 깊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향냄새는 슬픔을 덮어주고 감각을 마비시키지만, 맑은 공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맑음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더 또렷이 기억했다.

2.장례식장의-꽃.jpg 장례식장의 꽃들 이미지

향불을 살피는 대신, 우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시든 꽃을 다듬고, 맑은 물을 갈고, 과일 접시를 앞으로 조금 당겨놓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사소하고 반복적인 ‘정리’가, 마음의 거대한 무질서를 정돈한다는 것을. 슬픔이 혼돈이라면, 질서는 그것에 맞서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그 습관은 우리 가족의 새로운 문법이 되었다. 냉장고의 칸마다 라벨을 붙여 제자리를 정하고, 유리창을 닦을 땐 반드시 창틀을 먼저 닦는다. 깜빡이는 전등은 미루지 않고 바로 갈아 끼우고, 라디오 볼륨은 언제나 두 칸을 넘지 않게 맞춘다. 그 모든 질서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었던 우리 가족을 단단히 붙들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의 울음은 눈물이 아니라, 그의 모든 침묵하는 동작 속에 있다는 것을. 뜨거운 국을 식혀 밥 위에 얹어주는 손길, 창틀을 손끝으로 만져 먼지를 확인하는 그 오랜 버릇, 수목장에 가기로 한 ‘열 시’를 달력에 꾹꾹 눌러 동그라미 치는 그 필압 속에.

그 동작들을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나는 깨달았다. 남는 사람의 사랑은 말보다 습관으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습관을 물려받아 지킨다. 그리고 그 습관이 다시 우리를 지키고, 우리가 서로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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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시간으로 묶은 마음


여동생은 제주에서 분기마다 올라온다. 공항에서 막 도착한 동생은 언제나 제주의 바람 냄새를 조금씩 묻혀 온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만나는 순간은, 물리적으로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약속된 그 시간에 있다.

동생은 어김없이 바다를 본다. 그리고 모래 위에 ‘엄마, 다녀왔어요’를 쓰고, 그 장면을 사진과 짧은 음성으로 보낸다.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제주의 파도 소리와, 내 귓가를 스치는 의정부 숲의 나무 그늘이 한 화면에 겹칠 때, 멀리 떨어진 우리는 잠깐 한자리에 선다. 우리는 그것을 같은 시간, 다른 장소라고 부른다. 시간으로 묶은 마음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이들도 배웠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함께 있는 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왜 같은 시간에 해야 해요?’라고 묻던 아이는, 이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어머니가 계신 나무 앞에서, 고모가 보낸 제주의 모래 사진과 자신 앞의 흙 냄새가 겹치는 순간, 아이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해는 설명이 아니라, 이렇듯 숭고한 체험으로 온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간다. 우리의 방식으로. 오래 앉아 있고, 필요할 때 일어나고, 짧지만 가장 정확한 말을 한다. “응.” “괜찮다.” “잘했다.” 그 말들이 상처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 우리가 거기에 베이지 않도록 한다.


4부. 소리가 달라진 세계

3.엄마에게-편지를-쓴다.jpg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 이미지

나는 가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보내지 않는, 나만 보는 편지다.

엄마, 오늘은 시계가 느렸는데 고쳤어요. ‘딸깍’거리는 소리가 또렷해졌어요. 아버지가 그걸 들으시더니 ‘됐네’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가 오늘 제게는 전부였어요. 오늘도 ‘됐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어요.


여동생은 제주에서 바람을 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이제 제법 능숙하게 종이학을 접었어요.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 약속은, 들고 가는 법을 배우면 더 가벼워진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편지의 끝은 언제나 같다. 단, 한마디.

여기에 있어요.

어느 저녁,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무심코 말했다. “네 엄마 없다고 세상이 덜 단단한 건 아니다. 다만… 소리가 달라졌지.”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고쳐 썼다. 같은 세계, 달라진 음색.

그렇다. 세계는 그대로지만 음색이 달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이제는 아버지의 침묵과, 여동생의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질문과, 나의 다짐이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이 새로운 음색에 맞춰, 우리 걸음의 박자를 조금 바꾸는 일. 빠르던 건 느리게, 느리던 건 더 천천히. 그리고 필요한 순간엔, 아주 짧지만 정확한 말을 하는 것.


그래서 이 이야기는 죽음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방식의 기록이다. 한 사람이 떠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기다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김의 모서리와 물의 기울기, 창틀과 전등, 시장의 봉지와 ‘일요일—물’이라는 네 글자. 이 모든 구체적인 방식들이, 무너질 수도 있었던 우리를 구조했다.


5부. 지금, 여전히, 다녀올게요


앞으로도 계절은 바뀔 것이다. 수목장의 은행잎은 우리가 미처 다 보기도 전에 더 노랗게 물들고, 첫 서리가 내리고, 혹독한 겨울이 온 뒤에는 어김없이 봄에 새순이 돋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엄마에게 갈 것이고, 여동생은 제주에서 바람을 보낼 것이다. 아버지는 달력을 넘기며 말없이 열 시에 동그라미를 칠 것이다. 아이들은 종이학을 더 정교하고 예쁘게 접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아침마다 김을 펼칠 것이다. 어느 계절에, 어느 날에라도, 우리가 잊지 않을 한 문장이 있다.

— 지금, 여전히.

4.마지막-인사.jpg 마지막 인사.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 말을 남기고 싶다. 혹시 당신도 사랑했던 누군가를 잃었다면, 오늘 하루 그 사람의 이름을 한 번쯤 불러보기를. 거창한 제사상이나 향 대신, 그가 좋아하던 자리에 맑은 물 한 잔을 갈아보고, 말 대신 그가 앉았던 자리를 잠시 지켜보기를. 길지 않은 문장으로도, 아주 사소한 동작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오늘을 무사히 건널 수 있다.

엄마, 오늘의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다녀왔어요.


그리고 다녀올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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