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엄마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갔다(9)

9장. 지금,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마지막)

1. 아침의 질서, 기억의 복원


1장. 김 한 장에 담긴 순서

9월의 문턱을 넘어서자, 아침 공기가 가장 먼저 달라졌다는 것을 알렸다. 창을 반쯤 열어 두니, 밤새 이슬을 머금었던 선선함이 거실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주전자의 물이 끓기 직전 내는 잔잔한 진동이 부엌 바닥을 타고 발끝으로 전해져 왔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고요한 신호였다.

1.아침-햇살이-드는-부엌-한-남자의-손이-김밥용-김-한-장의-모서리를-조심스럽게-잡아-올리고-있다.jpg 아침 햇살이 드는 부엌. 한 남자의 손(화자)이 김밥용 김 한 장의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잡아 올리고 있다

아내는 도시락 상자를 꺼내고, 나는 김을 펼쳤다. 어머니가 떠난 뒤, 김밥을 마는 일은 나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가 되었다. 김의 거친 면이 위로 오게 두고, 밥을 얇고 고르게 편다.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손가락에 힘을 빼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밥이 김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하지 않게, 끝부분에 2센티미터 정도의 여백을 남겨두는 것. 그 여백이 김밥을 단단하게 붙들어 맨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수십 년간 반복하며 내게 무언으로 가르쳐 준, 사랑의 순서이자 삶의 기술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딸은 젓가락을 식구 수대로 가지런히 맞추어 놓았고, 작은딸은 물수건을 미리 적셔 개어두었다. 막내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세 개만 꺼냈다가, 잠시 허공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수저통으로 돌아가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는 제자리에 네 개의 수저를 놓으며 내게 물었다. “아빠, 오늘 할아버지 올까?”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오늘 우리가 저녁에 할아버지에게 가자.” 아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사랑법을 배우고 있었다.


2장. ‘응’이라는 단어의 깊이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아버지였다.

— 응.

내가 새벽에 보낸 ‘아버지, 밤새 괜찮으셨어요?’라는 안부 문자보다 먼저, 아버지의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 한 글자로 나는 아버지의 오늘을 짐작한다. 텔레비전은 낮게 켜져 있고, 화분은 이미 물을 받았으며, 냉장고 문에는 손자들의 카드가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그 '응' 하나로 내가 할 일도 정해진다. 오늘은 정기 방문일이 아니지만, 어젯밤 잠겨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오늘 저녁, 나의 여유를 '함께'라는 시간으로 바꾸어 써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잠시 집이 비워진 시간, 나는 식탁에 앉아 작은 노트를 펼쳤다. 장례식 이후로 틈틈이 적어온, 부모님에게서 배운 삶의 문장들이었다. 표지 안쪽에 적어 둔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걱정은 번거로움의 다른 이름.” 아버지에게서 배운 정의다. 그 옆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정의가 있다. “사랑은 구체로 남아야 오래간다.” 구체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오늘의 사소한 동작들을 가리킨다.

나는 펜을 들어 그 두 문장 아래에, 오늘의 깨달음을 덧붙였다.

“지금, 여전히.”

사랑은 과거의 기억 속에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의 손끝과 아버지의 ‘응’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2. 아버지의 세계, 침묵의 언어


3장. 세 개의 찻잔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익숙했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풍경의 채도가 매번 달랐다. 신호가 길어지면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고, 길이 시원하게 뚫리면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다리 위를 지날 때, 하천의 물비린내와 함께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늘 할 일을 한 번 더 정리한다. 오늘은 오래 앉아 있기.

2.늦은 오후의 조용한 거실. 낡은 나무 식탁 위,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찻잔.jpg 늦은 오후의 조용한 거실. 낡은 나무 식탁 위,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찻잔

아버지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간판의 색이 낯익어지고, 골목을 스치는 바람이 속도를 늦춘다.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면, ‘철컥’ 소리가 먼저 반응한다. 문이 열리고, 나는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신발을 벗고, 아버지는 대답 대신 돌아서서 전기포트 스위치를 누른다. 그것이 우리의 정해진 의식이다.


“밥은?” “먹었어요. 그래도 아버지랑 같이 먹죠.”

아버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그러자’는 동의이자, ‘와줘서 고맙다’는 반가움이기도 하다. 나는 장을 본 봉지를 식탁 위에 올리고, 익숙하게 냉장고 문을 연다. 아버지가 정해둔 질서의 자리. 김은 오른쪽 위 칸, 두부는 왼쪽 중간.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눈으로만 나의 동선을 따라온다. 내가 잠시라도 망설이면, 필요한 한 글자가 날아온다. “거기.” 그 한 글자면 충분하다.


우리는 오래 앉아 있지 않는다. 먼저 움직인다. 전기포트가 ‘딸깍’ 소리를 내며 물이 다 끓었음을 알리면, 보리차를 우린다. 찻잔 두 개를 내려놓으려는데, 아버지가 말한다. “셋.”

나는 고개를 든다. 아버지는 내 뒤쪽 현관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얼마 전 아이들이 왔을 때 신었던 작은 슬리퍼 세 켤레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오늘은 아이들이 올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습관처럼, 혹은 희망처럼 ‘셋’을 세어 놓는다. 나는 잠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말없이 찻잔 하나를 더 꺼낸다. 비어 있는 자리, 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까지 미리 채워 두는 습관. 그것이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가 터득한, 그리움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4장. “됐네”라는 한 마디의 무게


식사가 끝나면 창문을 활짝 연다. 9월의 공기는 가볍고 건조하다. 아버지는 창틀을 손끝으로 만져 먼지가 묻어나는지 확인한다. 묻지 않으면 “깨끗”이라 말하고, 묻으면 “다시”라 말한다. 나는 그 두 단어로 아버지의 오늘 하루 상태를 점검한다. 오늘은 “깨끗”이었다.


“엄마에게는 언제 가지?” 아버지가 불쑥 묻는다. “이번 주 토요일이요. 오전 열 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게 약속의 좌표를 한 번 더 확인하는 동작. 우리는 같은 말을 서로 다른 시간에 여러 번 반복한다. 그 반복이 기억을 붙들고, 오늘을 붙든다.


그날따라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약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의자를 끌어 시계를 벽에서 떼어 내고, 귓가에 댄 채 ‘딸깍’ 거리는 소리를 확인했다. “소리가… 약하네.”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었다. 나는 서랍에서 새 건전지를 찾아와 바꾸고, 시간을 맞춘 뒤 나사를 조금 더 조였다. 시계를 다시 벽에 걸자, 초침이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고 힘차게 움직였다. “됐네.” 아버지가 말했다. 그 한 마디로 방 안의 흐트러졌던 공기가 약간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제대로 흐르기 시작하는 기분. ‘됐네’라는 그 한 마디가 온종일 귓가에 남아 있었다.


3. 같은 시간, 다른 장소의 약속


5장. 리듬을 맞추는 일


여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우리가 수목장에 서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 제주 맑음. 바람 살짝.

그 아래로 작은 음성 메시지가 이어졌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파도 소리와 함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오늘은 여기 있어요. 제주 하늘 맑아요.” 이어서 모래 위에 쓴 글자 사진이 날아왔다. ‘엄마, 다녀왔어요’라는 문장. 아버지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갔다. 곧 아버지의 답장이 채팅방에 올라왔다.

— 잘했다.

3.손에-들린-스마트폰-화면의-클로즈업.jpg 손에 들린 스마트폰 화면의 클로즈업

짧은 말들이 핸드폰 화면 위에서 하나의 분명한 리듬을 만든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 같은 인사. 우리는 이 리듬으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하나의 가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 채팅방을 보여 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질문을 던진다. “왜 꼭 같은 시간에 해야 해요?” 나는 대답한다. “시간이 다르면 마음이 갈라지거든.”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면, 나는 말을 조금 바꾼다. “같은 시간에 같은 생각을 하면, 멀리 있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마치 우리만의 비밀 신호 같은 거야.” 아이들은 그 설명을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복잡한 설명보다, 함께하는 그 ‘확인’의 순간을 믿는다.


6장.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연습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정해진 토요일이 아니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다시 엄마에게 갔다. 때로는 약속된 리듬보다, 마음이 이끄는 바람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주차장에 내리자 며칠 전 내린 비로 젖은 흙내가 먼저 올라왔다.

표식 옆으로 물을 붓고, 주변을 정리하고, 떨어진 작은 가지들을 한쪽으로 모았다. 늘 하던 일들이었다. 작은딸이 노란 리본을 묶으려다 멈칫했다. “나무가 아플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땅에 두자. 마음만 묶어두는 거야.” 우리는 리본을 말아 밑동 옆에 살짝 눕혔다.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엄마, 오늘은 늦게 왔어요. 의정부에 비가 잠깐 왔고, 제주엔 어제 바람이 셌대요. 근데요, 지난 토요일 같은 시간에 각자 ‘여기 있어요’라고 인사했어요. 들으셨죠?” 말이 끝나자 바람이 한 번 스쳤다. 그 스침이 대답처럼 느껴졌다.


막내가 물었다. “아빠, 새는 왜 여기에 와?” 나는 대답했다.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까.” “그럼 우리가 없을 때는?” “그때도 와. 다만 우리가 못 볼 뿐.” 막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보이는 것으로 배우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큰다.


여동생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여기 새 한 마리 있어.” “진짜? 제주엔 오늘 갈매기만 봤어.” “다음에 내가 올 땐 엄마 좋아하던 오미자차 가져갈게.” 짧은 통화를 끝내고, 우리는 조금 더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말이 적었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할 때 찾아오는, 충만한 조용함이었다.


4.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사랑


7장. 밥상의 주인공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TV를 아주 작은 소리로 켠다. 화면 아래 소리바가 두 칸쯤 올라가 있는,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공간을 채우는 정도. 나는 부엌에서 간단한 저녁을 준비한다. 두부를 데우고, 오이를 얇게 썰어 간장에 살짝 담근 뒤 깨를 뿌린다. 김은 펼쳐 놓기만 해도 절반은 준비가 끝난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들고, 나는 밥그릇을 조금 더 중앙으로 당긴다.


식사 도중 아버지가 말한다. “네 엄마는 김이… 제일이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도 김이 주인공이네요.” 그 말에 아버지는 한 번 더 젓가락을 움직인다. 밥 위에 김 한 장을 더 얹는다. 그 움직임이 곧 동의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가면, 아이들이 숙제를 꺼내 앉는다. 나는 소파 대신 일부러 바닥에 앉는다. 바닥의 단단함이 오늘의 감정을 조금 눌러 주고 정리해 준다. 아버지는 TV 앞 의자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채널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버튼을 한 번씩 눌러본다. 버튼이 눌릴 때마다 나는 오늘을 한 번 더 정리한다. 있었다. 눌렀다. 돌아왔다.

4.밤-창밖을-올려다보는-남자의-뒷모습.jpg 밤, 창밖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뒷모습

밤이 되면 우리의 문장은 더 짧아진다. ‘다녀오셨어요?’ ‘응.’ ‘드셨어요?’ ‘먹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아내와 나는 그 짧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그 여백을 상상으로 채우려 들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음으로 채운다. 아버지가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더라도, 우리는 문장을 완성하려 들지 않는다. 미완으로 남겨 두는 것 또한 사랑의 한 가지 예의라는 걸,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배웠다.


8장. 소리가 달라진 세계


이제 나는 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꾼다. 장례식장에서의 통곡이 젖은 흙을 적시는 물이 되고, 화분에 주는 물이 되고, 아버지의 생신상에 올린 미역국이 되었다. 울음이 물소리였던 날이 지나면, 울음은 장보기 봉지의 손잡이가 되고, 전등을 고정하는 드라이버의 ‘딸깍’ 소리가 된다.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다. 숨을 쉬고, 자리하고,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우리를 앞서 걷는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네 엄마 없다고 세상이 덜 단단한 건 아니다. 다만… 소리가 달라졌지.”

그 말을 나는 이렇게 바꾸어 듣는다. 같은 세계, 달라진 음색.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새로운 음색에 맞춰 우리 걸음의 박자를 조금 바꾸는 일. 빠르던 건 느리게, 느리던 건 더 천천히. 그리고 필요한 순간엔 아주 짧지만 정확한 말을 하는 것. 나는 아이들에게도 그 박자를 가르친다. 숙제를 빨리 끝내는 법보다, 천천히 설거지를 도와주는 법을. ‘괜찮다’라는 말의 결을 듣는 법을. 누군가 울음을 삼키고 있을 때 옆에 오래 앉아 있는 법을. 그것들이 어른이 되는 진짜 방법이라면, 우리는 지금 배워도 결코 늦지 않다.


오늘 밤, 창을 닫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선 위에 작은 점 하나가 앉았다가, 아주 짧게 떴다. 나는 소리 없이 인사했다. “엄마.” 그 인사 하나로도 하루가 조금 단단해진다. 지금은 늘 흘러가지만, ‘여전히’라는 말은 남는다.


내일이면 우리는 다시 엄마에게 갈 것이고, 다음 주 일요일이면 화분에 물을 줄 것이다. 여동생은 제주에서 같은 시간의 바람을 녹음해 보낼 것이다. 아버지는 달력을 넘기며 열 시에 동그라미를 칠 것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종이학을 접을 것이다. 아내는 김의 모서리를 잡아 줄 것이다. 나는 김치가 가장자리까지 번지지 않게 놓을 것이다.


그 모든 동작이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 지금,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

나는 그 문장을 오늘의 마지막 줄로 적는다. 그리고 불을 끈다. 방 안에는 스탠드 하나의 빛만 남는다. 병실의 조명과 닮았지만, 오늘의 색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오늘을 지나 내일로 간다. 내일도, 같은 박자. 같은 문장. 같은 인사. “엄마, 다녀왔어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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