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by 하이디

지지부진하게 남아있는 감기증상 때문에 다시 병원에 갔다. ‘~의원’이라고 붙어있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진료를 하는 병원이었다. 담당의사가 지난번과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아니고 페이 닥터를 여러명 두고 운영하는 병원인 것 같았다. 전공 분야만 없을 뿐이지 모두 의사들임에는 분명한데도 어째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일주일동안 진통제와 기침약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기침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약을 얼마나 더 먹어야 하는지, 진통제를 그렇게 장기간 먹어도 되는건지 등이 궁금해서 갔던 병원에 다시 갔던 것이다.


젊은 의사는 내 증상을 듣고는 기존에 먹었던 기침약에 시럽으로 된 기침약을 추가로 더 처방해 주고 진통제도 또 처방해 주었다. 기침이 더 심해진 건 아닌데 기침약을 더 늘려서 먹어야 하는지와 진통제를 그렇게 오레 먹어도 괜찮은지 다시 물어보았다.

“어머니, 당연히 몸에 좋을 건 없죠. 그렇지만 증상이 있다고 하시니 처방을 해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검사를 해 본 것도 아니고 어머니 말씀만 듣고 해드리는 건데, 아니면 우리가 해드릴 게 없어요”

라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의사가 내 몸속을 들어와 본 것이 아니니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도 없고, 내가 말하는 증상에 따라 처방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건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그 말투가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특히나, 그 ‘어머니’라는 단어가 상당히 거슬렸다. 마치 그 순간에는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애먼 소리나 하는 노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궁금하고 염려되는 걸 물어봤을 뿐인데.


오후 내내 몸도 마음도 자꾸만 가라앉았다. 매일 하던 운동을 하루 쉴까 하다가 꾸질꾸질한 기분을 떨쳐내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 생수 한 병과 현금 만 팔천 원을 챙겼다. 매일 올라가는 뒷산 대신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천변을 걸었다. 걷다가 근사한 카페에 들러서 이름이 요상한 비싼 커피도 마시고, 맛난 디저트도 사 먹으며 만 팔천 원어치만큼 나를 위한 플렉스를 할 참이었다. 결재를 하면 남편에게로 알림 문자가 가는 카드를 쓰고 싶지 않았다.


운동이 아니라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산책’을 할 생각이었는데 걸음에 점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는 결국 언제나처럼 마지막 터닝 지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걸어간 그곳에 잊고 있었던 청과물 가게가 보였다. 간판도 없고, 값이 싼 대신 현금만 받는 곳, 그래서 주로 이용하는 손님이 대부분 추레한 차림의 ‘어머니’들인 곳. 나도 그 속에 끼었다. 트레이닝 바지에 점퍼차림으로 나왔으니 그들 속에 끼어 있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청포도 두 송이와 오이 5개, 깻잎 한 봉지를 샀다. 만 이천 원을 냈다.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서 집으로 다시 걸어오는데 너무 무겁고 손가락이 아팠다.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점심을 먹고 나갔는데도 허기가 느껴졌다. 오는 길에 찹쌀 도너츠 3개를 샀다. 두 개를 먹어 치웠는데도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어.머.니....어.머.니... 하루종일 그 단어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오늘 영락없는 어머니였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의사놈 때문이다. 전문의도 아닌 주제에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정직할 건 뭐람. 다시는 그 병원에 안 갈거다. 절대로! 네버!!

매거진의 이전글남편 먼저 환갑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