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이 있으셔서 왠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교황님이시다. 권위적이던 역대의 교황님들과는 다르게 항상 약자의 입장에 섰던 분이셨고, 세계 평화를 강조하셨던 분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훌륭한 분이 떠나셨다.
나는 종교가 없다. 절에 다니셨던 친정 엄마 때문에 어려서는 생활기록부에 종교를 '불교'라고 적어냈고, 지금까지도 사찰에 가면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 하지만, 세개(불교, 기독교, 천주교)의 종교 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인 불상 떄문에 나에게는 가장 감동(?)이 적은 종교이기도 하다. 여기에다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는 염불소리도 그렇고. 그런데 세뇌가 무서운 것인지, 무언가를 기원할 때 하나님을 찾으면 부처님께 배신을 하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부처님을 다시 떠올리고는 했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기독교 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는 특히나 종교색이 유난히 강한 학교였어서 아침 조회를 예배로 시작해서 오후 종례를 예배로 마무리했다. 또 일주일에 한번은 성경수업 시간과 학년 예배시간이 있었고, 부활절 예배, 부흥회, 성탄예배 등등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챙기는 모든 종교행사를 똑같이 따라해야 했다.
그렇다보니 친구들도 유난히 기독교 신자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길 잃은 양'이었고, 반드시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타겟이 되었다. 이유없는 반항이 하고 싶어지는 사춘기 시절에 그것 때문에 나는 오히려 기독교에 대해 더 삐딱해졌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감동을 잘 받는 나는 심금을 울리는 찬송가 소리와 가슴 뭉클한 간증을 들을 때면 자칫 기독교로 넘어갈 뻔 하기도 했다.
사춘기의 세뇌는 모태 세뇌만큼이나 강력했다. 남편의 임용을 앞두고 있을 때, 아이의 수능날, 이태원 참사 당일 아이에게 전화를 걸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또,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덮쳤을 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카톨릭은 내가 가장 모르는 종교이면서도 가장 동경하는 종교였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교황'의 존재였던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로 성스러워 보이고 저절로 무릎이 꿇고 싶어지는, 절대적인 '권위'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미사도 예배나 예불에 비해서 훨씬 엄숙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한마디로 근사하고 멋졌다.
그래서 남편의 유학시절에 독일에서 한인성당에 다녔다. 그런데, 미사를 하는 동안에 앉았다 일어났다 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신부님을 따라서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그 형식이 너무나 버거웠다. 근사해 보였던 미사의 분위기가 실제로 경험해 보니 너무나 숨이 막혔다. 결국 성당에 몇 번 나가다 말고 다시 아이들이 많은 한인교회로 옮겨서 일요일마다 아이와 함께 교회에서 놀다왔다.
요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종교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서 죽음을 좀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얼마전 세명은 기독교이고, 한명은 카톨릭 신자인 친구들을 만났다. 교회나 하나님 얘기만 나오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나를 잘 알아서 친구들은 내 앞에서는 거의 종교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얘기에 이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이어졌고, 내가 먼저 종교 얘기를 꺼냈다. 하나님을 믿으면 정말 죽는게 무섭지 않냐고. 네명 모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죽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으로 갈 거라는 믿음이 있단다. 그건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나 궁금했다. 여전히 머리로만 생각하는 나에게 종교는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죽을 때까지 과연 내 마음이 움직여질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종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기로 했다. 나에게 종교의 의미는 '마음의 중심'이다. 인간이 신을 믿지 않고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종교인들은 오만이라고 하겠지만, 현재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것은 인간 스스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께 벌 받으면 어쩌나 살짝 겁나기도 하다. 역시 세뇌가 무섭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나는 빽이 없으니 많이 걷고, 많이 쓰고, 많이 사색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마음의 중심을 잡고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죽어서 좋은 곳에는 못가더라도 살아있는동안이라도 평안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