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ㅇㅇ대학병원 601호 병실. 백발의 노인이 누워있다. 건너편 침상에도 또 한명의 노인이 누워있다. 집중케어 병실이라서 보호자가 반드시 상주를 해야하는 곳이다. 두 침상 옆에는 머리가 성성한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이 지키고 있다. 모두 두 노인의 딸들이다.
엄마가 지난 금요일에 서울에 놀러오시기로 했었다. 따뜻한 계절에 한번씩 서울 딸네집에 오시는게 유일한 외출이자 여행이라서 엄마는 잔뜩 기대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집에 혼자 계실 아버지를 위해서 김치찌개를 끓여놓았을 것이고, 매일 드시는 약이 빠진 건 없는지 가방을 몇번씩 쌌다 풀었다 하셨을 것이다. 언니와 나도 엄마를 맞이할 준비로 마음이 분주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에게 뭘 사드려야할지 어디를 모시고 가야할지 카톡을 몇번씩이나 주고받으며 고민했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무음(동생한테 혼났다)으로 설정해놨던 휴대폰을 확인하니 아버지와 동생한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엄마가 쓰러지셨단다. 아버지는 언니, 나, 오빠에게 차례로 전화를 하셨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려다 어지러워서 쓰러지면서 거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으셨단다. 크게 놀라신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계셨다. 119를 불러드리고 바로 출발하는 기차표를 알아봤다. 대전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초췌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나오셨다.
엄마는 입원을 하셨다. 다행히 뇌출혈 증상은 보이지 않지만, 며칠간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응급실로 들어오다보니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게 했다. 87년을 써 온 몸에 문제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일텐데도 엄마는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불안해 하셨다. 아버지를 집에 들어가시게 하고 엄마 옆을 지켰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는 유독 더 늙어보였다. 우리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애처로운 마음으로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 병실에는 대부분이 그런 노인 환자들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요즘의 몸 상태에 대해서 얘기하셨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깔끔한 성격인 엄마는 간혹 배변 조절이 안될 때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셨다. 아버지도 그러신지 한참 되었단다. 아마도 내가 딸이라서 편하게 말씀하시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정했다. 엄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보다 내가 그 나이가 된다면, 그래서 같은 문제를 겪게 된다면 그때도 삶을 붙잡고 싶어질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더이상 할 수 있는 치료도 없는데 고가의 검사를 더 하고 싶어하는 엄마처럼 삶에 집착하게 될까.
언니와 교대를 하고 친정집으로 갔다.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려야 했다. 아버지는 사는게 재미없으시다면서도 TV에서 뭐가 몸에 좋다는 얘기만 나오면 솔깃해 하셨다. 구순 가까운 나이에 안아픈 곳이 없으니 광고하는 모든 건강식품들이 모두 자신에게 필요한 것처럼 생각되시는 거 같았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나는 또 한번 냉정해진다. 내가 늙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고싶은 것도 없고 사는게 재미없어져도 삶에 미련이 남을까.
내가 그 나이가 안되어봤으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부모님의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내 부모가 늙어가는게 안쓰럽기만 하던 마음이 점점 다른 보통의 노인을 바라보듯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뀌어간다. 이런 나 자신이 당황스럽고, 자책이 된다.
부모님이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까봐 두려워하시는 거라는 걸 잘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이니, 그리고 그리로 가고있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통들을 이미 경험하고 계시니 얼마나 두려우실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부모님에게서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삶을 마무리해 가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거 같다.
이번에도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든 이성과 감정을 끌어모아 내 마음속에 또한번 깊이 새긴다. 내 생의 끝을 의연하고 품위있게 마무리해 갈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