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잘하고 있다, 고맙다

by 하이디

뒷산에 오르면서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매일 산을 걸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친정 엄마한테 전화를 드리는데,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아버님께도 자주 전화를 드리고 있다. 경사진 산길을 오르면서 통화를 하니 숨을 헐떡이게 되고 말이 자꾸만 끊어진다.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는 주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나의 숨가뿐 목소리를 들으시면 어머님은 항상 너무 숨차게 하지마라, 힘들게 산에는 왜 올라가냐, 헐떡거리면서 전화하지 마라, 하셨다. 내가 너무 무리하나 싶어서 걱정스러워 하시는 말씀이셨겠지만, 나는 그 말씀이 참 듣기 싫었다.



내가 걷거나 산에 올라갈 때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건 의무감 때문에 마음먹고 하는 전화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 부모님이 생각나서 하는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 부모님 연배의 어른들을 보면 부모님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별 일은 없으신지,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지, 말할 상대도 없어서 적적하실텐데 잠깐이나마 말 상대가 되어드려야지... 뭐 그런 기특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저도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잘지내고 있으니 걱정마시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어머님과의 전화통화에는 항상 "~~을 해라", 아니면 "~~를 하지마라"가 들어있었다. 갸(남편)한테 운전 조심하라고 해라, 날씨가 추우니까 갸(남편) 옷 좀 따뜻하게 챙겨줘라, 시숙 시누이한테도 자주 전화해라, 힘들게 운동하지마라, 뜨거운데 나가지마라... 기운없는 목소리와 어디가 아프시다는 말씀은 늘 따라붙는 세트 멘트였다.



선천적으로 청개구리 기질을 타고났는지, 나는 잘 하다가도 누군가 나에게 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어진다. 나에게 해가 되는 말들이 아님에도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나면 늘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딱 꼬집어서 뭐가 싫은지 왜 싫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불편했다. 나는 늘 뭔가를 잘못하고 있거나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숙제를 한가득 떠안은 기분이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나의 삐딱함을 자책하기도 했다. 어머님과의 통화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아버님은 다르다. 운동하러 산에 올라왔다 말하면 "그래, 잘했다" 하신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지 물으면 "괜찮다" 하신다. 식사 잘 챙겨드시라고 하면 "고맙다" 하신다. 내 텐션에 맞춰서 아버님도 목소리에 기운을 담으신다. 아버님과 통화를 끝내고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지금 참 잘하고 있구나 싶다.



말 보다 그 속에 담긴 마음은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다. 때로는 들리는 말에 부딪쳐서 마음이 저만큼 멀어질 때도 있다. 혼자만 아는 마음보다 밖으로 던져진 말 한마디의 힘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60년 가까이를 산 나도 이런데, 고작 30년도 살지 않은 내 자식들은 오죽할까.



괜찮다

잘하고 있다

고맙다



자식에게는 이 세마디면 충분하다는 걸 아버님께 배우고 있다. 지금부터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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