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하루 길었던 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에는 명절 뒤로 휴일이 짧아서 올라오는 길이 막힐 거 같고, 혼자 계신 시아버님을 조금 더 챙겨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휴가 끝난 다음날에 집으로 돌아왔다. 불편한 잠자리와 방바닥은 절절 끓고 콧등은 시린 시골집에서의 3박4일은 결국 나에게 감기몸살을 안겨주었다.
명절이 지나면 숙제를 마친 거 처럼 홀가분해지던 기분이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나아지질 않는다. 요즘에는 양쪽 부모님을 뵙고 오면 한동안 마음이 심란하다. 혼자 계시는 아버님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분이 함께 계시지만 서로를 챙기는 게 버거워 보이는 친정 부모님의 모습이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우리는 혼자 남겨지신 아버님의 식사 문제를 가장 크게 걱정했다. 평생 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상만 받아오셨던 아버님이 혼자서 식사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 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가끔씩 내려가서 국이나 밑반찬을 해놓고 반찬통마다 이름표를 붙여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았지만, 드시는 것보다 버려지는 것이 훨씬 많았다.
식사 하셨는지를 제일 먼저 묻는 자식들의 안부전화에 아버님은 "심심하다"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다. 동네에 얘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하셨다. 어머님과 두분이 함께 계시다가 혼자가 되셨으니 외로워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설날 오후에 먼저 올라가는 아주버님과 시누이를 기차역까지 바래다 주러 남편과 아버님이 나가시고 시골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유독 천장이 낮은 시골집의 좁은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으려니 적막하기만 했다. 집밖에서도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에는 마을 공터에 명절을 보내러 내려온 자식들의 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좁은 동네라서 차만 보고도 아버님은 누구네 집에 어떤 자식이 내려왔는지를 아셨다. 남편도 마을을 돌며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집집마다 웃음소리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 전날 오후에도 차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동네도 조용했다. 설 다음날 아버님의 산책길을 따라나서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집에 혼자 살던 영감은 작년에 죽어버렸어"
"저기 저 윗집에 사는 ㅇㅇ댁은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 있고"
"이 집 아지매는 전동차를 타고 가다가 밭둑에서 굴러떨어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지금은 어디 요양원에 있단다"
총 스무가구쯤 되는 마을은 한 집 걸러 한 집이 비어있었다. 주인이 떠난 집은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마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 한채는 도시의 주택처럼 근사하게 바뀌어 있었다. 도시에서 살던 60대 남자가 혼자 내려와서 집을 새로 짓고 살고 있다는데, 마을 사람들과는 별로 왕래가 없다고 했다.
아버님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차례씩 산책삼아 마을의 논과 밭을 둘러보신다고 했다. 이미 자식들에게 명의를 넘겨주셨고 이제는 소작농이 농사를 대신 짓고 있는 논밭이지만, 아버님에게는 평생의 일터였던 그곳을 둘러보시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인듯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아버님은 우리를 배웅하시며 자식들 전화받을 때가 제일 반갑고 기쁘다며 자주 전화하라고 당부하셨다. "식사는 하셨어요?", "별 일 없으시죠?" 라고 말하고 나면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 통화인데도 아버님에게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서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자동차 백미러로 멀어지는 아버님의 쓸쓸한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도시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우리에게 줄 점심식사를 준비하시느라 가뿐 숨을 몰아쉬시고 한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다리가 아프셔서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 하셨다. 식사를 챙기고 가볍게 걷는 정도의 일상도 점점 힘겨워지시는 듯 보였다.
부모님들께 세배를 드리며 건강하시고 오래 사시라는 인사말을 했다. 부모님이 항상 곁에서 든든히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드린 덕담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디 편안한 끝을 맞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있었다.
이렇게 이번 설도 지나갔다. 앞으로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는 명절이 몇번이나 더 남았을까. 젊은 시절에는 명절 증후군으로 힘들더니만, 나이가 들고나니 명절 후유증으로 심란하다. 이 심란함이 부디 빨리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