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엄마를 귀찮게 한다

by 하이디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제목은 모르지만, 들으면 흥얼흥얼 따라부르게 되는 트로트의 한소절이다. 누가 노랫말을 지었는지 유치하면서도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에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요즘 친정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엄마를 너무 귀찮게 하신단다.


친정집 공사 때문에 엄마가 할 일이 많아지셨다. 쌓인 먼지를 쓸고 닦는 일만으로도 엄마는 힘이 들어서 병이 날 지경인데, 아버지의 수발까지 들어야 하니 짜증이 나신단다. 엄마가 일을 하시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식사 때가 되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밥을 재촉하신단다. 집에서 해먹을 상황이 못되어서 밖에 나가 사드셔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하고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는 매번 투정을 부리시나 보다.


게다가 식사후 약 먹듯이 꼬박꼬박 드시는 믹스커피도 꼭 엄마가 챙겨드려야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양말과 핸드폰을 찾는 것도 번번이 엄마의 손을 빌리시는 모양이다. 무언가 필요하신 것이 생기면 막무가내로 엄마를 닦달하시니 엄마의 짜증지수는 점점 올라가서 이제는 아버지가 꼴도 보기싫다고 하신다.


엄마와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다. 엄마는 챙기고 아버지는 챙김을 받고. 좋은 것도 못마땅하게 표현하시는 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엄마는 늘 아버지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셨고, 아버지가 요구하기전에 모든 걸 미리 챙겨드렸다. 마치 입안의 혀처럼 알아서 움직여오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길들여졌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으이그, 내 몸뚱이 하나도 힘들어죽겠는데..."


요즘 엄마가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다. 아직 50대인 나도 점점 아픈 곳이 늘어나는데, 80대 후반인 노인이 삼시세끼를 해먹으며 사시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다. 게다가 또다른 노인의 수발까지 들어야 하니 엄마의 짜증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설거지라도 도우려들면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버지와 일을 나눠서 하시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엄마는 아버지를 못미더워 하시며 힘에 부쳐서 쓰러질 때까지 혼자서 다 하신다.


어린아이처럼 점점 더 엄마에게 의지하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버거운 엄마.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억지로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려니 엄마의 표정과 말투가 고울리가 없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에 자격지심까지 더해져서 신세한탄과 어깃장이 늘어간다. 그렇게 두분은 하루에도 몇번씩 티격태격하시며 서로 미운정을 쌓아가시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는 남편을 챙겨주는게 귀찮지 않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챙김을 바라지 않는다. 아니 가끔은 내가 챙겨주는 걸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나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런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의 부모님을 보면서 30년 후 우리 부부의 모습을 그려보면...


결혼식 주례사의 단골멘트인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백년해로가 두사람 모두에게 축복이 되려면 누가 누구를 귀찮게 하는 관계는 아니어야 할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 남편은 늙어서 진가를 발휘할 대기만성형(?) 남편. 드디어 남편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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