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은 도시에 있는 지은지 30년이 넘은 아파트이다. 아버지가 50대에 분양을 받으신 아파트는 세월이 지나며 부모님과 함께 늙어갔다. 그때만해도 지방도시의 보기드문 신축아파트로 일대에서 가장 근사했던 아파트가 30년의 세월동안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이 노쇠해진 부모님처럼 도배지가 누렇게 바래고 욕실에 곰팡이가 생겨났다.
십여년 전쯤에 도배와 욕실공사를 한번 했었지만, 또다시 낡아서 다시 손볼 때가 되었다 싶었다. 게다가 얼마전 아버지가 밤중에 화장실에 가셨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세면대를 짚으며 넘어지시는 바람에 세면대의 한쪽이 내려앉아 수리가 시급해졌다. 한쪽이 무너진 세면대를 아슬아슬하게 받쳐놓고 쓰시는게 불안해서 부모님께 빨리 공사를 하시도록 권했지만, 엄마는 결정을 못하시고 망설이셨다. 공사를 하는 것이 번잡하고 목돈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60세 무렵에 은퇴를 하시고 여든 여섯이 되시도록 수입이 없으셨던 부모님은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아놓은 돈으로 절약하고 또 절약하시며 사셨다. 그런 부모님에게 천만원이 넘는 공사비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이다.
매일 안부전화를 드릴 때마다 엄마는 공사얘기만 하셨다. 공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시느라 밤잠도 설친다고 하셨다. 집안에 살림살이를 그냥 둔 채로 공사를 하려니 더 심란하다고 하시고,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으려니 머리가 아프다고도 하셨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공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엄마가 한숨을 쉬시며 혼잣말처럼 흘리신 말 속에서 망설이시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고백하건데, 나도 부모님께 뭔가를 해드릴 때면 이걸 얼마나 쓰실 수 있을까, 가지고 계신 것들도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엄마, '얼마나 더 산다고'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라고 생각해봐 "
그 말에 힘을 얻으셨는지 엄마는 결국 공사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욕실 공사와 도배를 다시하고 부엌 싱크대를 교체하기로 했다. 욕실은 부모님이 점점 거동이 힘들어지실 걸 대비해서 욕조를 없애고 샤워실 형태로 바꾸기로 하고, 변기 옆 벽면에 안전바도 설치하기로 했다.
공사업체를 알아보고 이것저것 자재를 결정해야 해서 스트레스도 많고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쳤다. 공사를 마치고 깨끗해질 집을 상상하며 설레어 하시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무료하던 일상에 활력이 생기시는 것 같아 보였다.
공사는 다음주에 시작하기로 했다. 욕실 공사가 오래 걸려서 나머지는 추석이 지난뒤에 해야될 거 같다며 아쉬워 하셨다. 이왕이면 모든 공사를 끝내고 추석 때 자식들에게 새롭게 바뀐 집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좀더 빨리 결정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셨다.
돌이켜보면 부모님(특히 아버지)은 십년전에도 "우리가 얼마나 더 산다고"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부모님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더 빨리 늙어가도록 만들었다. 나이들면서 몸이 늙어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이 먼저 늙어가시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이번 공사로 새단장한 집에서 부모님이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저 부모님이 앞으로는 깨끗해진 집에서 편하게 지내시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얼마나 산다고'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앞으로 나도 늙음을 대하는 자세로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아야겠다. 살아있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즐겁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