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백중은 8월 27일
매일 습관처럼 운동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오늘도 역시 전화를 걸었는데 안받으셨다. 다시 걸었다. 평소에는 신호음이 채 세번도 울리기전에 전화를 받으시는데 무슨 일인지 열번이 넘게 울리도록 받지를 않으셨다. 어디 가실 때도 없고 오전에 이 시간이면 내가 매일 전화하는 걸 알고 계시는데 안받으시니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귀가 잘안들리셔서 어지간해서는 아버지와 직접 통화를 하는 일이 없는데, 엄마가 통화가 안되니 아버지에게 안부를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가 절에 가셨단다. 휴우~ 그렇구나. 그렇잖아도 어제 코엑스에 갔다가 봉은사에 걸린 49일 기도 어쩌고 하는 현수막을 보고 엄마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매년 백중날에는 절에 가셔서 엄마의 부모님과 오빠 두분의 제사를 지내신다. 엄마는 전쟁통에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오신 실향민이다. 엄마의 부모님인 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 한분은 엄마가 어려서 돌아가시고, 함께 피난 내려온 또한분의 외삼촌도 남쪽으로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12살. 그때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실 때까지 가족없이 혼자 사셨다.
맏며느리로 시집 온 엄마는 명절마다 시부모인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차례를 지내셨다. 예전에는 명절날 새벽에 절에 가셔서 먼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시고나서 집에 돌아와 시부모님의 차례상을 차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차례상에 밥 두그릇 더 떠놓으면 되었을 것을 그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시댁의 차례상에 친정 부모님을 더부살이 시키고 싶지 않으셨던 엄마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명절 차례를 성묘로 대신하면서부터는 백중날에 절에서 제사를 지내셨다.
ⓒ픽사베이
엄마는 부잣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셨다. 엄마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면 엄마는 금지옥엽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셨던 것 같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가난한 집 장남인 아버지를 만나 맏며느리로 시동생들까지 거두며 사셔야 하는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인생이 180도 바뀐 엄마가 늘 안쓰러웠다.
점심떄가 조금 지나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예전에는 절에서 백중날에 제사를 한번 지내던 것이 일주일에 한번씩 7주동안 제사를 지내는 49일 기도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절에 다녀오는 것도 힘에 부쳐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만 다녀오셨다고 했다.
몇년전 마침 친정에 간 날이 백중날이어서 엄마를 따라서 절에 간 적이 있었다. 법당에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앉아 법문을 외우고, 순서를 기다려 제사상에 잔을 올리고, 비좁은 자리에서도 연신 절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하시는 모든 행동에서 정성과 경건함이 느껴졌었다. 그런 엄마가 무척 애처로워 보여서 마음이 짠했었다.
엄마는 이제 여든 여섯의 연세에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노인이다. 내가 보았던 그 법당에서 외롭게 앉아계시는 백발의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울컥했다. 내가 모시고 같이 갈 것을... 짠한 마음에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우리 막내딸이 제사를 지내줬구나' 하셨겠네"
"이제 힘들어서 절도 못하는데... 그래도 갔다오니까 마음이 편하네. "
엄마는 살면서 엄마의 가족들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셨다. 가족을 별로 그리워하는 거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냉정하고 쌀쌀맞은 성격이라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적은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엄마의 목소리에서 가족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나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내 가정과는 별개로 내 가족(친정)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크게 느껴고 있다. 세상에 내 피붙이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외롭고 공허한 일인지, 또 얼마나 자신을 움츠러들게 하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엄마의 목소리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내년 백중은 8월 27일(음력 7월 15일)이다. 내년에는 꼭 시간을 내서 엄마와 함께 절에 가야겠다. 달력에 표시를 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