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다녀오다

by 하이디

대전 친정에 다녀왔다.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늘 별일 없다, 잘지낸다 하시지만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신경이 계속 쓰였다. 그러면서도 쉽사리 나서지지는 않고 마음에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KTX를 타면 우리 집에서 친정집까지 2시간이면 되는데 한번 다녀오기가 왜이리 어려운지 참. 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고 하나보다.


대전역에 내려 성심당부터 들렀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넉넉히 사고 다른 빵도 몇가지 샀다. 아버지가 직접 성심당에 가셔서 단팥빵을 사다가 드시곤 하셨는데, 아버지가 걷는게 힘들어져서 이제는 못가신다고 했다. 직접 가서 보니 몇달 사이에 보행이 많이 힘겨워지신거 같았다.



점심 먹을 때쯤 도착할 거 같아 부모님과 밖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도착시각에 맞춰서 나오시라고 했다. 미리 예약해둔 식당까지 최소한의 동선을 따져서 길을 알려드렸다. 버스에서 내려 기다리니 잠시후 길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엄마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걸음이 빠르신 엄마가 앞서 있고 아버지는 열발자국쯤 뒤에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다. 아버지가 거의 따라오셨을 즈음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엄마가 혼자 길을 건너셨다. 같이 좀 오시지... 엄마가 야속했다. 나중에 듣기로 엄마는 아버지와 같이 오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우리가 기다릴까봐 빨리 먼저 가라고 재촉하셔서 먼저 건너오셨단다. 아버지는 성질급한 엄마가 인상쓰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먼저 가라고 하셨다고... 두분의 마음이 다 이해는 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힘겨워 하시는 모습을 보는게 마음이 불편했다. 자꾸만 30년후의 남편과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식당에 들어가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종업원의 실수로 숯불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고기가 구워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나도 짜증이 났지만 성격이 급하신 부모님이 행여라도 역정을 내실까봐 조마조마했다. 게다가 기다리지 못하고 종업원에게 한마디씩 훈계를 하시는 부모님이 행여라도 곱지않은 시선을 받을까봐 신경쓰였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마치고 믹스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한사코 마다하시는 아버지를 겨우 카페로 모시고 가서 달달한 바닐라라떼까지 마시고 집으로 들어갔다. 노인 두분만 사시는 친정집에 들어서면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칙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친정집에 가는게 즐겁지가 않은 거 같다.



친정에 가도 딱히 하는 건 없다. 엄마와 밀린 수다를 떠는게 전부이다. 귀가 안좋으신 아버지는 잠깐 옆에 계시다가는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 낮잠을 주무셨다.


점심이 소화가 안되었지만, 부모님은 시간맞춰 식사를 하시니 부모님의 밥시간에 맞춰서 일찍 저녁을 준비했다. 메뉴는 비빔밥. 평소 아버지가 드시는 밥의 앙보다 적게 드렸는데도 아버지는 반이나 남기셨다. 아버지가 요즘 드시는 양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노인들은 밥심인데...


부모님은 하루 저녁 자고 갔으면 하시는 눈치였지만, 날도 덥고 나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치는 탓에 저녁을 먹고 일어섰다. 아이가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 정신팔려 있는동안 집을 나섰던 것처럼 엄마 아버지가 연속극에 빠져계시는 사이에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배웅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아직은 두분이 같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부디 오래도록 두분이 함께 계시길...


대전역에서 다시한번 성심당에 들렀다. 이번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단팥빵과 딸래미가 좋아하는 명란바게트를 사기 위해서. 빵집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맛있고 가성비도 좋은 성심당에 앞으로 얼마나 더 들를 수 있을까. 또 대전을 오가는 KTX는 몇번이나 더 타게 될까. 기차안에서 괜시리 마음이 울적해졌다.


집에 들어서자 나보다 빵봉지를 더 반기는 남편과 딸래미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숙제를 끝내고 내집으로 돌아왔구나. 당분간은 또 생각없이 내 생활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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