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계신 시어버지를 생각하면

by 하이디

혼자서 조용한 주말저녁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다른 용건없이 밖에 있는 남편이 전화를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지금 남편의 마음이 아주 폭폭하다(시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사투리인데 정확한 뜻은 모르고 느낌만 아는 단어이다)는 뜻이다.


남편은 지금 시댁에 내려가 있다. 시간 여유가 생겨서 혼자 계시는 아버님을 살펴드리러 내려갔다. 남편은 가기전부터 아버님과 둘이서만 지낼 일을 걱정했다. 남편은 작년에 일주일정도 부모님과 함께 지냈는데,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 때문에 말이 통하질 않아서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는 어머님이 계셔서 그런대로 지냈는데, 아버님과 단둘이 있는 건 더 힘들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내려간 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은 벌써 많이 지친 것 같았다. 그날도 나가시지 않겠다는 아버님을 설득해서 저녁식사를 하러 읍내에 나갔다가 결국에는 고집을 피우셔서 저녁을 못먹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어디를 모시고 가도 계속 빨리 집에 가시려고만 한다고 했다. 집안을 정리하는 일이나 아버님의 재정상태에 대한 문제도 당신의 고집대로만 하시려고 한다며 답답해 했다.


아버님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만큼 선하디 선하신 분이다. 가족들에게 큰소리치시는 걸 한번도 보인 적이 없는 아버님이지만, 날이 갈수록 고집은 점점 더 심해지신다. 특히나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걸 극도로 꺼려하신다. 어머님을 위해서 신청했던 요양보호서비스를 완강히 거부하시더니 이제는 독거노인을 위해서 제공되는 반찬봉사도 받기를 거부하신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이나 반찬봉사를 받는 것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건지, 아니면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하시는 건지,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고 막무가내로 싫다고만 하시니 답답할 따름이다.


아버님이 갑자기 수술을 하시게 되어 남편은 예정과 다르게 일주일이상을 시댁에 더 머물게 될 거 같다. 지낼만 하냐는 내 물음에 남편은 그냥 버티는 거라고 대답했다.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갈테니까" 라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남편이 아버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동안 아버지와 아들이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서로를 더 이해하고 부자간에 애틋한 정이 쌓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휴먼스토리는 인간극장에서나 나오는 얘기였나보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지내시는 아버님은 항상 내 마음의 짐이 되고있다. 시골집에 아버님을 혼자 계시게 하는게 죄책감이 든다. 하루에도 몇번씩 아버님을 모시고 오자고 할까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자신이 없다. 막내며느리인 내가 굳이...하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누르고 있다. 그래서 남편이 아버님께 더 신경을 써드렸으면 하고 바라다가도, 혹시나 남편이 우리집으로 모시고 오겠다고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남편이 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진짜 못됐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예쁜 것보다 빨리 컸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제와서는 그 소중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금방 지나가버려서 아쉽고 후회스럽지만, 그때는 그저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을 바라보는 지금의 마음이 그때와 비슷한 것 같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보내드리고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또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거라는 걸 잘알면서도.


지금의 부모님 모습을 잘 기억해두어야겠다. 머지않은 미래의 내 모습일테니까. 더불어 자식으로서 느끼는 지금의 내 마음도 잊지 않아야겠다. 나의 늙음이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겠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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