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도예가의 작업일지

Daily Project #1

by 서정희

10년도 훨신 넘은 그 시절에 학교 졸업 전시를 해야했다.

우리학교 특성상 공예과는 4가지 전공(금속, 도자, 목칠, 섬유)을 모두 배운 뒤, 2가지 전공을 선택해서 졸업해야 했다. 원래 하고 싶었던 금속과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이 계시던 도자를 선택했다. 금속, 도자는 빡센 조합으로 유명했지만 나는 상관 없었다. 어차피 내가 관심없는 교양 수업은 잘 듣지 않았으니 말이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시험기간에도 금속 실기실에 붙어 있어서 금속 교수님께서는 내가 성적 좋은 모범생인줄 아셨다고 한다. 그정도로 학교 생활에 불성실 했고, 타향 살이에 적응을 못해 몇 년 동안 정신을 못차렸다. 학교보다 학교 밖에서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았고 한 거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계절학기는 물론이고 남들 인턴나가고 포트폴리오 준비할 때 나는 21학점 가득채워 들어야했다.


금속 작업을 워낙 좋아해서 금속 작품은 크게 걱정 되지 않았었다. 컨셉만 정해지면 작업하는 건 나름 자신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도자가 문제인데... 우야든동 졸업은 해야 했다. 금속에 비해 도자는 잘하는 것도 없고 과제도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제출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머리를 짜내도 컨셉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4년의 학교 생활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환경과 좋은 기회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이 한심했다. 기술적인 것을 모두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형태감은 없지만 흙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큰 작업은 못하지만 작은 것들을 많이 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 번뜩 'Daily Project'를 생각하게 되었다.


Daily Project/ceramic/가변설치/2011년


Daily Projec는 아주 단순하고 강력했다. 말 그대로 하루에 하나씩 무조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컨셉 발표를 하면서 세가지 키워드를 정했었는데,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중 하나는 '근성'이었다. 그동안은 하고 싶은게 없어서 그랬지만 원하는게 생기면 누구보다 꾸준히 할 자신이 있었다. 본가에 내려 갈때도 아이스 박스에 흙을 챙겨 내려갔고, 충북 음성에 장작 가마 떼러 갔을 때도 작가님께 흙을 얻어 작업했다. 하루하루 사진을 찍고 그날의 기분이나 작업 과정을 함께 기록했다. 어떻게보면 흙 작업과 글을 함께 전시했던 첫번째 작품이었을지 모른다.


Daily Project/ceramic/가변설치/2011년


공방을 시작하고 사정이 어려워져(원래 부터 그랬지만) 돈을 벌기 위해 최근 2~3년 동안 작업을 쉬고 지원 사업이나 강의에 집중했다. 작년에 햇빛이 잘 드는 1층 공방으로 이사 한 뒤, 다시 흙을 만지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던 1층 공방이었는데, 기쁨보다는 그동안의 공백이 두려움과 조급함으로 다가왔고, 그 마음이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번져갔다. 내가 아는 작가 중 가장 멋있는 작가이자 동료라고 생각했던 남편에게 질투심마저 느꼈다. 꽤 긴 시간동안 울고불고 잠 못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본가에 내려가 주접을 떨고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새벽에 잠이 깼던 엄마와 따뜻한 라떼 한잔을 마셨다. 해가 뜰 때까지 얘기는 계속되었고 따뜻하고 다정한 말들에 흠뻑 젖어 그때서야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엄마와의 긴 대화가 무색할 정도로 아빠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정해!'


맞다. 내 상황을 인정해야 했고, 그에 맞춰 내가 할 것들을 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생각해봤다. 꼭 하고 싶었던 공모전 준비를 시작으로 언제 할지 모르는 막연한 개인전을 계획했다. 내가 가장 즐겁게 했던 작업이 뭘까? 고민해보니 바로 학부 때 했던 'Daily Project'였다. 그때처럼 하루 하나씩의 작업은 못하겠지만 꾸준히 작업하고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Daily Project #1

2023년 5월 2일 화요일


Daily Projcet 첫날! 항상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인데 이번 만큼은 무계획적으로 아주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심취해있던 파란색 정사각형 도판을 가장 처음으로 하고 싶었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으로 망망대해에 둥둥 떠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내가 떠다니고 있는 그 바다.

사실, 전날 집에서 혼자 폭식과 폭음을 하고 울면서 잠들었다.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때문이었다. 다들 그런 시기 한번쯤은 있지않나? 어쩌면 힘든 이시기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이소라님의 노래를 찾아듣고 이렇게 글도 써보고...

부디 Daily Project가 계속되어 많은 이들과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