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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May 10. 2023

올라, 민아

-바르셀로나의 1800년대 지어진 집수리 이야기 #1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오늘도 여러 번 이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쳐들어왔다.

생각해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저질러진 일인 것을...


오늘은 또 다른 전기 기사가 방문한 날이다. 

정원 한구탱이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계량기 박스를 보자마자, 그는 '만나서 반가웠어. 그만 가볼게' 하고 대문을 나서는 시늉을 했다.

그 길로 나갔어야 하는 것을,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이 수십, 수백 가닥의 낡은 전선들이 땅에 묻혔다 땅 밖으로 솟았다 벽 속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뚫었다, 알 수 없는 관으로 들어갔다, 계단 위로 매달렸다 또 이내 사라져 버리는 '나 잡아봐라' 같은 게임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가 터지겠다며 '마드레미아 뿌따'를 연발하더니 이내 오기가 발동했는지, 그 오만가지 가닥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를 쫓아다니며 각 층을 뺑뺑  돌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모든 층에 미로처럼 연결된 전기선을 훑고 나와서도 이 미스터리는 계속되었다. 전기가 전혀 연결되지 않은 지층의 현관등에 떡하니 불이 켜졌다. 우리는 거기에 전기가 왜 들어오는지, 친절하고 미미하게 아직도 전기를 실어다 주는 그 전선은 백 년이 된 것인지 이백 년이 된 것인지, 어디서 타고 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전원 차단기를 모두 내렸는데도 지하수를 퍼 올리는 모터는 웽웽 돌아갔다. 심지어 전원을 내릴 수 조차 없는 계량기도 있었다. 

한숨을 넘어, 불면의 밤을 넘머, 이제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이 집의 설립연도는 1900년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집주인이 말했다. 이 집은 180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고, 190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등기를 시작하면서 1800년대에 지어진 집들은  실제의 건축 연도를 알 길이 없어서 일제히, 일관되게 1900년도 설립이라 기재하게 된 것이라고...

그때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은근 더 오래된 집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백 년이 훌쩍 넘은 집이라니.... 그동안의 변화무쌍한 세상을 무심히 지켜본 집이라니.... 그렇게 그 자리에서 계속 우둑커니 서있던 집이라니...


어제는 수도관과의 싸움이었다. 이틀 전부터 잘 돌아가던 세탁기에 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탁기가 없던 시절의 빨래터가 그대로 보존된 정원층 뒤편에 예쁘게 그려진 빨래방  팻말이 있는 바로 그곳에 세탁기를 놓기로 했다. 기분이 나면, 그 빨래터에 두 다리를 걷어붙이고 이불도 벅벅 밟아볼 심산이었다. 그렇게 시원하게 놀이 삼아 빨아진 이불을 탁탁 털어서 정원 뒤편에 야심 차게 널어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물이 없다. 서진이는 빨래를 이고 지고 빨래방으로 달려갔다. 입고 갈 교복은 빨아야 하지 않겠냐며.


빠뜻하게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오래된 집이라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에 지연과 예산 초과는 당연히 예상했지만, 하루, 하루, 뒷목은 빠른 속도로 뭉쳐온다.


집에 대한 나의 사랑, 특히, 오래된 집에 대한 나의 환상, 그 오래된 집이 가져다주는 아무도 지금으로서는 따라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밝혀내리라. 지켜내리라. 하던 나의 야심은 오간데 없다.

나도 예쁜 집안 가구와 전등과 부엌디자인을 하고 싶은데, 하루는 전깃줄 찾으며 사그라들고, 또 다른 하루는 수도관을 쫓아 삼만리를 떠돈다. 업자들은 지네 나라 말로 지네들의 용어로 떠들고, 나는 대충 내 할 말만 하고는 눈을 껌뻑거린다. 내 예상과 다른 결과 앞에서 난감한 것은 그들도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말을 했고, 나는 못 들었다. 치매가 일찍 와서도 아니고, 귀가 안 좋아진 것도 아닌데, 나는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들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일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진이가 먹고 싶다는 볼로네즈 파스타를 했다. 전주인이 쓰다 버리고 간 가스레인지에 테라스에서 뒹굴던 부탄가스를 연결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쓰고 나서 구매한 오래된 책상 위에 부엌 일부를  뜯다 건진 대리석 판을 올려서 아일랜드 식탁으로 쓴다. 책상이 아일랜드 식탁구실을 하기엔 턱없이 낮으련만, 키가 작은 나로서는 불편함이 없다. 


창 밖에 노을이 진다. 아.... 노을은 아름답다. 저 산의 폭 파인 부분으로 언제나 정확하게 해가 폭 파묻히면서 하루가 사라진다. 그렇게 매일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은행 잔고이다.  하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이 그렇게 매일 소생되는 것들도 있다. 예상치 않았던 난관(돈 들어갈 곳)들이다.  지금은 이 두 가지가 같은 속도로 사라지고 생성되는 그 혼돈의 태풍의 눈에서 버둥되고 있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 1800년대에는 대리석으로 싱크볼을 만들었더니만. 앙증맞은 구멍으로 그래도 물은 졸졸 잘 나간다.  그게 어디냐. 감지덕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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