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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20. 2024

인간관계는 버스다

삶은 결국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어느 집단에 소속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갓난아기 때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고 유아기 때는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경험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2년간 초, 중, 고등교육을 받으면서도 매년 친구들, 선생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학과, 학생회 동아리 등 소속집단은 늘어간다. 직장에 가면 회사 내 부서, 팀에 소속되어 근무하고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나면 그 부서, 팀의 구성원으로서 적응하여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다만, 학생 시절 때는 학교, 학과 등 입학 때 정해지는 큼지막한 집단을 제외하면 친분에 의한 관계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자신이 원하는 집단을 선택하여 어울릴 수 있었다면 직장에 들어가고부터는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는 극히 제한된다. 인사 발령은 인사권자와 회사의 결정에 의해 내려지고 이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변동되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나와 잘 맞는 좋은 상사,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반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후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꾸린다. 이는 어찌 보면 살아가면서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로 소속될 집단을 만들고 가꿔나간다는 점 다른 집단과 차이가 있으며 그 의미 또한 깊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어 함께 부대끼고 울고 웃으며, 슬퍼하기도 행복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관계를 버스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어떤 집단의 버스를 타게 된다.


버스 안에는 이미 타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나와 같이 탄 사람도 있을 거고, 나보다 늦게 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버스가 달리는 동안 그 집단의 사람들과 좋든 싫은 함께하게 되고 자연스레 소속감도 얻게 된다.


버스가 급정거할 땐 같이 손잡이를 잡으며 의지하고 힘들 땐 서로의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버스는 정류장마다 선다. 그때마다 내리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타기도 한다.


즉, 나와 같이 내리는 사람이 있고 함께 내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같이 내렸으면 하는 욕심'으로 목적지가 다른 사람을 억지로 내 정류장에 내리게 한다면 어떨까? 아니면 반대로 같이 내리고 싶은 욕심에 내가 내릴 정류장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내린다면?


그때 당시에는 함께했을지 모르나, 결국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찾아갈 것이다.


인간관계도 이와 같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에 사람이 없다고 해서 혹은 내가 내릴 때 누군가가 같이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자책하며 억지로 맞추거나 그 사람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집단에서 함께 오래갈 수도 있고 잠깐 스쳐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정류장을 내리게 될 것 같을 때 두렵고 막막한 마음에 분명 내 목적지가 아닌데 누군가를 따라 내리거나 같이 내리자며 상대를 잡아끌었던 과거가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잠깐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관계는 악화되거나 지지부진해졌고 결과적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패턴을 몇 번이나 반복한 결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목적지가 다르고 이를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려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쩌면 다시 자신의 정류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물론 이는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우리의 삶은 행복과 기쁨, 감사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좌절과 결핍, 실망과 마주해야 할 순간도 무수히 많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 한 명이 말했다.


"나도 알아. 근데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떡해"


그 친구의 말을 듣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든 사람은 성격과 성향이 다르고 누군가에게는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무지 행동하기 어려운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조금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멈춰 선 그 순간에 누군가와 꼭 함께 내리지 않으면 자신의 목적지에 다가설 힘을 잃어버린 것만 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혼자서 온전히 갈 수 없게 되었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에 대한 그 순간의 선택은 어쩌면 그 당사자의 몫이다.  






간혹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면서까지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미워할까 봐 하는 걱정에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사람들.


과거의 나도 그랬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썼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거나 꾸며내기도 했다. 얼마간은 이렇게 지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더구나 나는 가면을 쓰는 데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후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였고 때로는 미움받는 순간이 있더라도 나를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거나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기 않기로 했다.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타인의 입장과 감정도 배려해야 해야 하지만, 온전히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만 타인과의 관계 맺음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아 있을 사람은 남게 되어있다.


남들의 기준에 맞게 꾸미지 않아도 나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말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지키면서 스스로가 원하는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가장 현명하고 건강한 인간관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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