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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Jul 31. 2017

국내에서 코드커팅은 과연 쉽게 일어날까?

TV, 그 영향력과 시청습관의 익숙함




유료방송(SO, 케이블방송) 가격이 워낙 비싼 미국에서는 최근 '코드 커팅(Code cutting, 구독해지)' 또는 '코드 쉐이빙(Code Shaving, 저가 패키지로 전환)'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유료방송과 IPTV의 경쟁 덕분에, 케이블방송이나 IPTV나 할 것 없이, 우리나라에선 이미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중이다. 


사실 IPTV 이전에도 우리나라 유료방송 가격은 1995년 출범 당시부터 워낙 저렴했다. 당시엔 아날로그 케이블이어서 화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화질이 당연한 줄 알았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고, 설령 불만이 있었어도 대안이 없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당시 케이블TV는 아파트에서 단체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메산골이나 시골 오지에서는 쉽게 시청하기 어려웠는데도 서비스 개선 의지가 없었다. 요즘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당시엔 유료방송에 대적할 경쟁사가 없었던 상황이라 가능했다. 지상파는 난시청 지역이 많아 유료방송에 가입해서 보는 게 일반적이었고, 시청률을 놓고 지상파와 케이블이 경쟁한 것은 PP영역이지, SO영역이 아니었다.


경쟁자 없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케이블방송 시장은 2000년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 일명 '접시' 방송의 개국과 함께 경쟁체제로 들어선다. 당시 위성방송은 케이블 시장의 독점 체제 속에서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케이블방송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전인권도 달았다~”, "인순이도 달았다~" 등의 당시 스카이라이프 방송을 기억하는가? "접시만 달면 두메산골에서도 화질 좋게 볼 수 있다."는 내용은 초창기 스카이라이프가 경쟁사인 케이블방송을 겨냥하여 자사의 강점(난시청 해소, 좋은 화질)을 내세워 가입자를 늘려갔던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케이블방송 시장은 저렴한 가격 덕분에 여전히 우세했다. (스카이라이프가 1~3만원대의 가격이었는데, 2000년대 중반의 아날로그 케이블방송 가격은 3~5천원 선이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1천 가구의 가입자를 확보했던 케이블방송 사업자는, HD화면과 함께 고화질 바람이 부는 시대적 변화를 거스를 수 없었고, 2000년대 후반, 위성방송과 비슷한 '디지털 케이블방송' 서비스를 시작한다. 당시 아날로그 케이블 서비스가 5천원 내외였던 것에 비해, 디지털 케이블 방송 서비스의 가격은 1만원대로 책정되었다. 여전히 위성방송보다는 저렴한 가격전략이었지만, 여하튼 출범 이후 10년 넘게 몇 천원 단위의 저가정책을 쓰던 케이블 방송은 디지털 케이블 서비스와 함께 가격 정책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변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IPTV가 등장했다. 2007년 말에 시작된 IPTV는 위성방송의 파급력보다 훨씬 강했다. 위성방송은 화질과 시청지역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케이블 가입자를 뻇어오지 못했지만, IPTV는 화질의 우수성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통신을 묶는 번들 패키지 전략과 무료 VOD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략을 앞세워 케이블 시장을 본격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IPTV의 최대 강점인 VOD 콘텐츠가 초창기에는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번들링 정책은 지금까지 '가격'이 최대 장점이었던 케이블방송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그 결과 후발주자였음에도 IPTV는 케이블방송과 대등한 시장 점유율을 펼치고 있고, 덕분에 현재 국내시장에서는 유료방송이고 IPTV고 할 것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다채널, 고품질의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케이블방송 가입자 수가 줄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그 중 최근의 어떤 기사는 '코드 쉐이빙'에서 '코드 커팅'으로 가고 있는 미국의 케이블 시장과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유료방송 시장을 걱정하고 있다.  (기사 : "자를까 줄일까, 케이블TV 가입자의 선택은?" http://www.incab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99)


기사를 쓴 기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유료방송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더 이상 코드 쉐이빙은 할 수 없고, '코드 커팅'이 바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그런데 유료방송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의 부재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자 한 기자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미국이 이러니 우리도 이럴 것이다"라고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언제부턴가 케이블 채널에 볼 게 없어진데다 (설령 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보기 힘들고), 인터넷으로 다시보기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은 코드커팅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요인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또 다른 요인인 '시청습관'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청습관'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생명력이 길어서, 코드커팅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역사상 TV라는 매체만큼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전달한 미디어는 없었다. 고대 연극을 상연했던 극장이나 중세의 파피루스를 비롯한 책, 르네상스 시절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신문과 잡지,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음성미디어인 전화(텔레커뮤니케이션)와 라디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인터넷과 2000년대 중반의 모바일 등 미디어 환경이 계속 발전하고 있음은 모두가 체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영향력과 파워 면에서 ‘TV’의 그것을 단번에 따라잡을 수 있는 매체는 아직 없다. 모바일 기반의 미디어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존해있을 시대에는 모바일 매체가 TV와 공생할 수는 있을지언정 TV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 인력, 그동안 쌓은 기획력과 제작 노하우, 유통 네트워크, 그리고 다수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부분에서 TV의 영향력은 아직 건재하다. 시청자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리모콘부터 잡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이들은 나름 ‘미디어 신세대’로, 전체 대중으로 확대해서 해석하는 건 맞지 않다.) 


리모콘을 켜서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훨씬 편리하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도 기능적으로는 편리하다. 그러나 TV의 편리함은 스마트기기의 그것과는 다르다. 채널번호만 재핑하는 것 외에는 굳이 무얼 찾거나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다시보기는 기본적으로 검색과 결제 행위가 전제된데다,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영상을 보는 와중에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안고 가기 쉽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들어와서 또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지치는 일일 수 있다. 연령층이 높아질 수록 TV 이용률이 높아지는 것이 단순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만일까? 현재의 40대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는 아니어도,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으로서 빠르게 디지털 미디어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과거 아날로그 매체의 사용경험도 보유하고 있는, 매우 강력한 미디어 소비층이다. 50대는 어떤가. 그들 역시 인터넷 보급이 대중화되던 2000년대 초반에는 30대후반에서 40대를 살아온 데다, 전 세대를 통틀어 최강의 경제력을 보유했고, 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지나며 축적한 시민의식이 강한 세대다.


이들이 단지 현재 40대~50대라서, 즉 ‘나이가 많아서’ TV를 시청하는 것만은 아닐 거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면서 삶의 피로도도 함께 증가했고, 그 반대급부로 미디어 소비 측면에서 TV로 다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10대, 20대층에서 모바일 이용이 높은 이유도 일부는 설명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연령’이 주 요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 이주민/디지털 원주민이라는, 미디어 선호의 구분이 ‘연령’만을 원인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니 오해없기를.)



따라서 우리나라 유료방송 가격이 이미 저렴하니 남은 건 ‘코드 커팅’밖에 없다는 논리로 가는 것은 비약이다. '연령에 근거하여 TV냐 스마트기기냐'라는 이분법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매체 선택 기준이 복잡하고 작용하고, 생각보다 우리의 ‘시청습관’은 질기고 강력하기 때문이며, 또한 코드커팅의 대안으로 OTT를 찾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이미 IPTV와 유료방송이 10년간 경쟁 또는 대안의 관계를 형성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OTT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랄까?


그럼에도 무료화 전략을 내세우며 국내 OTT 사업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건 어찌되었든 ‘옥자’로 인한 넷플릭스 효과일 거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증가했고, 그에 따라  OTT 시장도 조금은 더 열렸고(cf. 기사 - 넷플릭스 선전에 국내 OTT 시장도 `들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9&aid=0002414075), 외국 사업자가 영향력을 키우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존재한다. 


덕분에 한국의 유료방송 사업자 또한 IPTV외에 (기존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OTT사업자까지 신경써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됐다. 게다가 광고 수익 감소로 지상파 채널도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 뛰어드는 중이다. 그러니 ‘콘텐츠 확보’가 중요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한 마디로 모두가 뒤엉켜 씨름하고 있는 ‘미디어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그에 따른 '콘텐츠 춘추전국시대'를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다. 지상파, 유료방송, 모바일 제작사, MCN,  OTT 등 다양한 콘텐츠 또는 미디어 사업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체 콘텐츠 확보’를 주장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동의가 되는 부분이다. 특히 맨 처음 링크한 기사처럼 유료방송 활성화 정책을 주장하는 부분도 납득할 만한 부분이 있다. 


사실 유료방송은 지상파 사업자와 함께 '레거시'라고 표현되는 전통 미디어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발전한다 해서, 유료방송 시장을 현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케이블방송이 어떤 면에서는 MCN의 특성을 가장 잘 녹여내는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모바일 매체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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