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시작

잊힌 땅에 숨을 불어넣는 순간

by 이재훈

제주 중산간, 해발 300미터.
제주대학교를 지나 월평교를 건너면
‘다랏콧’이라 불리는 자연마을,

월평(月坪) 동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오래전 약천사 스님이 머물며
수련하던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고요의 정원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른셋의 여름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던 일들과,

오래 품었던 사랑의 이별이 남긴 계절.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무렵,
세상은 ‘코로나’라 불린 재앙의 그늘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하던 그 시절,
마음속에는 ‘다시 꽃을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만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사람을 지키며
스스로의 힘으로 큰 사업을 일군
김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둘은 과거의 실패와 미래의 꿈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는 도시의 규모가 작고
화훼 단지나 전문 시장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새로운 가능성이라 믿었다.


“이 땅에서 꽃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


그 마음이 회장님의 꿈과 맞닿았고,
제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보기로 했다.


월평동의 부지를 처음 찾았을 때,

그곳은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이었다.


겨울이면 먹을 것을 찾아 노루 가족이 제 집처럼 뛰놀고,
장마철이면 질어진 땅이 발을 삼켜버리는,
1만 7천 평의 생채기 같은 대지였다.


긴 세월 보듬어주지 못한 나무들은
양반댁 아씨처럼 덩굴을 둘러 얼굴을 감춘 채 서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은
야생 짐승과도 같다.


제 길을 찾아주려면
먼저 덮인 떼를 벗겨내야 했다.


수천 그루의 나무에서 덩굴을 걷어내는 일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대서(大暑)가 한참 남은 여름.
아무리 식물을 사랑한다 해도

그 더위 속 노동은 쉽지 않았다.


이른 새벽 여섯 시,
태양의 자외선이 닿지 않도록 몸을 숨기고서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오랫동안 덩굴들과 한집살이를 한 나무들은
온전히 곧지 못했고, 잎도 푸르지 않았다.


그래서 덩굴을 제거할 때는
가지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떼어내야 했다.


질긴 칡 같은 덩굴들은
어찌나 나무를 못살게 구는지,
그 심보에 맞게 질겨서
전정가위로는 쉽게 잘리지도 않았다.


낫 하나 들고 아랫부분부터 잘라내고,

끊긴 마디에는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발라주었다.



한 사람이 낫으로 베어나가면,
다른 한 사람은 뒤를 따라가며
상처마다 붓으로 농약을 바른다.


뿌리째 뽑기에는,
땅속 깊이 팔뚝만 한 뿌리들이

끝도 없이 얽혀 있었다.


오늘 몫의 덩굴을 베어내고 나면,
올라탄 방향 반대로 힘껏 당겨준다.


그러면 웬만한 건
시원하게 벗겨져 내려온다.


하지만 줄기에 지독하게 감겨 있는 덩굴은
세심하게, 한 가닥씩 꼬인 부분을 풀어내야 한다.


너무 높으면 사다리를 타고,
그보다 높으면 굴삭기의 바가지에 올라
덩굴을 빼내기도 했다.


덩굴의 힘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이 감았던 자리에는
덩굴의 흔적이 모양 그대로 선명히 남았다.


어쩌면 깊은 생채기를 품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내는 나무들을 보면,
가장의 마음이 떠오른다.


그래서 고요는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