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여행] (106)
풍도에서만 자생하는 '풍도바람꽃'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바삭거리는 낙엽 이불을 밀치고 올라오는 정령들이 있다. 봄 야생화다. 이른 봄 복수초, 산자고, 양지꽃, 노루귀 등은 남해안의 섬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통상 섬의 야생화들은 소규모로 군락을 이뤄 피지만 여러 종의 야생화가 군락지를 이루며 피는 섬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서해 외딴섬 풍도에는 3~4월이면 복수초, 노루귀,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등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활짝 피어난다. 섬 이곳저곳에 노랗고 하얗고 연분홍빛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피워 풍도는 '섬 야생화 천국'으로 불린다. 2월 말부터 봄의 속살을 보려고 안달이 난 전국의 포토그래퍼들이 이 녀석들을 알현하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메고 풍도로 몰려든다.
특히 ‘풍도바람꽃’은 홍도의 ‘홍도원추리’와 위도의 ‘위도상사화’처럼 지구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꽃들이다. 참고로, 홍도원추리는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홍도원추리는 다른 원추리에 비해 꽃이 유난히 크고 아름다우며 질감이 곱다.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위도에서는 위도상사화가 장관을 이룬다. 통상적인 연분홍 상사화와는 달리 위도상사화는 맑은 흰색이다. 위도 야산은 물론 논밭에서도 자생하는데 지금도 꽃대를 꺾어 말렸다가 겨울에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안산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인천에 가까운 풍도(豊島)
풍도는 경기도 안산시 속한 섬으로, 대부도에서 24㎞가량 떨어져 있다. 1.843㎢의 면적에 2024년 3월 현재 105명(57가구)이 거주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옹진군 승봉도와 대이작도가, 남쪽으로는 대난지도, 동쪽으로는 육도 열도 등이 울타리가 되어준다. 섬에는 예로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단풍나무 '풍(楓)' 자를 써서 풍도(楓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풍요로울 '풍(豊)‘ 자를 써 풍도(豊島)로 불리고 있다.
풍도는 수심이 깊은 바다에 위치해 섬 주변에 갯벌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섬의 최고봉 후망산(177m)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산비탈에 밭을 일궈 콩, 고구마, 채소 등을 소량으로 생산해 삶을 영위했다. 겨울이면 굴과 바지락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도리도로 이주해 몇 달간 생활했다고 한다. 이때는 학교·교회는 물론 가축까지도 함께 옮겨갔다가 이듬해 설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독특한 생활방식을 영위했다는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안산시에 속하지만, 풍도 주민들은 오랜 세월 인천을 연고로 생활해 왔다. 자녀들은 대부분 인천에서 학교를 나와 인천에 정착해 산다.
그래서 현재 인천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를 거쳐 풍도까지, 1일 1회 정기 운항하고 있다. 7월 여름휴가철부터 가을까지 3개월 동안(매주 금·토·일요일, 공휴일)에는 1일 2회 여객선이 증편 운항하기도 한다. 여객선 운항이 이래서 봄철 당일로 풍도를 다녀올 수 없다. 더욱이 서해는 이즈음 꽃샘추위로 결항이 잦아 풍도 야생화 개화 시기에 맞춰 풍도를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틈새를 해결해 주는 교통수단이 바로 삼길포 유람선이다. 풍도는 거리상으로 서산의 삼길포항에서 가까워 봄 야생화 탐방객들을 위해 주말이면 특별 유람선이 뜬다. 소요 시간은 50분으로, 아침 9시 10분쯤 출항했다가 3시쯤에 귀항한다.
청일전쟁의 시발점 풍도해전, 그 아픈 역사의 현장
풍도선착장에 도착해 풍도를 바라본 느낌은 아담하고, 한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섬 앞바다에서는 130여년 전, 근대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든 해전이 발발했다. 1894년 7월, 일본이 청나라에 선전포고하고 대륙 침략의 첫 총성을 울린 곳이 바로 이곳 바다였다. 청일전쟁의 시발점인 풍도해전은 조선의 멸망을 재촉하기도 했다.
일본군의 기습포격으로 청나라 함선이 침몰해 수많은 병사가 수장 됐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곧이어 조선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었다. 풍도해전 당시 청나라 군사들의 시신이 떠밀려왔다는 풍도 북쪽 청옆골 해변은 비할 데 없이 한적하다. 몽돌해변 위에는 어촌체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가파른 경사도를 따라 크고 작은 몽돌들이 파도에 쓸려 짜르르~, 짜르르~ 소리를 낸다.
풍도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데, 하늘과 맞닿은 하늘길인 동무재, 야생화 천국 풍도의 비밀정원, 수령 500년이 넘은 암수 은행나무 두 그루 등이다. 또한 섬 서쪽에 북배(붉배)라고 하는 붉은 바위가 있는데 배후에는 캠핑 텐트 대여섯 동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발치 아래 시원하게 수평선이 펼쳐지는 북배에서는 선갑도 너머로 저물어가는 석양이 일품이라고 한다. 또 북배 남서쪽으로는 ’북배딴목‘이라 부르는 돌 섬 위에 등대가 있다. 썰물 때면 풍도 본섬과 하나가 되어 또 다른 볼거리를 자아낸다.
풍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등공신, ‘풍도 야생화’
풍도 야생화 군락지는 주로 후망산 아랫자락에 있지만, 둘레길을 끼고 해안을 걸어도 곳에서 얼굴을 내민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다. 섬이 커 보여도 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풍도바람꽃은 풍도의 그늘지고 습기가 많은 활엽수림 밑에서만 자란다. 개화 시기는 3~4월인데 얼핏 변산바람꽃과 비슷해 보이지만 꽃잎이 더 크다. 풍도바람꽃의 꽃말은 '기다림', '덧없는 사랑', ’사랑의 괴로움‘, '비밀스러운 사랑'이다.
또 풍도에서만 자생한다는 ’풍도대극‘도 탐방객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대극목 대극과에 속하는 풍도대극은 여러해살이풀로 3~5월에 개화한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긴 타원형이며, 털이 있거나 없고 가장자리는 밋밋한 편이다. 새순은 붉은색 또는 녹색으로 돋는데 꽃이 필 때는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녹색으로 핀다. 풍도대극의 꽃말은 '기다림'과 '덧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또한, 풍도에서는 복수초, 노루귀, 현호색 등 야생화 외에도 이맘때쯤에는 전호나물이 나온다. 울릉도가 원산지로 알려진 전호나물은 서해 북단 소청도에도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다. 이작도 등 다른 지역에서는 ’사스랭이 나물‘이라고 부른다는데 풍도에서는 ‘사생이 나물’로 불린다.
전호나물은 미나리과 식물로 모양은 당근과 비슷하다. 비타민C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를 맑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약한 미나리향이 나며 생으로 무쳐먹거나 데쳐서 양념과 함께 무쳐 먹는다. 특히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가장 잘 어울린다. (김용구 박사의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소청도 봄나물 '전호나물과 달래' 中)
행정안전부는 섬 곳곳의 명소를 둘러보며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섬을 대상으로 해마다 찾아가고 싶은 섬을 선정한다. 풍도는 ‘2021년 찾아가고 싶은 33섬’ 中 ‘걷기 좋은 섬’ 1위에 선정되었다. 풍도 해안을 끼고도는 둘레길을 돌고 난 후, 후망산 정상 아래 야생화 비밀정원과 5백년 은행나무 등을 탐방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봄 트레킹이 될 것 같다. 1박 2일의 여정이라면 여유로울 것 같다.
1. 주 소
o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2. 가는 방법
o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풍도
- 인천항→풍도 : 09:30
- 풍도→인천항 : 12:00(짝수), 12:30(홀수)
예약 : 여객선 예약 예매 '가고 싶은 섬' 홈페이지
☎ 문의 : 서해누리호(대부해운) 032-887-6669
o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풍도
- 대부도→풍도 : 10:30
- 풍도→대부도 : 12:00(짝수), 12:30(홀수)
☎ 문의 : 서해누리호(대부해운) 032-887-6669
o 서산 삼길포↔풍도 (특별 유람선)
- 삼길포→풍도 : 09:10
- 풍도→삼길포 : 14:10
☎ 문의 : 삼길포 유람선 010-3273-6871
3. 트레킹 코스
o 제1코스(해안 일주) : 풍도항 → 등대 → 채석장 → 북배 → 마이배뿌리 → 발전소
→ 풍도항 (5.2km, 2시간, 난이도 하)
o 제2코스(해안·야생화) : 풍도항 → 등대 → 채석장 → 북배 → 후망산 → 야생화군락지 → 은행나무
→ 풍도항 (5.6km, 3시간, 난이도 하)
4. 민박 및 식사
o 풍도맛집민박 : 010-6341-4139
o 풍도바위펜션 : 010-9092-3997
o 풍도민박 : 032-831-0596
o 풍도랜드 : 032-831-0596
* 식사 가능 여부, 민박집에 사전 확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