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가지를 개펄에 꽂아...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장
한국 김이 지난해 국내 수산식품 분야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견인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 수출액은 1조6195억 원으로 수산식품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조미김과 스낵, 간편식 등 다양한 형태로 제품군이 확대되면서 K-김은 미국·일본·중국은 물론 유럽과 중동 등 신흥 시장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K-김 신화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겨울 댓바람이 잠시 주춤한 지난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태인도(太仁島)를 찾았다.
# 섬진강 하구 기수지역에 있는 문어를 닮은 섬
태인도는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건너편에 자리 잡은 섬이다. 기수지역에 위치한 덕분에 예로부터 김은 물론 우럭, 백합, 맛조개, 개불, 바지락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름났다. 태인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섬의 형상이 마치 문어가 여러 갈래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섬의 주봉인 삼봉산(해발 222m) 아래로 문어 발처럼 길게 뻗은 산줄기 사이에 용지·담안·궁기·도산 등 네 개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이곳에는 800여 가구가 살 정도로 섬이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태인도와 금오도 앞바다에는 과거 15개 안팎의 유·무인도가 흩어져 있었으나, 1981년 매립되며 약 500만 평 규모의 광양제철 부지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바다로 향하던 태인도의 산줄기 역시 매립토로 잘려 나갔다. 지금은 도산마을 앞 작은 포구만이 이곳이 한때 섬이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궁기마을에 위치한 광양 김 시식지 기념관에 들어서서야 태인도가 과거 김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곳에는 김 시식을 최초로 시도한 김여익(金汝瀷·1606~1660)과 그 후손을 기리는 사당을 비롯해, 근대 광양김의 채취와 양식, 건조 과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 최초의 김 시식자로 알려진 김여익은 누구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김’이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의(海衣)’로 기록돼 있다. 전남 지역에서는 영광·장흥·나주·영암·진도·강진·해남·순천·보성·고흥·광양 등 11개 고을에서 생산된 토산품으로 소개돼 있다.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에도 광양의 주요 물산으로 쌀·면화·철기·소금·해태를 꼽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해태가 가장 중요한 물산으로 기록돼 있다. 광양이 예로부터 김 산지로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여익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뒤인 1640년 태인도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마을 앞 유목(流木)에 해의가 착상한 것을 보고 밤나무 가지를 개펄에 꽂아 김을 최초로 양식했다.
인조가 태인도에서 올라온 진상품 김을 맛본 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바다 식물의 통칭인 해조(海藻)라고만 답했다. 이에 인조가 “김씨(金氏)가 발조한 것이니 성자의 음을 따 ‘김’이라 하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 양식은 사라졌지만 ‘김부각’은 남았다
김 시식이 처음 이뤄진 곳은 용지마을 앞바다, 이른바 ‘애기섬’ 일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자리에는 '김 시식지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용지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 태인도에서는 김 양식을 할 수 없지만, 완도나 진도에서 물김을 들여와 김부각을 만드는 집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산마을 일대에는 400년 역사의 김부각을 판매한다는 표지판을 내건 집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태인도와 인근 섬들이 오랫동안 김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태인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 김을 비롯해 전어, 숭어, 돔 등 풍부한 수산물로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일 대신 제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휴일임에도 공장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목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과연 이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옛 태인도와 그 앞바다가 그대로 보존됐다면 청정 바다와 갯벌이 주는 혜택이 더 크지 않았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광양제철에서 일하고 있다는 태인도 주민 A씨(61)는 “공장이 들어설 당시 일본에서 온 매립 기술자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메워 공장을 짓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더라”며 말끝을 흐렸다.
# 태인도 삼봉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남해바다
궁기마을 김 시식지 기념관을 나와 섬 최고봉인 삼봉산으로 향했다. 삼봉산은 도산마을 태인초등학교 옆 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해발 222m로 높지 않지만 산허리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잘 정비돼 있어 걷기 좋다. 도촌마을 태인초등학교 옆으로 출발해 정상까지는 왕복 2.5km 정도로 난이도가 쉬운 코스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동쪽으로는 남해군 망운산과 하동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수백 리를 흘러온 섬진강이 망덕포구와 배알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광양제철소 너머 해역 사이에 남해 설흘산과 여수 영취산, 제석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바다 아래에서는 현재 남해와 여수를 잇는 해저터널 공사가 진행 중으로, 2031년쯤이면 두 지역은 하나로 연결될 예정이다.
#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
이제 태인도를 뒤로하고 망덕포구로 향한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550리 물길을 굽이돌아 이곳에서 바다와 만난다. 망덕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망덕포구는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경계하여 지키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망뎅이’라 이름하였고, 이를 한자음을 빌려 ‘망덕’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다압, 구례, 곡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했다. 태인도에서 생산된 김도 이 포구를 거쳐 섬진강 내륙 하동장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북적이던 사람의 수런거림 대신 포구는 지나온 여정을 회상하는 듯 고요하다.
망덕포구 앞은 섬진강 물길이 풍성한 어장을 형성한 기수지역으로 가을 별미인 전어 산지로 현지에서 유명하다. 봄이면 섬진강 하구에서 자란 어른 손바닥만 한 벚굴의 집산지이기도 해서 즐비한 횟집에는 계절별로 많은 식객들이 찾아든다.
포구는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위치해 있어 사계절 꾸준히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의 어머니가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면서 윤동주의 유고를 잘 보존해 준 덕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망덕포구에서 태인도를 바라보며 새삼 깨닫는다. 강물도, 섬도, 포구도 어제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태인도에서 시작된 K-김의 역사는 지금도 바다와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맥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