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의 모래섬 풀등과 한반도 최고령 암석이 있는
모처럼 인천의 섬으로 향한다. 옹진군 북도면 삼 형제 섬인 신·시·모도를 지난해 8월에 다녀왔으니 꽤 오랜만의 출정이다. 목적지는 인천연안부두로부터 44km 떨어진 대이작도. 그런데 비와 강풍이 예보되어 마음은 아침 하늘처럼 잿빛이다.
이번 대이작도 트레킹 약속은 서울의 친구들과 두어 달 전에 잡아 놓았으나 일주일 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감지되었다. 예매해 놓은 승선권의 취소는 출항 하루 전까지 가능함으로 막판까지 지켜보기로 했지만 일기예보에 이변은 없었다. 승선권의 취소가 당연했으나 여수에서 천리 길을 달려올 친구를 홀로 보내기가 안쓰러웠는지 모두 함께 동행해 주었다.
#인천의 섬 중 유일한 해양생태계 보전지역 대이작도
인천연안부두를 출발한 차도선 대부고속페리는 부윰한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 무의도와 영흥도 바다 사이로 빠져나간다. 흐린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갈매기 떼가 호위무사로 나섰다.
여객선이 나아가면서 일으킨 흰 포말 위로 착지할 듯 낮게 비행하다가 단번에 3층 갑판 위까지 솟구쳐 여행객의 손 끝에 있는 새우깡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채어 간다. 어느새 갑판으로 나간 국악 명인인 친구도 새우깡 한 봉지로 갈매기들을 희롱하며 한바탕 놀다가 들어온다. 갈매기들의 아찔한 곡예, 그 너머로 육지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배는 중간에 자월도와 승봉도에 들러 사람과 차를 내려준 뒤 인천항 출발 2시간여 만에 대이작도에 도착한다. 이작도(伊作島)의 옛 이름은 이적도(伊賊島)였다 한다. 서남해의 여러 섬들처럼 고려 말 이작도도 왜구의 거점이었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왜구들이 이 섬을 점거하고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선을 약탈하던 근거지라 하여 이적(夷賊) 또는 이적(二賊)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작도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조선 태종 때 국영목장이 설치되면서 말을 관리하는 목부가 파견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섬으로 피난 오는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대이작도의 명물은 신비의 모래섬 ‘풀등’이다. 풀등은 조류라는 씨실과 시간이라는 날실이 빚어낸 자연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구로부터 퇴적된 모래가 바람과 파도, 조류에 밀려 수천 년을 두고 경기만 일대에 거대한 사주군(砂洲群)을 형성시켰다. 대이작도 풀등은 이러한 경기만 사주군의 일부로 간조 시에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썰물 때면 3 ~ 5시간 보였다가 밀물이 들면 사라지는 풀등을 풀치라고도 하는데 대이작도 풀등은 동서로 약 3.6㎞, 남북으로 약 1.2㎞에 이른다. 면적은 약 47만 평에 달할 정도로 드넓은 모래섬으로 끊임없이 움직임을 달리하는 바다의 바람과 유속에 따라 날마다 다른 모양과 넓이를 드러낸다.
대이작도는 이러한 풀등 외에도 부아산과 송이산 자락이 빚어낸 가늘고 고운 금빛 모래사장과 습지, 그리고 25억 년이나 된 한반도 최고령 바위지대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다. 또한 영화 ‘섬마을 선생’(1967년)의 촬영지여서 60대 이상에게는 막연히 한 번쯤 가보고 섬으로 자리 잡았다. 선착장 방조제 벽에 부착된 당시의 흑백 필름 한컷 한컷은 어릴 적 시골 장터 가설극장에서 한 번쯤 마주했을 것만 같은 장면이다.
#‘섬마을 선생’ 촬영지, 오형제바위, 하트모양 항구 등 수많은 스토리
제법 굵어진 빗방울을 맞으며 선착장에서 작은 모래 해변 위로 난 정겨운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10여 분 후 이작분교와 성당, 자월면 이작출장소가 있는 큰마을에 도착한다. 트레킹은 큰마을 좌측으로 난 해안 데크길을 따라 시작된다.
썰물이 깊게 빠져나간 갈색의 조간대 저만치에서 어부 한 사람이 해루질을 하고 있다. 우측 산자락에는 남산제비꽃이 검은색 상의 세일러복 위에 얹어진 하얀 칼라보다 더 하얀 모습으로 피어있다.
오형제바위는 그리 웅장하지는 않으나 바다를 향해 애처로이 솟아 있어 전설 하나쯤을 품기에는 족하다. 옛날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고기잡이를 나간 부모가 끝내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고 한다. 오형제바위에서 부아산(163m) 오르는 길은 마치 남한산성 서문에서 수어장대를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부아산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한다. 건너편 송이산(188m)과 함께 대이작도를 상징하는 산이다. 이곳 사람들은 부아산은 여자, 송이산을 남자로 간주한다.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부아산 정상 가는 길에는 톱니 모양의 암릉이 있어 조심히 받을 내딛는다.
순간, 일행 중 누군가가 “앗 저기~ 풀등이다!” 하고 짧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비 내리는 날씨에서도 부아산 남동쪽 바다 위로 풀등이 훤하게 드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서기를 느끼게 한다. 마침 물때가 맞아 행운이다.
맑은 날씨에는 부아산 정상에서 인천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은 물론 강화도와 연평도, 멀리 황해도 해주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지나온 자월도마저도 실루엣으로 보인다. 다행히 대이작도와 소이작도가 만들어 낸 하트모양의 항구는 볼 수 있어 위안으로 삼는다. 이작도는 옛날 중국으로 고려청자를 수출하는 교역 루트였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면 무역선들이 이 천혜의 항구로 피항했다 한다.
부아산 아래에는 해안 방어의 최전선의 역할을 한 5기의 봉수대가 있다. 평상시는 1기, 적선 출현 시는 2기, 적이 육지나 섬에 상륙 시는 5기 모두를 활용해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피웠다. 신호는 남양부(현재의 화성시)를 거쳐 한성의 목멱산(남산)으로 이어졌다. 섬 트레킹을 하면서 5기의 연이은 봉수와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봉수대 바로 아래는 빨간색 구름다리가 있다. 길이 68m, 높이 7m의 다리로 그리 웅장하지는 않지만 풀등과 멀리 태안반도가 조망이 된다. 이른 새벽, 부아산 신선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리를 건너 천상으로 향한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사진가들에게는 이름난 포토 포인트라고 한다.
#송이산 정상에서 야생 흑염소와 조우
송이산은 ‘천국의 문’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난 급경사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산등성이에서 흘러내린 너덜지대를 관통하면 장골부리에 이른다. 우측으로는 장골습지와 장골마을이 있고 직진하면 송이산이다.
송이산 정상에서는 승봉도와 사승봉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승봉도는 선착장에서 보는 이미지와 다르게 앞뒤로 넓은 섬이다. 남쪽 산사면 아래로는 큰풀안 해변과 작은풀안 해변, 동쪽으로는 계남마을로 향하는 능선과 도장불해변이 보인다.
당초 송이산 정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비에 바람까지 거세져 팔각정에서는 앉을 공간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팔각정을 받치는 다리 아래 남쪽 사면 귀퉁이에 간신히 자리 잡고 간단히 준비해 간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언뜻 무언가가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아뿔싸 두 마리의 야생 흑염소다. 꽈배기처럼 뒤틀려 힘이 넘치는 뿔과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긴 수염,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이 별다른 위협이 된다고 느끼지 않았는지 유유히 숲 속으로 사라진다.
하산길은 목장불 해변과 영화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가 있는 계남마을 방향이다. 그러나 막상 계남마을로 가는 삼거리까지 하산하니 오늘 일기 상으로 코스를 완주하기엔 무리이다 싶다. 해서 계남마을 대신 작은풀안 해변이 있는 선착장 방향으로 향한다.
풀등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풀안 해변은 고즈넉하고 예쁘기 그지없다. 물색도 서해 바다에서 흔히 마주할 수 없는 비취색인 데다 군데군데 모래 물결인 연흔이 보인다. 바닷속으로 한참을 걸어가도 물이 허리춤밖에 차오르지 않아 여름철 가족 피서에 제격인 해변이라고 한다.
#25억 년 한반도 최고령 암석 앞에 서다
좌측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가다 보니 웬 검은색 암석이 나온다. 안내판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라 적혀있다. 우리나라 기반암 대부분의 나이는 19억 년인데 이 바위는 지하에서 고온과 압력에 의해 생성된 혼성암으로 나이가 최소 25억 년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작도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라 부르는 이유란다.
정일근 시인의 시 '부석사 무령수'로 나를 위로한다. 우리가 저 바위처럼 무량수를 산다면 이 삶도 지겨울지 모른다.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처럼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것이리라.
데크는 팔각정자에서 끝나는데 풀등 가는 배가 이곳 아래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대이작도의 풀등을 보호하는 환경단체들은 풀등의 크기가 매년 작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인근 해상에서 수도권 신도시 건설에 필요한 바닷모래를 채취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천환경운동연합은 풀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갑도 해상에서 무분별한 바닷모래 채취로 풀등이 자꾸 패어나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앞으로 수도권의 마천루 경쟁은 더욱 치열할 터인데 그 많은 모레를 어디에서 조달할까. 언젠가는 어족자원의 중요한 터전인 풀등은 사라질지 모른다.
거센 비바람을 뒤로하고 큰마을 지나 선착장에서 오후 2시 30분 배에 탑승한다. 빗물은 신발 깊숙이 침투해 양말까지 적셨다. 오늘 가보지 못한 큰풀안 해변과 도장불 해변, 섬마을 선생 촬영지인 계남분교, 그리고 소이작도 트레킹 코스를 둘러보려면 앞으로 두어 번은 더 와야 할 것 같다. 오늘 함께한 친구들과 해당화 피고 질 무렵이면 더욱 좋겠다.
1. 위 치
o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리
2. 가는 방법 (한국섬뉴스>가고싶은섬>인천>대이작도 클릭) 한국섬뉴스 바로가기
o 대이작도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인천연안부두를 이용허가나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인천 연안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예약이 필수다.
1)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 (인천 중구 항동 연안부두로 70)
o 인천→이작도
-고려고속페리 : 소요시간 (1시간 35분)-선종(쾌속선)-요금 편도(21,000원)
- 대부해운 : 소요시간 (2시간 10분)-선종(차도선)-요금 편도(13,200원)
*예매 : 가보고 싶은 섬(홈페이지), 연안부두 선착장 주차비 : 10,000원
2)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황금로 1567-3(주차무료)
o 대부도→이작도
☎문의 032)886-9722(www.daebuhw.com)
*예매 : 가보고 싶은 섬(홈페이지), 방아머리 선착장 주차비 : 무료
3. 섬에서 즐기기 : 트레킹, 풀등 탐방
o 부아산 코스 : 3.5km(1시간 30분)
- 선착장~큰마을~오형제바위~부아산~구름다리~천국의문~삼신할미약수터~장골마을
o 섬마을 갯티길 코스 : 4km(1시간 30분)
- 장골마을 생태 체험관~작은풀안 해변~큰풀안 해변~띄넘어 해변~계남분교
o 송이산 갯티길 : 3.3km(1시간 20분)
- 송이산~장골부리~장골습지~말목장터~장골마을 장승공원
o 대이작도 전체 둘레길 : 11.2km(5~6시간)
- 선착장~오형제바위~부아산~장골마을~작은풀안 해변~큰풀안 해변~계남마을~송이산~장골마을
~선착장
4. 풀등 가는 방법
o 풀등 탐방은 대이작바다생태마을 운영위원회(☎010-9019-1224, 10.000원/1인)에서 주관한다.
풀등은 하루 두 번 모습을 드러내지만 탐방은 하절기/동절기, 일출/일몰을 고려해서 진행된다.
풀등에 가려면 대이작도 가기 전 미리 전화하여 탐방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 작은풀안 좌측 끝으로 난 해안데크길 끝의 정자(장대적곳) 아래쪽에서 8인승의 배가 출발한다.
- 참고로 풀등을 탐방하기 전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khoa.go.kr)에서 물때를 확인하면
탐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