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영혼이 늘 그리던, 수선화의 섬
“그 섬은 어떻게 생겼을까//거리로 따지면 지척인 그 섬/그 이름 처음 들은 지 아득한데/아직 가보지 못했네//어릴 적 작은어머니 한 분이/그 섬에서 시집 오셨는데/그 섬은 분명 저 앞바다 위에 있는데//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보면/착한 사람들만 살 것 같은데//여느 섬처럼/조수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치마의 아랫자락을 드러낼 터인데//언제나 가보나/기억 속 이내가 자욱한 미지의 그 섬”
몇 해 전 쓴 ‘그 섬’이라는 졸시다. 수선화의 섬 선도, 급기야 그 섬을 가게 됐다. 선도는 내 고향과 지척에 있는 섬이다. 그러나 배가 없으면 갈 수 없고 또 딱히 갈 일도 없어 여태껏 가보지 못했다.
신안군 지도읍에 속한 선도는 면적이 5.23㎢로 섬의 생김새가 매미 같다 하여 맵재, 선치도 또는 매미 선(蟬) 자를 써서 선도(蟬島)라 불렸다. 김이 특산물임을 말해주듯 연안 바다에는 겨울철 김 양식에 쓰이는 지주대가 대오를 맞춰 서 있다. 약 350여 년 전 밀양 박 씨가 매계마을에 터를 잡았고 그 후 제주 양 씨, 신안 주 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선도로 귀촌한 한 할머니가 지핀 수선화 불씨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섬 곳곳마다 수선화 꽃을 심어 많은 사람이 보고 향기를 느끼는 모습을 보게 돼 내 마음이 흐뭇하다.” - 현복순(91세) 수선화 할머니-
1980년경 서울 생활을 접고 선도로 귀촌한 현 할머니는 평범한 어촌마을인 선도를 수선화의 섬으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할머니 집 마당과 주위에 애지중지 키운 수선화는 어느새 꽃동산으로 변모했고, 주민들도 이를 따라 하나둘씩 심기 시작했다.
신안군은 가정마다 수선화를 재배하는 것에 착상하여 작은 섬 선도를 수선화의 섬으로 변모시켰다. 2019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10일 동안 진행된 ‘선도수선화축제’에는 1만2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섬이 1㎝ 정도 가라앉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2020년에는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되어 국내 최대 규모(약 3만7000여 평)의 수선화재배단지로 도약하고 있다.
수선화는 품종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달라 4월 말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수선화는 외상치료에 쓰이는 약재로도 이용되고 수분 저장력이 좋아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된다. 선도 수선화 재배단지는 단순히 관광객 유치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수익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수선화 알뿌리는 군에서 전량 수매하고 있다. 그래서 밭은 물론 도로 가장자리까지 수선화 재배가 확대되는 추세다.
4월의 선도는 수선화와 유채꽃으로 ‘노란 동화의 나라’
무안 운남면 신월항에서 10시 55분 도선(선치호)을 타고 10여 분 거리에 있는 선도로 향한다. 전날 내려졌던 강풍주의보는 해제되었지만 해상엔 여전히 바람이 거세다. 다소 뒤뚱거리기를 반복하는 7인승 도선이 선도선착장에 다다를 무렵, 샛노란 풍선 같은 색깔의 지붕들이 반긴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수선화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주말 선도의 수선화를 보러 온 상춘객들로 선착장은 북적거린다. 한 켠의 부스에서는 수선화 화분과 농산물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선도를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선창에서 주동마을 사이에 조성된 수선화재배단지 위주로 둘러보는 방법과 섬의 명산인 대덕산(143m)과 범덕산(145m)을 트레킹 한 후 자연스럽게 연계된 수선화재배단지를 들르는 것이다. 전자는 2시간이면 족하고 후자는 5~6시간이면 충분하다.
선도에는 편의점이나 식당이 없다. 선창 앞에 편의점을 겸하는 작은 점방이 있으나 살만한 물건들이 별로 없다. 따라서 선도에 들어가서 먹을 간편식을 미리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점방 주인 할머니에게 김밥이 있느냐 여쭈었더니 김밥은 없고 ‘감태전’은 된다고 한다. 오천 원을 지불하고 연한 푸른빛 도는 감태전을 배낭에 넣어 대덕산으로 향한다.
선창가에서 대덕산까지 어렵지 않은 트레킹 길
대덕산은 선창 좌측 창고 앞 도로를 따라서 약 10여 분 걸으면 우측으로 들머리가 나온다. 헛갈리지 않게 이정표를 잘 만들어 놓았다. 등산로 초입은 옛 공동묘지인 듯 무덤들이 많다. 오래된 봉분들은 자연스레 소나무들의 집이 되었다. 등산로 좌우로는 각시붓꽃이니 반디지치니 양지꽃 등 봄 야생화가 앙증맞게 피워 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조망터에 이르니 좌측 발치로 매계마을의 노란 지붕과 유채밭이 4월의 봄을 대변한다. 그 너머로는 잿빛으로 질펀한 신안의 갯벌과 근래 들어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병풍·대기점·소기점·소악도가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연이어 자리 잡았다. 매화도 너머로는 아스라이 천사대교도 보인다.
선착장에서 대덕산까지는 약 2km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어렵지 않은 가벼운 트레킹 코스다. 대덕산은 옛날 선치분교 학생들이 소풍을 왔던 장소라고 한다. 그러나 섬 인구가 줄어들면서 한때 사람이 걸을 수 없을 만큼 수풀로 우거진 것을 몇 해 전 정리하여 등산로로 조성했다. 지금은 야생화 구경을 겸한 인기 있는 섬 트레킹 코스로 변모했다. 대덕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원하다. 남서쪽으로는 암태도의 승봉산과 자은도 두봉산이, 북쪽으로는 멀리 영광 송이도까지 보인다.
대덕산에서 범덕산까지는 1.3km로 역시 오르내림은 있으나 크게 힘들지 않은 코스다. 초록의 한 가운데 자리한 노란 지붕의 옥녀봉 정자는 이국적이다. 옥녀봉에서 범덕산 정상까지는 거대한 단일 암릉이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으로 화산재가 뭉쳐서 생긴 암석(응회암)이라 한다. 바위 표면이 칼로 채 썬 듯 미세하게 균열되어 있어 부스러기들이 등산하는 발걸음에도 떼어져 나간다.
범덕산의 바라보는 신안 다도해 풍광, 그야말로 일품
옥녀봉에서 범덕산까지는 군데군데 만년송(萬年松)·장생초(長生草)라고도 불리는 부처손 군락 지대다. 등산객들의 무단 채취 및 훼손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푯말이 두군 데나 붙어있다.
부처손은 한방에서 산부인과 계통의 질병을 다스리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보기 드문 야생화 분홍빛 팥꽃나무도 보이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할미꽃도 눈에 띈다. 범덕산은 앞바다에 떠 있는 율도(밤섬)에서 보면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범덕산에서 보는 사방의 풍광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북쪽으로는 대덕산에서 보지 못한 지도읍 태이도와 태천리가 손에 잡힌 듯 보인다. 병풍처럼 횡으로 기다랗게 진을 치고 서해로 뻗아 나간 지도반도는 칠산바다에서 불어오는 북풍을 막아준다.
서쪽 끝으로는 사옥도 넘어 최근 개통된 임자대교의 탑들이 희미하게 솟아있다. 또한 서남쪽으로는 드넓은 갯벌 위에 점점이 솟아 있는 병풍도, 증도, 자은도, 암태도, 천사대교가 조화롭게 조망된다. 남동쪽으로는 고이도, 매화도가 동쪽으로는 무안의 유일한 섬 탄도와 그 너머 해제 반도, 무안국제공항 등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현지 실사단이 몇 해 전 이곳 범덕산을 찾았을 때, 이러한 풍광에 반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곳’이라고 극찬을 했다 한다. 범덕봉에서의 조망은 유년의 기억 속에 미로처럼 얽혀 좀체 풀리지 않던 고향 섬들에 대한 정렬을 명확히 해주었다. 난해한 퍼즐을 스르르 풀리게 해 준 마법이었다.
범덕산에서 건너편에 있는 큰딱지산(123m)을 가기 위해 북촌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북촌마을까지는 약 1.1km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북촌마을에서 큰딱지산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다. 마을 주민에게 물으니 애초부터 등산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통상은 큰딱지산을 오르지 않고 북촌마을 삼거리에서 우회하여 도로를 따라 ’수선화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북촌마을 뒤로 가면 큰딱지산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각오를 하고 골목 끝까지 가본다. 밭둑으로 올라 산으로 접어들었는데 실낱같이 나 있던 희미한 등산로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잡목 숲을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헤쳐나가며 팔부 능선쯤 이르렀을 때 분홍빛 '자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란은 전남 해남, 진도 및 목포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큰딱지산엔 정상석 대신 몇몇 선답자들이 소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은 시그널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바다 건너 지도읍 태천리 뒷산인 선황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북촌마을 물탱크 쪽으로 하산하여 20여 분 포장된 길을 걸어 ’수선화의집‘에 도착한다. 현복순 할머니가 거주했던 수선화의 집은 현재 할머니의 노환으로 비어있다. 수선화 집 건너편 선도교회와 선도카페가 있는 골목으로 오르면 무안 앞바다와 잘 어우러진 수선화와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대 수선화재배단지, 작은 어촌을 일약 관광명소로 탈바꿈
또 수선화의 집에서 선도선창 방향으로 조금만 직진하면 지금은 폐교된 선치분교와 저수지를 둘러싸고 예쁘게 조성된 수많은 종류의 수선화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주동마을 지나 선착장에 이르기까지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수선화와 유채꽃, 마을의 노랑 지붕이다. 이쯤 되니 두 눈에서 노란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1. 위 치
o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리 한국섬뉴스에서 섬기행 더 보기
2. 가는 방법
선도로 가는 출발지는 두 군데다. 신안군 압해읍 가룡항과 무안 운남면 신월항이다.
o 가룡선착장(전남 신안군 압해읍 가룡리 134-24) : 매표소 문의(061-262-4211)
- 가룡선착장 출발 → 선도선착장 도착
(07:50,10:30,14:00,16:00) 4회 운항
- 선도선착장 출발→ 가룡선착장 도착
(08:45,11:25,14:55,16:55) 4회 운항
o 신월선착장(전남 신안군 운남면 내리) : 도선(신치호, 선장 010-3631-8450)
- 신월선착장 출발 → 선도선착장 도착
(07:55,10:55,13:55,17:55) 4회 운항
- 선도선착장 출발 → 신월선착장 도착
(07:40,10:40,13:40,17:40) 4회 운항
*신월항은 현재 공사 중이어서 ’신월선착장↔선도선착장 여객선 운항 없음.
현재 운항하는 도선(신치호)은 선착순 7인 탑승 시 출발함으로 인원 초과 시 타지 못함.
따라서 신월항의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가룡선착장 이용을 권함.
3. 섬에서 즐기기 : 트레킹
o 대덕산&범덕산+수선화재배단지 (약 9.5km, 5~6시간)
- 선도선착장 → 대덕산 → 범덕산 → 북촌마을 → 큰딱지산 →북촌마을 → 수선화의 집 → 선치분교 → 수선화재배단지(선착장 우측) → 선도선착장
* 큰딱지산의 경우 등산로가 없는 데다 하절기에는 우거진 잡풀로 사실상 접근 불가.
o 수선화재배단지 트레킹 (약 2시간)
- 선도선착장 → 소공원 → 수선화섬 해변 → 선도교회 → 수선화의 집 → 선치분교 → 저수지 →
주동마을회관 → 선도선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