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남 신안군 병풍도에서는 ‘섬 맨드라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일 시작된 축제는 10일까지 계속된다. 병풍도에 가려면 압해도 송공항과 지도 송도항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 5월 승공항을 통해 기점·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을 다녀오면서 정작 병풍도 본섬은 들르지 못했다.
맨드라미 축제 현장
따라서 이번에는 지도 송도항을 통해 맨드라미 축제장을 둘러보고 나서, 병풍도의 유래가 된 병풍바위 해안을 트레킹하기로 한다. 그리고 송도항으로 다시 나와, 오후에 슬로시티 증도를 탐방하기로 한다.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칠면초가 또한 반겨줄 것이다.
조각난 기억의 퍼즐을 완성하는, 고향으로의 여행
지도읍 송도~사옥도를 잇는 송도대교
송도항에서 1박을 하고 아침 6시 선착장으로 나가보니, 벌써 7~8대의 차량이 횡으로 줄을 서 있다. 요즘 병풍도에선 왕새우 양식이 한창인데 새우를 실어나르는 활어 차량과 병풍도와 기점·소악도를 한꺼번에 돌아보려는 여행객들의 승용차들이다. 차는 선착순으로 실리므로 순서에 밀리면 다음 배를 이용해야 한다.
이른 아침 송도~병풍도간 '슬로시티 3호'에서 본 지도읍 갯벌
이른 아침 송도항의 갑판 위로는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대고 있다. 마침 간조 시각이어서 송도항 좌측을 휘감아 옛 지도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갯고랑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갯고랑 저만치 큰바낭개라고 하는 지점은 필자가 어릴 적 친구들과 자주 운절이(망둥어)를 낚던 곳이다. 옷을 벗어 원둑(제방)의 돌 틈에 숨겨 놓고, 낚싯대를 든 채 족히 2km도 넘는 거리의 갯벌을 걸어와 도착한 곳이다. 큰 바다에 가까운 곳이어선지 유독 낚시가 잘 되던 장소였다.
당시에는 목포~지도, 임자 간 정기 여객선이 다니던 항로였는데 지도~송도~사옥도 간 연도교 건설로 지금은 폐쇄 항로가 되고 말았다. 바다의 물길은 예전처럼 여전한데 경향 각지에 흩어진 옛 친구들은 귀밑머리 허연 나이가 되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시조가 허무처럼 파고든다.
기점·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의 시작 '베드로의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병풍도 여행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2020년 12월 기점·소악도에 이어 올 4월 선도(수선화 축제 여행), 그리고 이번 병풍도·증도(지금은 증도면에 속하지만 예전엔 지도읍이었음) 여행을 통해 머럿 속에 조각나 있던 고향 지도의 지도를 비로소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지도 속에는 또한 내 부모와 형제 친척들의 삶과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니, 얼마나 정겹고 흥분되는 여행인가.
병풍도 맨드라미 정원은 하늘과 바다와 꽃을 동시 감상하는 ‘힐링의 정원’
병풍도 보기선착장 입구 표지석
병풍도 보기선착장에 도착하니, 소형 버스 두 대가 대기하고 있다. 차량을 가져오지 않은 여행객을 위한 버스로 1천원을 내면 약 3km 떨어진 맨드라미 축제장까지 바래다준다. 버스가 축제장으로 다가갈수록 병풍도는 붉고 노란 맨드라미 세상을 연출한다.
마을의 지붕이 온통 맨드라미 색상이다
병풍도는 논밭 농사와 함께 새우와 김 양식업으로 얻은 수입이 전부인 인구 100여 명의 작은 섬이다. 수입이 한정되다 보니 젊은 세대가 없어 초등학교도 3년 전에 폐교되었으며, 관광자원 하나 없는 소외된 섬이었다.
맨드라미 동산
병풍도 주민들은 맨드라미 축제를 개최하여 병풍도를 관광 명소로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버려진 황무지 야산을 주목했다. 추운 겨울철에 마을주민들이 2만여㎡를 개간하여 2019년에 마을 축제를 개최한 것이 맨드라미 축제의 시발이다.
12사도 천사조각상 중 하나
작년에는 맨드라미 공원 조성 면적을 3배로 확대하고, 세계적인 성상(聖像) 조각가인 최바오로 작가가 조각한 12사도 천사조각상도 설치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맨드라미 축제를 준비하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어 아쉬움을 주었다.
올해에는 맨드라미 공원에 11.1㏊에 달하는 맨드라미 꽃단지를 조성했다. 어릴 적 흔히 봐왔던 닭벼슬 모양부터 촛불 모양, 여우꼬리 모양 같은 다양한 형태와 여러 가지 색깔의 맨드라미를 볼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상황을 감안, 축제의 대부분은 랜선(www.맨드라미축제.kr)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놀래라화장실'
또한, 맨드라미 문자 조형물, 빨간 공중전화부스, 놀래라화장실, 하트 조형물 포토존을 마련하여 맨드라미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으로 SNS 성지로 부각 되도록 했다.
11월 말까지는 하늘과 바다와 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병풍도 맨드라미 공원은 하늘과 바다와 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해를 거듭할수록 감동을 주는 힐링의 정원이 되어가고 있다. 맨드라미 꽃은 피어 있는 기간이 120일 정도나 되어 늦서리가 올 때까지도 여행객들을 맞이한다고 하니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한번 들러볼 만하다. 연분홍빛의 맨드라미 막걸리로 추억을 쌓는다면 더욱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다.
파도와 북서 계절풍에 침식·풍화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는 '병풍바위'
11월 말까지는 하늘과 바다와 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병풍도에서 노둣길을 따라 기점·소악도로 12사도 순례길을 갈 수 있어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된다. 그러려면 차량을 가지고 가는 게 좋으며 물 때(국립해양조사원 검색 참조)를 고려해야 한다. 12사도 길 일부가 만조 시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11월 말까지는 하늘과 바다와 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맨드라미 축제장을 뒤로하고 이제 병풍바위를 찾아 나선다. 맨드라미 축제장에서 기점도 노두길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병풍바위로 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그곳에서 시멘트 농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2km 남짓 걸으면 병풍바위 입구다.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어 밋밋하기는 하지만 원둑 끝에서 내려서면 바로 우측 병풍바위 해안으로 이어진다.
파도와 북서 계절풍에 침식·풍화된 병풍바위
병풍바위 해안은 한마디로 때 묻지 않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해안선 절벽이 파도와 북서 계절풍에 침식·풍화되어 병풍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처음에는 병암도(屛巖島)로 불리다가 ‘병풍도’로 바뀌었다고 설이 있다. 또한 병풍바위가 아름다워 신선이 이곳에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그 신선이 병풍도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도 전한다.
부서진 암석의 편린들
검은색으로 겹겹이 정교하게 층을 이룬 거대 암석에서 떨어져 나온 편린들이 마치 동전을 모아놓은 듯 여기저기 켜켜이 쌓여있다. 얇고 둥그스름한 조각의 가운데를 오른손 엄지로 눌러보니, 쉽게 부스러진다. 풍경으로 따지면 변산의 채석강에 버금가는 비경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이곳에 앉아 증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마치 시간이 멈춰있듯한 태고적 고요를 느낄 수 있다.
바위 틈에 핀 해국
병풍바위 해안은 만조 시는 바닷물에 잠기므로 들어갈 수 없다. 물이 빠졌을 때 가면 약 600~700m에 이르는 해안을 트레킹한 후 농로를 따라 보기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생명의 시원, 바다의 원형이 살아있는 어머니의 섬 증도
보기선착장에서 오전 11시 배로 송도로 나와 슬로시티 증도로 향한다. 증도는 어머니가 시집온 섬이어서인지 몰라도 언제 가도 정감이 있다.
증도 버지선착장 입구
그러나 지도읍 사옥도~증도 간 연도교가 놓이면서 증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육로의 발달로 증도의 주된 항구 역할을 했던 버지선착장은 그 기능을 잃고 여객선 대합실은 폐쇄된 지 오래다. 초등학교 시절, 전날 밤 정성스레 준비한 인절미 이바지를 머리에 인 어머니와 도착했던 아련했던 기억의 버지선착장도 이제는 잊어야 할 것 같다.
왕바위선착장에서 본 일몰. 멀리 자은도가 보인다
옛 버지선착장의 영광을 왕바위선착장이 지금은 대신하고 있다. 왕바위선착장은 엘도라도 콘도 근방, 증도~자은도 간 4km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신안군은 천사대교를 통해 자은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증도에 이어 임자도, 지도를 경유할 수 있도록 차도선(슬로시티 2호)를 투입해 운항하고 있다.
소금박물관
운임도 파격적으로 어른은 인당 1천원, 승용차는 2천원을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은도 고교선착장에서 증도 왕바위선착장을 통해 1박 2일이나, 2박 3일의 일정으로 신안군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증가했다.
태평염생식물원
어머니를 따라 걸었던 비포장 태평염전 길과 그 주변도 긴 세월 속에 많이 변모했다. 태평염전은 현대화되었고 염전 단지 안에 태평염생식물원과 소금박물관 등이 생겨났다.
현대화 된 태평염전
그럼에도 태평염전과 짱뚱어다리 등을 탐방하다 보면 어머니의 양수처럼 포근하면서도 시간이 더디 가는 슬로시티 증도의 정서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생명이 시원이 바다라고 하는데, 증도는 아직 그 바다와 가장 가까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짱뚱어다리
우전리해수욕장 ‘망각의 길’에서 시원한 바다를 보며 힐링하다가, 짱둥어다리와 증도갯벌생태전시관을 찾았으나 짱둥어다리는 현재 보수 중으로 출입통제를, 갯벌생태전시관은 코로나로 잠시 휴관 상태에 있다.
방축리 트레저아일랜드
마지막으로 방축리 신안해저유물 발굴해역에서 가까운 섬에 세워진 카페 트레저아일랜드를 찾았으나 이곳 역시 코로나와 환경개선을 이유로 올해 연말까지 휴관하고 있다. 이곳은 ‘700년 전의 약속’이라는 테마로 송·원대 보물선 선박을 원형대로 복원해 1층에는 쉼터와 카페, 2층에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건져올린 청자·백자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