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서일까? 동녘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단풍이 들었다. 여수 남쪽의 섬, 연도 가는 날이 그랬다. 연도는 섬의 모양새가 솔개(소리개)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솔개 연(鳶)’자를 써 그렇게 부르고 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 때부터였다니 꽤 오래전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소리도, 소리섬이라 부르고 있다. 연도는 240여 가구, 4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 아름다운 섬이다.
소리개가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은 섬
여수~연도 항로를 하루 2차례 오가는 차도선 한려페리9호
연도로 가는 뱃길은 멀다. 배는 하루에 두 번 육지와 섬을 연결한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6시 20분과 오후 2시에 출발한다. 연도까지는 40km, 차도선으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당일 트레킹을 다녀오려면 아침 6시 20분 배를 타야만 한다. 오후 2시 배를 타면 다음 날 나와야 하는데 낚시객들이 이 배를 많이 이용한다.
이른 아침, 여객선이 돌산대교를 통과하고 있다
아침 여수항에 도착하니 6시다. 사위는 아직 어둠의 자락이 깔려있는데 대합실엔 배낭을 멘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알고 보니 섬 전문 트레킹 산악회로 전날 밤 서울에서 출발, 새벽 여수에 도착하여 소리도 등대 탐방 겸 트레킹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간밤을 버스에서 지새웠음에도 피곤한 기색이 거의 없다.
무슬목 너머의 선홍빛 일출
차도선 한려페리9호는 돌산대교와 최근 고층 레지던스 건설을 둘러싸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대경도를 지난다. 배가 돌산반도 무슬목이 보이는 지점을 통과할 무렵, 일출이 시작되었으나 해는 떠오르지 않고 선홍빛 햇무리가 일출을 대신한다.
여객선에서 본 안도의 서고지 선착장
이후 화태대교 아래를 지나 금오도와 안도의 선착장들을 경유한 배는 오전 8시 연도 역포선착장에 도착한다. 연도는 원래 외해에 속해 있었으나 해양수산부가 몇 년 전에 내해로 편입시켰다.
연도 마을버스
역포선착장에는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역포에서 소리도 등대 입구인 덕포까지는 5km로 사실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거리다. 하지만 아스팔트 길이여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는 편도에 2000원-. 산악회 사람들 틈에 섞여 만석인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구불구불 굽어진 길을 지나 10여 분 후 연도마을에 도착한다.
트레킹은 연도마을이나 덕포 명품마을에서 시작
연도마을에서 덕포 명품마을 가는 길
연도 트레킹은 버스로 연도마을이나 덕포마을 입구까지 이동한 후 소리도 등대, 소룡단, 남부마을, 연도마을 순으로 진행된다. 거리는 약 7km, 소요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가량이다. 연도마을에서 덕포마을까지는 1.7km 거리다. 필자는 연도마을에서 내려 덕포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60대 후반으로 뵈는 산악회 멤버 중 한 사람도 버스에서 내려 내 뒤를 밟는다.
연도 최고봉 팔봉산(231m)
덕포마을로 향할수록 좌측에는 팔봉산(중봉, 231m)이 삼각형으로 오뚝 솟아있고, 우측으로는 만 깊숙이 형성된 연도선착장과 연도마을이 보인다. 연도와 이웃 금오도처럼 방풍나물이 많이 생산되는지 밭마다 방풍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덕포 명품마을
뒤따르던 산악회 분과 어느덧 보조를 같이하게 되어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전국 1천여 개 산을 섭렵한 후 이제는 섬 산행에 매진하고 있단다. 벌써 100여 곳의 섬을 다녀왔다고 한다. 연도는 여수에서도 남쪽 끝머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섬의 경치가 좋아 섬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인기인 모양이다. 이번 트레킹도 2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됐다는 것이다.
덕포마을 앞 몽돌해변
덕포마을 초입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둔덕에 위치해 있어, 십여 가구에 이르는 마을의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지붕과 담장은 잘 단장되어 있는데 섬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2017년 덕포마을이 명품마을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마을 끝은 둥글둥글 닳아진 돌들이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는 몽돌해변이다.
용의 머리인 대룡단 위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소리도 등대
소리도 등대 가는 길
몽돌해변 위로 난 숲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해발 82m 절벽에 자리 잡은 소리도 등대다. 연도 남단 팔봉산 자락에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대한 암릉인 대룡단과 소룡단이 있는데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대룡단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소리도 등대는 대룡단 뒤쪽 용의 몸통 부분에 1910년도 세워진 우리나라 스물한 번째 등대다.
우리나라 최초 6각형 등대인 소리도 등대. 42km 먼 바다까지 불빛이 도달한다
소리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6각형 구조로 건립된 최초의 등대이기도 하다. 9m 남짓한 높이로 아담해 보이지만 42km 떨어진 먼바다까지 빛이 도달한다고 한다. 하얀색의 등대 건물과 푸른 잔디밭, 수줍은 듯 서 있는 여인의 조각상은 한 편의 예술품을 마주한 듯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해양수산부 선정 다시 찾고 싶은 등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유인 등대였으나 올해 8월 30일부(111년만)로 무인등대로 전환됐다. 이제 남은 여수지역 유인 등대는 오동도등대와 거문도등대 2곳뿐이다.
등대에서 바라본 동쪽의 소룡단
등대 담장의 직사각형 구멍을 통해 동남쪽을 바라보니, 소룡단이 용의 꼬리 형상을 하며 바닷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용의 등은 오랜 세월을 견딘 해송과 울룩불룩한 바위 벼랑들이 장중하면서도 수반 위의 수석처럼 아름다운 자연미를 연출하고 있다.
소룡단 아래의 쌍굴
소룡단 전망대에 도착해 우측 아래 해안절벽을 바라보니 옥색 바닷물이 드나드는 쌍굴이 보인다. 섬 전체가 두 개의 큰 콧구멍을 통해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소룡단 근처에는 네덜란드 배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솔팽이굴’도 있다는데 표지판이 없어 어딘지 알 수는 없다.
소룡단에서 본 대룡단. 그 위로 그림 같은 소리도 등대가 보인다
소룡단 근처 솔팽이굴에 숨겼다는 네덜란드 상선의 황금 보물
보물에 얽힌 스토리는 이렇다. 1627년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가던 네덜란드 상선이 해적을 만나 황금 덩이를 솔팽이굴에 숨겨 놓았다. 그 후 350년쯤 지나 네덜란드 국적의 주한미군이 지도를 가져왔고, 이곳 연도 출신의 병사가 이를 우연히 알게 되어 동굴 탐사를 해 보았다. 과연 보물은 찾았을까? 보물을 찾지 못했기에 이 스토리는 여전히 설화처럼 구전되고 있다.
소룡단 바위 틈에 핀 갯고들빼기. 가을에 꽃이 피며 거문도와 거제도 등지에서 자란다
소룡단 앉아 있으니 오렌지 빛 가을 햇살이 바삭거리며 쏟아지는 듯하다. 이곳에서 바라본 대룡단의 육중한 암릉은 스스로 바다의 노예임을 시인한다. 소리도 등대는 그 위에 어린왕자처럼 서 있다. 소룡단 맨 끝까지 내려가 본다. 작은 계선주 하나가 박혀있다. 그러나 그곳은 태평양으로 향하는 멀고 긴 파도의 여정, 그 위대한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소룡단 맨 끝의 계선주. 우측 멀리 화물선이 지나고 있다
한동안의 몽상을 떨치고, 이제 팔봉산 동쪽 기슭으로 난 둘레길을 따라 남부마을로 향한다. 길은 해안을 따라 오르내리며 동백숲 터널과 난대림을 지난다. 우측으로 통영의 욕지도와 그 앞 두미도가 아스라이그 존재를 알린다.
남부마을로 가는 둘레길의 풍경. 멀리 희미하게 통영의 욕지도와 두미도가 보인다
팔봉산에서 남부마을로 내려서는 지점에서 바라보니, 남부마을과 연도마을은 낮은 둔덕을 경계로 거의 잇닿아 있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렸던 연도마을 민원중계소에 도착하니 12시다. 출발 배 시간까지는 거의 4시간이 남아있어, 역포까지 3.3km의 구간을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연도마을에서 역포마을로 가는 길
지루하리라 여겼던 포장길은 주변의 풍광들로 인해 반감된다. 아직 코뚜레가 뚫리지 않은 어린 누렁이를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누렁이가 염려되는지 멀리서 어미가 크게 울어댄다. 누렁이가 음메에~ 하며, 화답한다. 그 소리가 좋았는지 길가의 하얀 구절초가 서너 번 크게 몸짓을 틀어 춤을 춘다.
한때 고대구리 어업으로 돈을 쓸어 담았다는 연도, 지금은 방풍나물이 효자
역포마을
역포마을에 도착했는데도 시간이 두어 시간 남는다. 교회 앞 평상 금목서 그늘에 누워 느긋하게 하늘을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시 오수에 빠진다. 기척이 있어 깨어보니, 교회 성도라는 분이 어디서 왔느냐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교회에 사모님이 계시면 여지없이 커피를 내어올 텐데 오늘은 출타 중이라며 아쉬움을 전한다.
역포마을에서 만난 털머위
이분에 의하면, 역포마을은 예전부터 농사지을만한 땅이 없어 어로를 주업으로 살았다고 한다. 반면, 지나온 연도마을은 밭이 많아 농사 위주로 삶을 영위했다는 것이다. 60~70년대만 해도 고대구리(바다 밑바닥을 훑어 어린 물고기까지 잡는 어구) 어로가 성행해 이곳 역포마을은 물론 연도 전체에 돈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구리 어로행위가 금지되면서 역포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풍나물이 효자로 등극하여, 봄철에만 3000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있다고 한다.
역포마을 선착장
마을의 고샅을 따라 선착장으로 향하다 보니, 60~70년대 전성기의 역포 모습이 역력하다. 선착장은 인근 대규모 방파제 앞에는 공적비 하나가 서 있다. 1992년도에 착공 6년 만에 완공한 방파제와 관련된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태풍으로 파도가 들이쳐 주민들은 마음 편한 적이 없었는데 방파제 건설 후 그런 걱정거리가 사라져, 그 역사를 주도한 어느 국회의원을 찬양하는 비석이다.
역포선착장 인근의 갯국화
배 시간이 다가와 매표소에 들어가니, 70대 중반의 어르신이 컴퓨터를 켜고 매표 일을 하고 있다. 역포마을 이장 배성찬 씨다. 역포에서 10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전남도 2022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 연도에 부는 개발 바람
연도는 올 9월 23일, 신안군 하의면 옥도와 함께 전라남도로부터 2022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연도에는 102종의 주요 식물이 자생하고, 동백나무, 목나무 군락지 등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는데 이 점이 유리하게 적용됐다. 또한 산호초가 널리 분포한 아름다운 수중생태환경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보물섬 전설 같은 스토리가 풍부한 점 등이 높이 평가 받았다.
연도 둘레길
가고 싶은 섬 사업지로 선정됨에 따라 연도는 2022년부터 5년 동안 50억원의 전남 도비를 지원받는다. 이 돈은 생태문화관광자원화, 마을경관 개선, 주민 역량 강화와 소득사업 등에 사용된다. 여기에 여수시에서도 지원이 더해져 섬은 앞으로 크게 변모할 전망이다. 배성찬 이장님께 ‘가고 싶은 섬’ 사업으로 선정된 뒤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섬 개발을 놓고 벌써 백가쟁명식의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둘레길 연장에서부터 체류형 관광시설 건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모양이다. 분명한 점은 고즈넉한연도에 변화의 큰 파고가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가 다시 방문하게 될 연도는 지금의 아늑하고 청초한 모습보다는, 도회 처녀처럼 립스틱 짙게 바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1) 위 치
o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리
2) 가는 방법 : 여수항 연안여객선터미널↔안도 역포항
o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 여수시 여객선터미널길 17(주차 1일 5000원)
☎061) 666-8092(한림해운)
- 여수 출발 → 안도 역포(동절기 기준, 9월 15일 ~ 04월 14일)
평일·주말 06:20, 14:00 (2회)
- 안도 역포 출발 → 여수 도착
평일·주말 09:00, 15:55 (2회)
3) 섬에서 즐기기
o 트레킹 : 7km (4시간)
- 연도마을-덕포마을-소리도 등대-소룡단-팔봉산 동쪽 둘레길-남부마을-연도마을(중계민원
처리사무소)
*역포에서 연도마을까지 왕복으로 걸을 경우 →총 트레킹 코스는 약 15km
연도 안내도
4) 편의 시설
<민 박>
o 섬 민박(061-666-9606), 역포민박(061-666-9723), 통발이민박(061-665-2298)